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공비행 Aug 31. 2023

없어짐을 다시금 있음으로 바꾸려는 자

새벽의 동네를 휘젓는 책장 원정대




August To Rush … 이 길이 아닌가 벼를 반복하는 8월이었다.


불현듯 책장이 떠올랐다. 몇 개월 전, 눈이 내렸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그 작은 얼음 알갱이들이 소복하게 아스팔트 위를 감싸는 중, 얕은 발자국을 그 위에 새겨가며 한 책장을 만났다. 그 책장이 보고 싶어졌다.


바쁘게 횡단보도를 지나치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누군가의 손톱 조각들이 잘게 흩어져 내리고 있었으며, 동네의 대표적인 마트 주차장의 한 구석에서는 술기운에 잠긴 채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기는 주민이 있었다.



누구나 쉽게 책을 꽂아두거나, 맘에 드는 것을 골라 가져갈 수 있게끔 배치가 된 골목 한복판의 책장. 그것을 찾겠다는 일념 하나로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에 집을 나서는 길이었다. 연희맛로에서 한 블록 옆으로 넘어가면 나타나는 놀이터의 벤치에는, 모자를 깊게 눌러쓴 청춘이 앉아있었다. 밝음과 어두움이 공존하는, 그런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으며, 그녀의 귀에 무선 이어폰 따위가 자리하는 일도 없었다.


참치 김밥 세 줄을 주문하였다. 의자에 잠시 앉아서 나의 저녁거리를 기다리던 중, 다급함이 묻어나는 문자를 받았다. 아뿔싸! 시간을 착각한 나머지, 회의가 3분도 채 남지 않았는 데에도 나는 집 밖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다시 한번 급하게 사장님께 요청을 드렸다. 마찬가지로 주문이라 할 수 있겠고 주문이라 할 수 있겠지만, 약 한 시간의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음식을 받으러 오겠다는 주문. 회의에 대한 걱정이 큰 것도 맞으나 음식과 가게에 대한 걱정은 없이, 마음 편하게 집으로 전력질주를 하게 되었다.



또다시 책장을 찾아야겠다고 다짐하였다. 지난번 새벽의 연희동 골목을 걸었을 때에는 책장의 그림자도 감히 볼 수 없었으니까. 그때의 밤과 같이, 똑같은 골목길을 혹시나 싶어 세 번, 네 번 반복하여 오갔던 시간으로 오늘의 새벽을 채우고 싶지 않았기에 전동 킥보드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연희동의 골목들을 샅샅이 뒤졌다. 흉흉한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킥보드의 소리에 놀라 저 멀리서부터 고개를 뒤로 홱 돌리시는 분께 미안한 마음을 품었다.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킥보드에 관심 넘치는 눈망울을 드러내던 동네의 강아지에게도 반가움을 느꼈다. 그렇게 여러 일상을 곁눈질로 살펴보며 골목길을 모두 돌아다닌 후에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책장은 없었다.


단순하게 말한다면, 겉으로 보이지 않음의 문제와 실제로 없어지고 잃어버렸음의 문제 중 하나일 것이라 예상을 하였다. 실제로 사물로서의 책장의 ‘있음’을 문제삼은 것 외에도, 나의 마음속에서 무언가 지속적으로 꽂아 넣고 소장하는 형태로서의 하나의 체계를 관념적으로 결부 지어 생각한 것이기도 하였기에. 두 가지 측면 모두에서 위 문제들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많은 이들이 고민할 수밖에 없는, ‘잃어버린 것’인지 혹은 ‘잠시 비가시성을 띠게 된 것’ 일뿐인지의 저울질 사이에서 이리저리 흔들릴 뿐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연희동의 책장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그렇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없어진 것에 좌절하고 주저앉아야 마땅한가? 애초에 시간을 되돌려 먼 과거로 생각의 방향을 이끌게 된다면, 처음부터 있지 않았던 시기가 매우 길 것인데 어떤 계기를 통한 전환의 발생으로 ‘있음’의 단계에 우뚝 서게 된 것이 아닌가. 답은 이미 나왔다. 다시 한번 그 단계로 올라갈 준비를 하고, 출발을 하는 것일 테다.



평소에 길을 오가는 시간 속에서, 세세하게 주변의 공간과 사람, 그리고 이야기에 눈과 귀를 가까이하는 경우가 많지 않음에도, 구태여 몰입감을 끌어올리려 하다 보면 새롭게 눈에 다시 들어오는 독특한 이면들이 있다.


그렇게 익숙한 길 사이만 마음 편하게 전력질주를 하는 생각들도, 독특한 방향으로 핸들을 꺾게끔 유도하는 시간은 새로운 눈 뜨임으로 가는 첫 단추가 되리라.

매거진의 이전글 8월에 뭐 하고 지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