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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시 Feb 23. 2022

고씨들이 밭을 탐내니 조심해라

산골동네 김장철

찬바람이 매서워지려 한다.


차가워진 공기 냄새는 애틋하다. 고등학교를 졸업 한지 한참이 되었어도 바람에서 수능 냄새를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수능날씨가 다가오면 배추밭이 바빠진다. 김장철이 가까워졌다는 뜻이다.


시골에 밭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이때 가장 무서워하는  있다. 그래 바로 고라니! 한때 인터넷에 고라니 맘이  글이 화제였다. 그분은 열심히 밭을 가꾸면 밤새 고라니가  처먹고 간다고 고라니 맘이라고 불러달랬다.  밑에 사는 우리 집도 고라니 두어 마리를 키우고 있다. 다만 밭이 넓어선지 식성이 생각보다 까다로운지 고구마밭과 배추밭을 아주 작살 내지는 않더라.




이상하게도 우리 집 개나 고양이들은 배추를 그렇게 탐낸다. 마당개가 풀렸을 때도 사료포대가 아닌 배추밭에서 배추를 작살내고 열 살짜리 집고양이 쭈리 조차도 배추에 환장하니 참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차라리 파밭이나 양파밭을 노렸으면 좋으련만. 대체 많고 많은 농작물 중 왜 그러는지는 몰라도 할머니가 가장 아끼시는 배추밭을 가장 좋아한다. 사람과 고씨들의 선호도가 비슷한걸 보니 사람도 결국 동물이란 뜻일까? 그 뜻을 헤아리자니 할머니의 혈압이 걱정되어, 가족들은 결국 마당 고양이들과 고라니들을 대비해 밭 주위를 빙둘러서 철조망과 그물을 쳐놨다. 그리고 주말 내내 한 작업이 무색하게 밤새 고라니는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고 고양이들은 그물 사이로 들어왔다.



참고로 우리 집은 고양이들을 위해 폐가를 고쳐서 나름 급식소까지 만들어줬다. 그뿐이 아니다. 마당에서 밥도 주고 특식으로 닭가슴살도 제공한다. 배추가 아니어도 먹을 것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그래도 사료만 먹기는 질린 지 그들은 꾸준히 밭에서 발견된다. 다행인 건 뒷산 고씨들은 한 끼 식사를 거하게 하는 반면 (할머니 혈압약 드시는 날) 마당 고씨들은 애피타이저나 디저트 정도로 그친다는 점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나는 그저 같은 고씨라 연대책임을 진다는 점이 안타깝다. 좀 더 덧붙이자면 그 뜯어먹은 모양새가 할머니를 화나게 할 때도 있지만 나름 맛에 대한 인증표시로 용인될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곧 김장철이니 간식 있을 날도 얼마 안 남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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