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지 못한 약속
보지 말았어야 했다. 이럴 땐 누구보다 빠른 내 미친 눈치가 미워진다.
할아버님은 내 손등을 쓰다듬으며 눈물을 글썽이셨다. 그걸 꾹 참으시는 모습이 다시 시댁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내 눈물 꼭지를 틀려고 내내 힘을 가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사실 난,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내 할아버지와 신랑의 외할아버님이 자꾸만 내 시야 안에 겹쳐 보였다.
어쩌면 인생에 가장 큰 축제이자 하나의 사건일 결혼식은 누구에게나 의미가 클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결혼식 그 후 친정과 시댁에서 일 박을 할 동안에도 할아버지를 떠올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다니... 돌아가신 분, 그것도 '조부'인데 그게 뭐 대수냐 생각할 수 있겠지만.. 우린 그런 당연하고 뻔한 사이는 결코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런 복잡 미묘한 심경 중에 찾아뵌 신랑의 외할아버님은 우리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몇 해전 정정하셨던 그즈음의 연세 셨기에 더욱이 감정이 흔들리 수밖에 없었던 것.
외할아버님을 뵙고 나니 까마득 잊고 있었던 내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고 눈치 없는 눈물이 주르륵 또 주르륵, 돌아가신 할아버지께 닿을 기세로 멈추지 않았다. 신랑의 외가댁에 인사를 다녀온 새색시가 그래, 뒷좌석에 계신 시어머니와 옆의 신랑을 두고 이리 우는 게 말이나 된 단말인가.
나는 신랑에게 들키지 않으려 옷 깃으로 여러 번 몰래 눈물을 훔쳤다. 문제는 그 뒤, 멈춰야 할 눈물은 속수무책으로 더 많이 흐르기 시작했다.
"자기야 울어? 왜 울어?"
"왜 미혜가 울어?"
"아, 죄송해요. 어머니."
"엄마. 아무래도 오래 같이 살다가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이 났나 봐."
난 황당하셨을 어머니와 신랑에게 죄송한 마음에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뒤.. 입이 무거운 두 모자는 나를 배려해 더 이상 무엇도 물어 오지 않았다. 그날의 침묵이 참으로 감사했지만, 신랑과 어머니는 날 이해하셨을까. 지금 생각해도 어찌나 황당한 일인가.
나는 최근에도 여러 번 외할아버지 댁에 가보자고 어머니께 얘길 드렸었다. 허나, 두 시간 거리에서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움직이는 우리 부부와, 매번 우리가 올 때마다 함께하시는 시고모님, 또 시 할머님이 계시기에 외할아버님 댁에 찾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무심히 흐르는 세월 동안 지병이 있으셨던 신랑의 큰 외 삼촌은 부모님보다 먼저 세상을 등지셨다. 그리고 연달아 몇 달 후, 몇 년 동안 서울의 한 요양 병원에 머무르셨던 외할머니께서도 돌아가셨다.
그렇게 종종 찾아 뵙겠다던 약속은 어느새 어영부영 7년이 흘러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