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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시 Feb 24. 2022

식구가 많아 슬픈 고씨들

고양이 급식소가 생긴 이유



도시와 마찬가지로 산 밑의 소담한 마을에도 길고양이들은 존재한다. 그중 우리가 밥을 주는 고양이들은 열 마리 안팎인데,  가족인지 친구인지 늘 무리 지어 다니기에 한데 묶어 고씨들이라고 부른다.



우리 집이 마당이 딸린 집이라고 해서 고씨들 전부 마당에서 밥을 주진 않는다. 물론 처음에는 그랬다. 지금은 흔히 말하는 대장 고양이만 마당에서 밥을 먹고 가끔 무리에서 소외될 거 같은 아기 고양이나 몇몇 특정 고양이들만 따로 마당 구석에서 밥을 준다. 그리고 나머지는 윗집을 고쳐서 만든 고양이 급식소에서 밥을 먹는다.



이웃집이 어쩌다 고씨들의 전유물이 되었나 싶긴 하다.


고양이 급식소는 말이 그렇단 거지 협소한 구옥 한옥주택이다.  그 집의 역사를 잠깐 말하자면, 사실 내 기억의 윗집은 오랫동안 낭만가 화가 아저씨의 집이었다. 나와도 꽤 친했던 화가 아저씨는 종종 우리 집에 내려와 미술 수행평가 같은 걸 도와주곤 했다. 아저씨는 주로 수채화나 수묵화 같은 수정이 어려운 그림을 그리면서도, 마당에 고씨들이 보이면 빗자루를 챙겨 그들을 쫓았다. 아저씨는 고씨들을 무척 싫어했다. 아저씨가 키우던 다람쥐를 언젠가 고씨들이 물어갈 거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윗집은 공식적으로 고씨들의 출입 불가 지역이었다.




시간이 지나 다람쥐는 산으로 탈출하고, 화가 아저씨는 이사를 갔다. 사람이 살지 않는 시골 빈집은 빠르게 폐가로 변해갔다. 그리고 때맞춰 나의  크신 아버지께선 윗집 땅을 포함해 몇몇 지상권 주택까지 전부 매입하셨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현재 살고 있는 시골집을 포함해 새롭게 매입한 빈집 전부를 부수고, 평탄화 과정을 거친 , 마당에서 자동차를 몰아도 될만한 넓고 화려한 집이 지어질 예정이었다. 아버지의 회심의 노후 계획이었다. 실제로  직전 과정까지는 전부 실행했다.  년에 걸쳐 인접 땅의 경계와 소유권들을 정리하고 도로정비, 상하수도 설치까지 끝냈다. 시골은 가로등 하나까지 권리 주장을 해야 생긴다. 손볼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심지어 아름다운 중정 계획을 위해 중장비 기사들을 불러 근방의 오래된 나무들을  베어냈다. 그러나 신축공사가 임박할수록 마당의 고씨들이 점점 뚱뚱해져서일까? 그들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길냥이들이라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리를 시작하면 얘네는 대체 어디 있는담?




작은 마당에 고씨들이 주르륵 누워있으면 사람이 발을 어떻게 붙여야 될지도 문제지만, 지나갈라치면 화들짝 놀라는 녀석들의 작은 간댕이덕에 괜히 미안하고 불편한 마음이 생긴다. 그래서 평소에도 가족들은 도통 마당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그러니 공사가 시작하면 고씨들에겐 강제퇴거 명령이 떨어진 거나 다름없었다.




도시 사정이야 몰라도 시골은 남아도는 게 사람 집이다. 급한 것도 아니고, 사람이 살 집을 짓는 건 조금 미루기로 했다. 우리 가족은 빈집을 부수기 전에 새로운 임차인 고씨들을 들였다. 공식적으로 그들은 우리의 이웃이다. 사실 현재 집을 제외하고 나머지만 공사하는 선택권도 있었지만 지금 마당은 고씨들에게 너무 비좁다. 결국 이 모든 건 마당 밀도가 너무 높아져서 내린 조치였다. 투표를 했어도 머릿수를 보아 고씨들이 우세할 것이니 합리적인 결과였다. 고씨들 눈치에 새우등 터져가는 마당개 꾸리의 권리도 인정해 줘야 마땅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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