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왜 반만 뜰까?
고씨들은 몰려다니는 모습이 가장 흔하지만 몇몇 독립적인 개체들은 홀로 노니는 걸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마당의 바둑돌 깜별이와 흰둥이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그뿐이지 둘은 털색뿐 아니라 성격도 정 반대에 가깝다. 고씨들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들은 새침한 깜별이를 조금 무서워하는 듯 조심스럽게 대하지만, 넉살 좋은 흰둥이에게는 사정없이 귀찮게 치댄다.
깜별이는 어느 순간 마당에 있다가 또 어느 순간 증발하듯 사라지는 신출귀몰함을 갖추기도 했다. 늘 반만 뜨고 다니는 눈은 어떤가. 역시 비밀이 많은 듯하다. 특유의 뚱한 표정 때문일까?
내가 아는 깜별이의 비밀 몇 가지
첫 번째, 사실 깜별이는 윗 윗집 할아버지의 마당 괭이다.
우리집에서도 먹고, 윗 윗집에서도 먹지만 아마도 주된 밥은 거기서 먹을 것이다. 분명히 깜별이가 두 집 살림을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나 예상해 본다면, 나이가 지긋하신 윗 윗집 할아버지께서는 개사료와 고양이 사료를 딱히 구분하지 않으신다는 점이다. 평등하게 윗 윗집 마당개와 마당 괭이들은 같은 개 사료를 지급받는다. 참고로 그 연세에 짬밥이 아닌 사료를 준다는 점만 해도 할아버진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괜한 이야기 일수도 있지만 어르신들은 종종 비빔국수를 바둑이한테 주는 경우도 있으니, 윗 윗집 할아버지가 개사료를 고양이에게 준다는 사실을 비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만 놀란 사실일 수 도 있지만, 고양이들은 개사료보다 고양이 사료를 선호한다. 괜히 이름이 고양이 사료가 아닌 것이다. 읍내 사료사에 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게 입구에 쌓여있는 개사료다. 우리집도 처음엔 당연히 그걸 사 왔다. 하지만 결국 고양이 사료로 전부 교체했다. 심하게 굶은 고양이가 아닌 이상 인기가 너무 없더라. 이왕 산거 좀만 먹어줘라 하고 섞어줘도 안 먹는다. 뭔가 맛이 다른가? 물론 지금은 영양상 고양이는 고양이 사료를 필수로 먹어야 된다는 점을 알고 있어서 절대 그러지 않는다. 이미 십 년쯤 된 이야기다. 그리고 그 십 년간 깜별이는 거의 공처럼 둥글게 벌크 업되었다.
두 번째, 깜별이는 새끼를 적어도 세 번 이상 낳았다.
보통 우리 집에서 정착한 고양이들은 출산 경험이 없다. 중성화를 시키기 때문이다. 깜별이는 중성화가 늦어져 한 번은 윗집 쪽에서 한 번은 우리 집 쪽에서 낳았다. 그리고 나머지 한 번은 어디서 낳은진 몰라도 어느새 새끼 고양이와 깜별이가 같이 다니고 있더라. 지금은 독립한 고씨들 중 깜별이 새끼들이 있었다.
깜별이의 중성화가 늦어진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엄연히 다른 집 고양이이기도 했고, 눈치가 빨라 잡기도 어려웠다. 그리고 깜별이는 바쁜 고양이중 하나다. 그래서 몇 년간 마당에 오지 않을 때도 있어서 우리 집에 머무는 시간이 패턴화 된 시기부터 중성화를 계획할 수 있었다.
깜별이는 새끼를 낳아도 사람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윗집과 우리 집이 본 것도 우연히 본 것이지 깜별이와 공동육아를 하지 않았다. 새끼들도 사람을 보면 곧장 도망가기 바쁘다. 예외가 있다면 마지막에 낳은 삼 남매는 깜별이와 마당에서 같이 밥을 먹어서 유일하게 만져보았다.(이를 위한 우리들의 교언영색이 말이 아니었다)
마지막 셋째, 이처럼 예상할 수 있듯 깜별이는 노령묘다.
깜별이가 나이가 가장 많다고 하면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다. 그도 그럴게 체구는 새끼 고양이만큼 작고 아직도 목소릴 아기같이 가늘고 귀엽게 낸다. 그렇지만 초기 멤버인 만큼 이름도 가장 성의 있게 지었다.
실제 우리 집 막내 동생(사람)의 이름이 ㅇ별이다. 사람 이름이랑 괭이 이름이랑 한 글자만 다른 거다. 부모님의 네이밍 센스가 똑같이 이 작은 생물체에 적용되었으니 꽤 애지중지했다고 말하고 싶다.
외모와는 달리 성격은 시니컬하다. 평소엔 목소리가 작지만 원하는 것이 있으면 가장 시끄럽다. 밥그릇이 가득 채워져있지 않으면 절대 먹지 않고 째려보거나 소리를 지른다. 까다롭기까지 하다. 깜별이의 밥그릇은 신선한 사료로 가득 채워서 발 앞에 대령해줘야 한다. 멀리 있으면 먹지도 않는다.
보너스로 깜별이의 비밀이 아닌 점도 말해야겠다.
살짝 바랜 검은색 턱시도가 아직도 엄청 멋지다. 흰색 장갑은 움직일 때마다 마임을 하는 것 같이 눈에 띈다. 호박색 눈도 유난히 밝게 빛난다. 나이가 많은 만큼 다른 고씨들에 비해 사람을 따르는 편이지만 만지는 건 아직도 불쾌해한다. 우리 가족은 깜별이가 뭐든 참지 않는 다는 것도 알고있다. 언제든 마당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깜별이가 하얀 솜방망이로 다른 고씨들을 패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우리에게 쓰다듬 당해 화가나면 다른 고씨들에게 화풀이를 하기도 한다.
눈은 언제나 반만 뜨고 다닌다. 딱 한번 마당에서 빨래를 널던 엄마가 깜별 이를 못 보고 발로 찬 적이 있는데, 그때 빼곤 한 번도 제대로 눈을 뜬 적이 없다. 아마 앞으로 별일이 없는 이상 계속해서 반만 뜨고 다닐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