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은 결혼?

<채식주의자>를 보고 나서 1

by 구름

난 한강 작가님의 <채식주의자>라는 책을 읽었다.

일단 이 책을 처음 읽게 된 건, 친한 친구의 권유였다.


'너 한강 작가님 책 읽어봤어?'

아니, 왠지 상도 받았다고 하니까 어려울 것 같아서 안 읽었어.

'읽어볼래? 나는 하루 만에 다 읽었어. 일단 읽어봐. 읽어보고 이야기 나눠보자.'

그렇게 받은 책 한 권.



그런데... 계속 읽어보겠다고 펼쳐봤지만, 계속 읽기를 포기하고 몇 달이 흘렀다.

읽다 보니 이야기가 좀 이상해. 계속 책을 못 읽고 있어서 미안.. 다시 도로 가져갈래?

'아니, 끝까지 읽어봐. 거북해도 참고 읽어봐. 시간은 얼마든지 더 줄 테니까 읽어.'


후.. 그래! 그래서 마음먹고 <10쪽 독서노트>를 계획했을 때

이 첫 책을, 정말 10쪽씩 포스트잇으로 나눠놓고 열심히 읽었다.


너무 쓸데없이 디테일할지 모르지만, 스스로 책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10쪽씩 읽을 때마다 독후감을 기록했다.


아니 근데 10쪽 읽고 쓴 독후감인데 쓰다 보니까 또 왜 이렇게 긴 거야.

나 진짜 생각 많다. 계속 써 내려가면서 줄이는 연습을 해야 할 듯...



그가 그녀와 결혼한 이유는, 그녀가 특별한 매력이 없는 만큼, 특별한 단점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고유한 매력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특별함’에 끌린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정반대의 이유로 아내를 선택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특별한 단점이 없다’는 것도 어쩌면 그녀만의 매력일지도?

의외로 단점이 없다는 건 쉽지 않다. 그게 더 어려운 것 같다. 그만큼 서로 잘 맞는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물론, 연애 초반엔 콩깍지에 씌어 단점이 보이지 않는 것도 있다.

그런데... 이 이유로 결혼까지 결정했다고? 이 부분에서 나는 잠시 멈췄다.
결혼을 너무 쉽게, 너무 담담하게 해 버린 건 아닐까, 역시 주인공은 평범하지 않군.

나는 아직 미혼이지만, 주변을 보며 ‘결혼은 결국 현실이구나’라는 걸 조금씩 배우는 중이다.
결혼은 단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일이 아니라, 지금까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온 두 사람이 서로의 가족까지 끌어안는 일이다. 결국 희생과 배려가 바탕이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이 책 속 주인공들에게서 나는 그런 진지한 무게감 대신, 이상할 만큼의 무심함을 느꼈다.

일단 시작부터 낯선 시작이라 눈길을 끌었다.

아마도 그는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기보다, 인생의 ‘안정된 선택’을 택한 사람처럼 보였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단발머리, 외까풀 눈, 약간 튀어나온 광대뼈, 그리고 개성 있어 보이는 걸 두려워하는 듯한 무채색의 옷차림.

소설 속 아내의 외모는 화려하지 않다.

한강 작가님은 그 ‘평범함’을 아주 세밀하게 그려낸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얼굴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어딜 가도 눈에 띄지는 않지만, 한 번 스치면 이상하게 기억에 남는 사람.

그런 묘사들은 단순히 외형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까지 상상하게 만든다.

욕심이 많지도, 감정의 폭이 크지도 않은 사람. 화려하지 않고, 그저 묵묵하게 하루를 버텨내는 사람.
까무잡잡한 피부와 단정한 단발, 그리고 무채색의 옷차림이 잘 어울릴 것 같은 여인.

나는 그런 이미지의 여자가 떠올랐다.




남자는 과분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항상 안정적인 것을 원했고, ‘용의 꼬리보다는 뱀의 머리’를 택하며 살아왔다.

생각해 보면 그에게도 인정욕구가 있었다. 잘난 사람들 속에서 못난이가 되기보다는, 못난이들 속의 잘난이가 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다짜고짜 시작된 이 문장이 참 인상적이었다.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아주 담담하게 시작하는 이 반문이, 이야기의 아이러니를 한순간에 드러낸다.
특별하지 않아서 좋았던 여자가, 이제 ‘특별한 변화’를 시작하는 지점이라니.

