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책 읽기 어려운 뇌로,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게으른 완벽주의자'의 독서 실험기

by 구름

일단 책을 꾸준히 읽는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끝까지 읽은 책이 있냐 물으면 솔직히 해리포터 시리즈 정도 기억난다.

그 마저도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까지만 읽고, 나머진 영화로 대신해 보았다.


나는 ADHD 중에서도 AD, 그러니까 ‘주의 집중력’ 부분이 특히 약한 사람이다.

아 잠깐, 여기서 ADHD를 조금만 설명하자면 -

ADHD는 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의 약자로, 한국어로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다.

이름 때문에 오해하기 쉽지만, ADHD는 주의가 없는 게 아니라, 주의를 조절하기 어려운 뇌의 구조다.



특히 나처럼 AD(부주의형) 성향만 강한 사람은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머릿속은 늘 복잡하다.

해야 할 일에는 집중이 어렵고, 반대로 흥미 있는 일에는 과몰입(hyperfocus) 하는 경향이 있다.

즉, ‘집중력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집중력의 스위치를 자유롭게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도파민 회로의 작동이 낮기 때문이다.

도파민 ‘동기부여’와 ‘보상 예측’을 담당하는 신경전달물질인데,

이게 적게 분비되면 즉각적인 보상이 없는 일에 집중을 유지하기 어려운 것.

그래서 ‘책 읽기’처럼 천천히 결과가 쌓이는 일은 유독 어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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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게 부정적인 특성만 있는 건 아니다.
AD형 사람들은 오히려 한 가지에 빠지면 깊게 몰입하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세부를 포착하기도 하니깐.


나도 그랬다. 집중이 안 되는 게 아니라... 너무 집중한 나머지 멈춰버리는 사람.

책을 읽을 때 모르는 단어가 하나라도 보이면 반드시 뜻을 찾아야 했다.

생각이 머무는 문장이 있으면 감정이 몰입했고, 그때마다 흐름이 끊겼다.

책만 읽으면 매번 기면증인가 싶을 만큼 자주 졸지만, 순간적인 집중력은 강했다.

문제는, 그 순간에 너무 깊이 빠진다는 거였다.

책 한 줄, 한 문장에 꽂히면 생각이 폭발하듯 밀려와서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지 못했으니까.


‘이 문장은 무슨 뜻일까?’
‘이 인물은 왜 이렇게 행동했을까?’
‘작가는 어떤 의도로 이걸 여기에 넣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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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난 호기심 대마왕이었다.

초등학생 때도 질문이 너무 많아서, 담임 선생님이 엄마에게 전화해서 말했다고 한다.

“구름이는 손을 너무 많이 들어요, 이상할 정도로 매사에 궁금한 게 많아요.”
그때 담임 선생님이 내가 유별나다는 듯 부정적으로 말해서, 엄마가 속상했었다고 뒤늦게 나에게 말해줬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부터 나는 세상에 대한 ‘집중의 방향’을 남들과 다르게 쓰고 있었던 건 아닐까?

디테일에 꽂히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결국 큰 줄기를 놓치는 아이.

요즘 말로 하자면... ‘게으른 완벽주의자’ 랄까.




이미 뇌가 알고 있다.

나는 책 한 권을 읽을 때마다 온 힘을 쏟을 거라는 걸.

다음 책을 열기도 전에 지쳐버릴 것이라는 걸.

그건 마치, 힘든 운동을 끝내고 난 뒤 다시 운동하러 나가기 싫은 것과 같다.


영상물이 그저 더 좋았다.

화면은 지루하지 않게 흘러가고, 때론 자극적인 맛으로 나의 뇌에 도파민을 주기 충분했으니까.

그리고 30대가 되어, 인풋이 거의 없는 채로 대본을 쓰면서 깨달았다.

나는 어휘력도, 상상력도, 이해력도 바닥이라는 것을....


내 대본을 본 교육원 강사님들은 늘 말했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봐야 해요.”

드라마를 쓰려면 전체적인 흐름을 볼 줄 알아야 하는데, 디테일에 너무 매달린다는 피드백이었다.

사실 너무 어려웠다. ‘숲을 본다’는 게,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건데...?!

모르겠다. 정말 너무 답답해서 눈물이 울컥 터진 적도 있다.


그렇다, 나는 전체적인 숲의 모양이나 그림보다

그 숲 속에 있는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어떤 모양인지, 어떤 종류인지,

상처는 있는지, 벌레가 좀먹진 않았는지, 그게 더 중요한 사람이었다.

전체적인 큰 흐름을 작가가 끌고 가지 못하면, 드라마는 완성이 될 수 없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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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들이, 나의 무지가 머리를 탁 쳤다.

그동안 책을 많이 안 읽은 티가 여기서 나는 건가 보다. 책을 진짜 읽어야겠는데...

하지만 ‘이제 와서 책을 읽는다고 뇌가 발달할까?’ 놀랍게도 답은 ‘YES’였다.

청소년기보다 발달 속도는 느려도, 성인들의 뇌도 분명히 성장된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결심했다. 그래, 지금부터라도 읽자.



그렇지만 물론 쉽지 않았다. 편의점을 퇴근하면 유튜브가 나를 부르고, 대본 쓰기 바빴으니까..

“언제 책을 읽어…” 하며 또 차일피일 미룰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기 계발 영상에서 들은 한 문장.

“책을 꾸준히 읽기가 정말 힘들다면, 10쪽만이라도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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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이라면… 나도 할 수 있을지도?’ 왜냐면, 나는 디테일에 강하니까!!

그렇게, 그날부터 하루 10쪽 읽기 실험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지금 이건 거창한 프로젝트가 아니라 ‘나 같은 사람도 책을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소심하지만 꾸준한 도전이다. 읽다가 졸아도 괜찮고, 시간이 부족해도 괜찮다.

중요한 건 멈추지 않는 것, 독서 루틴을 만드는 것이다.

사실 지금도, 프롤로그를 쓴다고 또 다른 일은 제쳐두고 있다.

이게 바로 나다. 하나에 빠지면 시간을 잊는 사람.


<10쪽만, 독서노트>는 나 자신에게 하는 약속이다.

무조건 최소 매주 화요일 10쪽 독후감 한 편씩 올리기.

부디, 이번엔 끝까지 완성하길 스스로 기대하고 바라고 있다.

‘책을 읽었다’는 성취도 가져가고,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로 스스로를 칭찬하길.


그리고 혹시 나처럼 책을 펴는 게 유난히 어려운 누군가가 있다면, 이 글이 그 사람의 첫 10쪽이 되길 바란다. 그렇게, 우리의 속도대로라도 — 천천히, 한 장씩. 그렇게 10쪽씩만이라도 해보자.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