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던 밤의 미스테리
흰둥이는 고씨들의 든든한 대장고양이다. 덩치도 크고 성격도 좋아서 고씨들이 치대거나 귀찮게 굴어도 많이 봐준다. 흰둥이가 어린 개체를 챙기는 모습도 자주 봤다. 사료를 양보하는 건 물론이고 사람이 있어도 괜찮다는걸 보여주듯 직접 우리앞에 데려와 소개시켜 준적도 있다. 거기다 흰둥이는 사람말도 잘 알아듣는다. 어쩜 이렇게 착하고 귀여울까? 그야말로 똑똑하고 착한 고양이의 표본이다. 그러니 공사다망해 언제나 바쁜 고양이임이 놀랄일도 아니다.
하우스가 날아가는 태풍이 불어도 고씨들이 흠뻑 젖는 일은 없다.
어느 비오는 날 밤, 나는 무심결에 창문을 보다 심장마비에 걸릴뻔했다. 평소 흰둥이는 집에 사람이 있으면 창문앞에 딱 붙어서 우릴 보고 운다. 그러면 우린 흰둥이가 좋아하는 쭈리사료라도 한줌 더 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 날 나는 창문가에서 진흙에 빠진건지 뭔가에 흠뻑 적셔져 우릴 지켜보는 짐승을 보았다.
고양이 울음소리는 빗소리에 쉽게 묻힌다.
자세히 보니 창문앞에 있던 것은 검붉은 피로 적셔진 흰둥이었다. 평소 하얀 털뭉치 자체였던 흰둥이는 하체까지 젖은건 아니지만 얼굴전체와 상체 일부까지 피로 엉켜있었다. 분명히 물이나 진흙이 아니었다. 얼굴이 피에 젖어있으니 평소의 둥근 얼굴이 한층 헬쓱해 보이며 위태로워보였다. 그래, 이건 분명 내게 도움을 청하는 거였다. 너무 늦게 알아차린걸까? 나는 비명을 지르고 가족들은 난리가 났다.
흰둥이는 급하게 수건으로 돌돌말아 그대로 마당에서 욕실로 납치당했다. 병원으로 가기전 지혈할 부위를 봐야했다. 간단한 소독도 필요할 것이다. 가족들은 도망가지 못하게 욕실문을 잠구며 흰둥이를 살펴보고 나는 문밖에서 24시 동물병원에 전화를 걸 참이었다. 욕실 문 너머로 소독이 시작되는 지 흰둥이의 신경질섞인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사람의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허무하게도 금세 욕실 문이 열렸다.
“이거.. 흰둥이 피 아니야..”
젖은 타월로 급히 닦여진 흰둥이는 뒷발의 발톱이 하나 부러진걸 제외하면 상처하나 없이 깨끗했다. 그것도 모르고 부어버린 애꿏은 소독약은 흰둥이를 화나게 했고 말이다. 우린 사과의 의미로 쭈리사료와 닭가슴살을 가져왔다. 그날 흰털을 적신 액체의 정체는 어느 희생양의 피였다.
고양이들이 사냥을 한다는 건 잘 알고있다. 하지만 우리가 본 가장 큰 동물은 꿩이나 새끼강아지만한 쥐 정도다. 피가 이렇게 날리 없다. 아직도 비 오는 그날 밤 흰둥이에게 무슨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흰둥이가 뭔가 하드보일드한 삶을 사는 건 분명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