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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시 Apr 12. 2022

지니어스 흰둥

천재 고양이를 소개합니다



앵소골의 묘재猫才


흰둥이는 무척 똑똑한 고양이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흰둥이에게 입력된 명령어는 손, 저쪽 손, 코, 하이파이브, 돌아, 엎드려, 빵(죽은척까지!) 총 여섯가지나 된다. 거기다 음성이 녹음된 버져를 누르는 법도 배웠다. 흰둥이가 두발로 버져를 꾹 누르면 “간식”이라는 외침이 나오고 간식이 지급된다.


솔직히 내가 고양이로 태어나도 헷갈릴거 같은데, 똑똑한 천재고양이 흰둥이는 이를 전부 이해했다. 전부 막냇동생이 쭈리의 사료를 가지고 꾸준히 훈련시킨 결과다.





하지만 똑똑한 고양이 흰둥이에게도 난제는 있었다.


다음 훈련은 바로 “안녕하세요”다. 막냇동생이 원하는 모션은 본인이 "안녕하세요"를 말하면 흰둥이가 꾸벅하고 고개를 숙였다 올라오는 것이다. 우리에겐 "빵!" 보다 쉬울 것 같은 이 익숙한 모션은 흰둥이의 유교적 면모를 뽐내기 위해 기획되었다. 처음 동생에게 훈련 계획을 들었을 때만 해도, 이번 훈련은 고개만 까닥해도 간식이 지급될 것이니 금방 끝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이 있었다.


하지만 훈련이 시작되니 우등생 흰둥이가 좀처럼 모르겠다는 모습을 보였다. 거기다 이번엔 전혀 관심이 없어보였다. 나와 동생은 당황했다. 흰둥이의 영민함을 아는 터라 이런 반응은 낯설었다. 아마 우린 잠시 동안 고양이 세계에는 유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었던 거 같다. 혼란스러워하는 흰둥이를 위해 나는 차라리 “엎드려”에 대한 연속동작의 일환으로 “일어서”를 동생에게 건의해보았지만 거절당했다. 그리고 막내의 말에 나 또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사람이라면 첫 번째로 배우는 사회적 행동이니 응당 고씨들에게도 적용해야된다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집에서는 동생의 '안녕하세요-' 가 울려 퍼진다. 그 소리를 따라 슬쩍 들여다보면 사람인 동생이 익숙한 흰색 고양이에게 연신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아마 내 동생은 고양이 어르신을 둔 모양이다.



이 기이한 훈련은 계속 며칠간 계속되었다.


진도는 전혀 나가지 못했다. 천재 고양이 흰둥이에게 흔치 않은 일이다. 한 번은 이 모습을 우연히 본 아버지가 한숨을 쉬었다. 뭔가 잘못된게 아니냐면서 말이다. 이제 동생은 흰둥이에게 고개까지 꾸벅거리며 인사를 하고 있었다. 드물게 따라 하라는 외침을 들리는 걸 보니 본인도 슬슬 답답한 모양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흰둥이는 익숙하다는 듯 인사하는 동생을 바라본다. (참고로 나의 막냇동생은 기사 자격증만 세 개가 있는 재원이다.)



결국 훈련은 중단되었다.


며칠간 흰둥이는 동생의 인사와 쭈리의 사료만 얻은 채 유유히 자신의 밥을 먹으러 갔다. 자리를 뜨는 건 이제 흥미가 떨어졌다는 신호다. 이렇게 집중력이 바닥나면 그날 더 이상은 훈련이 재개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다음으로 미루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기묘한 광경은 결국 어머니의 만류에 중단되고 말았다. 동생에게 '가족들은 괜찮지만 이웃이 보기에 안좋으니 자제하라'는 엄중한 경고가 있었다.


동생은 아쉬워했다. 사실 아직도 가끔씩 가족들의 눈을 피해 흰둥이의 훈련이 재개되고 있다. 굳이 말하자면 나도 공범이다. 나는 가족들의 평화를 위해 흰둥이가 "안녕하세요"를 완성하는 날이 어서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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