그 대조가 묘하게 재미있었다. 이렇게 시작하면 재밌구나.




그런데 그가 한 번 놀란 적이 있었다. 아내가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였다.

내가 여기서 놀란 이유는 노브라 그 지점이 자신을(남편을) 묘하게 흥분시켰다는 것이다.
윽, 거기에서 흥분이 된다고? 사실 읽으면서 살짝 인상이 찌푸려지긴 했다. 왜 불편했을까...

그러나 이 불편함은 이 책을 앞으로 읽을 때 맛보기에 불과했다.

이 남자가 평범함을 바라긴 해도, 결코 의욕이 없는 사람은 아니라는 걸 느꼈다.


그는 평소 아내를 위해 몸매를 가꾸지도, 약속 시간에 맞추기 위해 허둥대지도 않았다.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박식한 척을 하지도 않았다. 노력해도 근육이 붙지 않는 가느다란 팔뚝과 다리,
그리고 말하지 못할 콤플렉스까지 모두 그녀 앞에선 괜찮았다고.


이게 정상 맞냐고. 이거는 사랑이 아닌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 앞에서 좀 더 멋있어지고 싶고, 잘나 보이고 싶고, 좋아 보이고 싶고...

그런 게 사랑 아니냐고!



감싸 안은 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주는 결혼. 좋지.

근데 그런 그가, 아내의 브래지어 하나에 동요했다.

자기는 아무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도, 상대에게서는 여전히 ‘무언가’를 얻고 싶어 하는 심리.

그게 이 남자의 이기적인 민낯이었다.


자신은 그녀를 위해 아랫배를 관리하지도 않고 약속시간에 늦을까 봐 허둥대지도 않고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박식한 척하지도 않았으며 근육 붙지 않는 (노력해도) 가느다란 팔뚝과 다리, 남모를 열등감의 원인인 작은 성기까지 신경 쓰지 않아서 좋았으면서, 그런 그녀가 브래지어 안 입었다는 점 하나가 자신을 흥분시켰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새로운 관찰을 했지만, 그 지점이 어떤 신호는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면서 그녀의 가슴도 작아서 차라리 두툼한 패드라도 껴서 속옷을 착용했으면 동료들에게 체면이 섰을 거라고 말한다.


그 무엇보다 체면을 중요시하는 사람.

이봐요, 그러지 말고 본인 아랫배 체면을 먼저 중요시하세요!


그 이후에도 다시 모든 것이 순조로웠으며 결혼 오 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애초에 열렬히 사랑하지 않았으니 권태기도 없다고 말했다.


사실 이런 연애와 결혼이 행복한가? 그래서 이 남자는 행복은 한가? 이런 질문이 들었다.


다만, 슬슬 아빠 소리를 들을 때가 됐다고 생각할 때쯤. 일은 터졌다...


그녀를 사랑하지도 않고, 흥미도 없는 결혼생활에서 아이를 꿈꾼다니.

결혼, 육아 출산, 이런 것들이 그냥 하나의 과정일 뿐이지 큰 뜻이 있는 것은 아닌 거다.

그냥... 남들이 하니까 해야 하는 관례 같은 느낌. 그런 것 중 하나. 그렇게 느껴졌다.

출산은 여자가 하는데, 사랑하지도 않고 흥미도 없으면서 아이는 가지려고 하다니.

여자로서 굉장히 조금 불편한 느낌이 들긴 했다.


말이 없다던 아내는... 같은 말을 두 번이나 했다고 강조한다. "꿈을 꿨어.."


무슨 꿈? 뭔데 이 여자가 이렇게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하지? 갑자기 채식주의자가 됐다니.

갑자기는 아닐 거다, 뭔가 쌓여있던 것일 텐데. 궁금하다.

이 와중에 5년 동안 한 번도 그를 마중 나가지 않은 적이 없었다는 걸 보면 그녀는 참 많이 성실했던 것 같다.

당연한 걸 누렸을 이 남편, 고마움도 헌신에 대한 뜻도 모르는 이 남편, 이기적인 이 남편 너무 싫은걸!

뒷 이야기가 어떻게 될지 궁금한데 10쪽이 끝이 났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