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잠시 Mar 15. 2022

프로틴 사랑

고씨들은 까다롭다


고씨들의 밥은 생각보다 간편하게 제공된다. 비결은 자동급식기다. 정수기 형태의 자동급식기•급수기는 고씨들이 언제나 자유롭게 식사를 할 수 있도록 길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 채워준다. 전에도 말했듯 괭이 급식소는 구옥 한옥을 고친 곳이기 때문에, 안방의 붙박이 장을 활용해 급식기들을 배치했다. 아마도 티비장이나 비디오 장으로 썼던 것 같던데 앞의 문짝을 제거하고 나니 훌륭한 고양이 식당이 되었다.



처음에는 개인 밥그릇과 물그릇을 챙겨 다니며 채워주는 걸로 시작했는데, 유난히 밥때를 놓치는 괭이가 발생했다. 그렇게 처음 몇 달은 지각쟁이 고씨들을 찾으러 주변의 산과 밭을 헤집고 다닌 적도 있었다. 다행인 건 급식소 근처에서 밥그릇을 탕탕 치거나 이름을 부르다 보면 헐레벌떡 소리를 지르며 뛰어온다. 하지만 워낙 자유로운 시골 괭이들의 스케줄을 일일이 챙길 순 없었다. 자동 급식기가 최고다.



사료만 주는 건 아니다. 가끔은 특식을 제공한다. 대부분 갓 삶은 닭가슴살이다. 특식 메뉴가 고정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고양이용 캔은 좋아하지만 아무래도 자주 남기는 걸 보니 개묘 차가 심한 메뉴인 듯하고, 건식 간식은 이상하게 나이가 많은 고양이들은 도통 입을 대지 않는다. 츄르를 주자니 한 번에 열개씩 까서 짜는 것도 일이고.. 뭔가 줘도 양이 적어선지 주는 것 같지가 않았다. 결국 모든 고씨들이 좋아하는 간식은 갓 삶은 닭가슴살이었다. 생연어도 좋아했지만 어른들의 지갑 사정으로 반려되었다.



특식은 벌레나 다른 동물들이 꼬일 걸 대비해 시간을 두고 금방 치워버린다. 그래서 당시 마당이나 고양이 급식소에 있는 운 좋은 고씨들만 먹을 수 있다. 주방에서 닭가슴살 삶는 냄새가 나면 고씨들이 조용히 마당으로 모인다. 집냥이 쭈리도 자기도 달라며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한입거리로 잘라 마당으로 나가면 데면데면한 평소와는 달리 아기참새들처럼 합창을 하며 따라다닌다. 그때만큼은 괭이밥을 주는 거에 보람을 느낀다. 마당에서 밥을 먹이는 개체들과 대장 냥이가 특식을 먹기 시작하면 나머지 눈치 빠른 고씨들은 후다닥 윗집으로 달려간다. 물론 가끔은 성격 급한 고씨들이 윗집으로 가지 않고 마당에서 버틴다. 그때만큼은 그냥 마당에서 전부 특식을 즐긴다. 물론 마당개 꾸리도 빠질 수 없다.



유일하게 도도한 고씨들을   있는  닭가슴살이다. 가끔 영양제나 약도 살짝씩  넣는다.


프로틴 사랑이 효과가 있었던지 이제 다들 놀랄 만큼 벌크업이 되었다. 종종 우리 집을 방문한 시골 어르신들고씨들을 보고  마디씩 신다. 대부분은 비슷한 말이다. "이게 괭이여?" 혹은 "괭이가 개만 ~"라고 말이다. 정작 마당개인 꾸리에겐 별말씀이 없으신걸 보니 꾸리가 도통 기를  펴는 이유가 있는 듯하다.


이전 05화 복슬복슬 열매를 아시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