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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공비행 Aug 07. 2023

브라질, 축구, 나.

일상으로의 연결.



4년에 한 번 이루어지는 국제 스포츠 대회이자 최대의 축제로 불리는 ‘월드컵’의 최다 우승국인 브라질은 명실상부 축구 강국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는 국가이다. 이러한 국가의 긴 축구 역사를 돌이켜보았을 때, 수 차례 달성한 업적 이외에도 세계인들이 브라질에 열광하는 이유는 결과를 넘어서는,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이들의 신체적인 움직임과 그 안에 담긴 화려한 기술 그리고 고유성을 지니는 정신적 요소라 할 수 있다. 이 모든 요소들을 반영하여 우리는 ‘브라질 축구’ 혹은 ‘삼바 축구’라고 그들의 스타일을 정의 내리며 거칠게 표현함으로써 ‘남미 축구’로 구분 짓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정확한 명칭으로 묶어, 한 단어 ‘징가(Ginga)’라고 말할 수 있다. 


징가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답을 하자면, 브라질에서 수십 년 동안 국민들의 정신이자 중심의 역할을 맡은 축구에 있어 브라질의 모든 문화와 역사의 혼합체를 ‘징가’로 표현할 수 있겠다. 징가는 전통 무술이면서 춤과 의식, 음악까지 결합된 전통인 ‘카포에이라(철권에서 에디가 쓰는 그 무술 맞다.)’와 ‘삼바 댄스’, 이 두 개의 영향을 받았다. 이 두 요소를 결합함과 동시에 신체와 정신을 모두 담고 있는 ‘징가’는 브라질의 축구를 대변하며 국민들에 있어 일종의 삶의 방식(a way of life)라 이야기된다. 걷는 것, 말하는 것, 그리고 그 모두를 포함한 삶의 순간들. ‘흔들다’라는 의미의 단어 ‘sway’또한 직접적으로 포함이 되어 있는데 브라질 선수들의 플레이가 떠오르지 않는가?


1958년부터 1970년 사이에 일어난 세 차례의 월드컵 우승이라는 결과를 쟁취함으로써 세계의 인정을 넘어 일종의 선망까지 얻게 된 브라질의 고유한 특성이자 문화인 ‘징가’는 수십 년이 지난 21세기 현재에도 브라질 사람들로부터 엿볼 수 있다. 선수의 개인적인 커리어와 국가대항전의 성적도 중요하지만 브라질 국민들에게 있어서 관심의 대상은 그들의 대표들이 스포츠를 그라운드에서 행하는 과정에서 ‘징가’가 드러나는 플레이를 하는가에 대한 여부이다. 물론  프로 정신 및 존중이라는 측면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나 스포츠의 과정에서 이러한 문화가 드러나지 않는 경우, 즉 백인들이 주를 이루는 유럽의 기존 방식 또는 실리 축구의 형태를 따르는 경우 국가적으로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게 된다. (98년 월드컵의 우승 사례) 반대로 경기에 패배하거나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더라도 브라질만의 아름다운 축구를 하였다고 판단이 될 경우에는 박수를 받는다. 이러한 점은 기타 국가의 축구 팬들도 느낄 수 있는 요소이며 우리가 브라질 선수들에게 기대하는 부분이다. (22년 올해의 월드컵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징가는 그 뿌리인 카포에이라와 삼바를 생각하였을 때 어떠한 저항을 의미하는 ‘상징’으로 자리를 잡기도 하며 브라질 인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정신과 신체의 결합, 일종의 아비투스로 자리를 잡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기술을 습득하는 브라질의 아이들과 세계적인 선수들, 축구를 직접 하지는 않으나 항상 열정으로 지켜보는 국민 모두가 이를 받아들이고 함께 한다. 따라서 징가는 그 자체만이 아닌 비교(기존 서구의 문화와)의 과정을 통해서도 고유성을 확립하며 저항의 라벨을 명확히 한다. 유럽을 포함한 그 어떤 국가와도 다르며 버릴 수 없는 브라질만의 ‘a way of life’인 것이다.


22년 월드컵이 개막하기 전인 최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동하는 선수인 ‘안토니’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유럽 축구의 중심인 영국 리그의 경기에서 실속이 없는, 화려함만이 전부인 개인기를 펼쳤다는 것이다. 22년 현재 브라질 국가대표팀의 에이스로 활동을 하고 있는 선수인 ‘네이마르’는 이러한 개인기 영상을 자신의 sns에 업로드한 후 앞으로도 계속 행하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는데 자신들의 ‘삶의 방식’이라는 문구가 들어갔다. 이 또한 zinga에 해당된다. 


