수확시기는 여름입니다
뜨거운 여름이 다가오면 고씨들은 사랑해마지않던 비닐하우스에서도 일광욕을 멈춘다. 하긴 사람이 들어가도 숨이 막히는데 복슬한 털가죽을 가진 고씨들은 오죽할까. 거기서 평소처럼 일광욕을 했다간 아무리 통통했던 고양이라도 단번에 바싹 마른오징어가 될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때부턴 가장 인기 있는 자리는 하우스에서 마당 나무로 바뀐다. 참고로 나무를 가장 많이 점유하는 건 대장 고양이 흰둥이다.
흰둥이가 어쩌다 마당 나무를 찜했는지는 모르지만, 예의 바른 고씨들은 점유자가 자리를 비킬 때까지 인내심 있게 기다린다. 꼭 나무 위가 아니더라도 마당 나무는 인기가 좋다. 뜨거운 여름날 나무가 만들어 주는 그늘은 고씨들의 핫플레이스다. 그래서 여름이면 고씨들은 나무 근처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고, 흰둥이는 나무 위에서 낮잠을 자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새침한 깜별이도 예외는 아니다. 흰둥이가 나무 아래로 내려오면 곧장 후다닥 올라간다.
여름만 바쁜 건 아니다. 마당의 나무는 사계절 내내 푸르기 때문에 단풍은 기대할 수 없지만,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트리로 변모한다. 아무래도 우리 또한 고양이 발인지 백화점 디피 수준에 한참을 못 미치는 허술한 트리지만, 마당의 고씨들과 함께 반짝반짝한 전구를 보며 연휴를 보낸다.
문득 나무에서 휴식을 취하는 흰둥이를 보니 엉뚱한 생각이 튄다. 흰둥이의 묵직함을 나무가 견뎌주는 게 대견하다는 생각이다. 나는 어린아이를 안아본 적은 없지만 흰둥이를 안아보며 어머니들의 골병이 왜 생기는지 저절로 깨닫곤 했다. 확실히 조금만 안고 있어도 팔뚝과 어깨가 쑤신다. 다른 고씨들도 결코 가볍지 않다. 가끔은 두세 마리가 나무에서 쉬던데, 마당 나무는 고씨들의 슈퍼 보모쯤 되겠다.
마당 나무는 어쩌면 고통받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보모 노릇을 하다 보니 가지는 캣타워, 밑동은 훌륭한 스크래쳐가 되었으니 말이다. 가끔 이러다 나무가 죽을까 질긴 노끈을 둘둘 말아서 나무를 보호하지만 통하고 있는진 모르겠다. 부디 고씨들과 오래도록 살아줬으면 좋겠다.
*사진을 찍은 후 주변 이웃들의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살짝 블러질을 했습니다. 어색한 부분 이해 바랍니다.
*작가의 인스타그램에 고씨들의 이름과 관계도가 업데이트되었습니다. 작가 소개란을 보시면 방문할 수 있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