스페인에서 활동 중인 비니시우스라는 선수가 춤을 추는 셀레브레이션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었을 때에도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타 국가, 대륙의 선수들, 오랜 전통을 지닌 유럽의 시선들이 바라보는 축구에서 허용되지 않는 outsider인 이들의 행동을 서로 독려하고 참여를 이끌어내며 반복적으로 실천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 끊임없이 흔드는 신체, 외부의 압력에 저항하는 모습들. 이 모든 것을 우리는 ‘징가’를 바탕으로 바라보았을 때 이해를 할 수 있다.


22년 카타르 월드컵이 개막되고, 브라질의 세르비아를 상대로 한 조별예선 첫 경기에서 공격수 ‘히샬리송’은 푸스카스 상 후보로 꼽힐 만한 득점을 기록하였으며 비니시우스, 호드리구와 같은 선수들 또한 화려한 플레이를 반복함으로써 브라질의 명성에 걸맞은 모습을 보였다. 네이마르 또한 뛰어난 능력을 드러내며 현재까지 월드컵 최다의 피파울 선수인 상황이다.


이러한 선수 개개인의 이름값과 능력, 현재의 국가대표팀의 모습만이 아니라 브라질 선수들이 수십 년간 쌓아온 국가적인 라이프스타일과 Zinga라는 요소를 염두에 두면 어떨까 한다.  22년 월드컵에서 활약하는 브라질 국가대표팀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더욱 흥미로워지지 않을까? 자본의 유입과 전술의 발전으로 축구는 변하는 중이며 이러한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으나, 클래식은 영원한 법이지 않은가. 예술로 승화한 브라질인들의 ‘징가’가 사라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름다운 축구 그리고 zinga가 끝까지 함께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희망하며.




이제 '나'로 넘어가 보자. 


<2022년 여름 전후의 기록> 


“I learned all about life with a ball at my feet.” 


아름다운 축구를 보여준 호나우지뉴는 위와 같이 말했다. 정말 공감하는 말이다. 나 또한 매일 즐기는 공놀이로 삶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소수의 팀으로 매일같이 경기를 진행하는 요즘,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용병이다. 다들 서로의 나이, 실력, 출신 등등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단지 같은 팀이란 사실 하나 만으로 서로 믿고 경기를 뛰는 것이다. 이것이 큰 문제는 아니다. 과거 공을 찰 때에 팀에서 에이스로 평가될 만한 사람들이 기본일 정도로 하나하나 뛰어난 실력을 보인다. 사소한 실수에도 웃음기 없이 서로 사과를 할 정도다. 물론 실수는 일어날 수 있는 것이기에 서로 까거나 눈치 주는 일은 전혀 없다. 그냥 모두가 실수 없이 완벽한 경기를 하고 이기려고 할 뿐이다. 승부욕을 백 퍼센트 발휘하는 중이다.


축구와 관련해서는 큰 발전을 이루고 있다.  방금 만난 사람들이 어디로 움직일지 보이고 서로 오래 공을 찬 것처럼 경기한다. 연계에 더욱 능숙해지고 있으며 여러 사람들의 움직임을 눈에 익히고 내 것으로 흡수하고 있다. 실력 면에서 더욱 완벽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경기를 나설 때마다 선수 출신이 다수를 이루고 그 외에도 모두가 뛰어나지만, 스타일은 다르다. 한 명 정도는 영웅심리를 드러내고, 절반은 지치고 힘이 들면 슬쩍 팀원들을 쳐다보며 책임을 전가한다. 나머지 대부분은 기계처럼 끊임없이 경기를 뛰고 , 마지막 한 명은 여유롭게 경기를 바라보고 지배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열정을 쏟아부어 나를 희생하고 팀원을 도우며 자신의 할 일을 제대로 한다. 수비가담에 신경 쓰던 최근 1년은 헛되지 않았다. 공수에 통달해 경기 전체를 이끄는 데에 익숙해지는 중이다. 또한 서로 조용히 손뼉 쳐주고, 매너를 최우선시한 경기를 항상 치르며 참된 열정을 느끼는 중이다.


나는 발전하고 있다.


<2023년 여름 전후의 기록> 


서울 시민 리그, 축구 협회 디비전 아마추어 리그 (k7리그), 교내 대규모 축구 대회나 대학교 간의 리그전 등 여러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목표들이 있다.


내외로 스스로를 갉아먹는 건강의 문제와 끊임없이 정형외과에 다니면서 검사받고 치료받는 무릎을 중심으로, 어쩔 수 없는 삶의 문제들을 계속해서 직면하게 된다.


그럼에도 발전하고 있다.


'잘한다'는 말에 감사할 줄 알고, '대단하다'는 말에 겸손의 자세를 가지고자 하며, '못한다'는 말은 거의 듣지 못함에도 드문 경우로 이를 들었을 때 기분이 상한 인상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 모든 경험에서, 참된 내적인 경험으로 연결이 되고, 그 안에서 세세한 배움들을 쌓아나가는 것이 앞서 '나'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는 부분에서 인용한 문장과 부합하는 태도일 테다. 


그러한 태도로, 끝까지 공과 함께할 수 있기를 희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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