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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Feb 01. 2022

이 한 그릇을 기록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

지극히 평범하더라도 내가 만든 것.

요리에 재미를 붙이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신나서 SNS에 내가 만든 요리 사진들을 올렸다. 그때까지는 내 SNS를 내 기사를 홍보하는 데 사용하거나 취재하면서 느낀 점을 정리하는 용도로 사용했다. SNS 친구들도 대부분 일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이거나 취재원 범위의 사람들이었다.


보통은 내가 쓴 기사를 홍보하는데 썼던 SNS였기에, 내 요리 사진들을 올렸을 때 꽤나 많은 반응이 나왔던 것들 중 하나가 "요리 에세이 한번 써보세요"였다. 어쨌든 나를 매일 기사라는 형식을 '쓰는 사람'으로 인식했던 SNS 친구들이 많았기에 나왔던 말이었던 것 같다.


그때마다 나는 "책이 너무 많아요. 좋은 책들이 나와야죠. 일상적으로 밥 짓는 이야기가 책 소재가 될까요"라는 반응을 보였다. 내가 차리는 밥상이 엄청나게 뛰어난 것들도 아니고, 정량을 재면서 레시피를 따라 만드는 요리도 아니었으며, 그 무엇보다 내가 차린 것이 너무 평범해 보였다.


내가 차린 요리도 요리였지만, 결정적으로 나는 내 글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했다.


'이 정도 글은 널려있잖아'라고 생각했다. 나 같은 사람의 일상 이야기까지 관심 갖는 사람이 있을까? 그냥 내 지인이니까 이런 걸 보고도 글로 써보라고 한 거겠지.

달걀과 토마토소스를 끓인 '에그인 헬'과 치즈, 빵 등으로 차린 술상.

몇 년이 지난 지금 요리에 대한 글을 쓴다. 그때는 저렇게 말했으면서, 지금은 왜 요리에 대한 글을 쓰고 있을까. 이제는 내 요리나 내 글이 이전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해서는 아니다.




이전에는 ‘비슷비슷한 삶’에 넌더리를 냈었던 것 같다. '다 똑같이 왜 저런 걸 해' 하며. 예를 들어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졸업사진을 두고 학교들을 졸업할 때마다 ‘저딴 걸 왜 할까’라는 생각이었다.


결혼사진을 찍으면서 꽤나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 깨달았다. 공장처럼 찍어낸 사진이더라도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찍혀있는 게 중요하다는 걸.


그 똑같은 일도 '내가 하는 것'이라면 의미가 있는 일이 된다.

에그인헬과 바게뜨, 샐러드와 치즈케이크.


이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가 시간이 지나면서 나에 대한 자의식이 낮아진 것인지, 오히려 자의식이 높아진 결과인지 헷갈리긴 한다.


'난 달라!' 하던 내가 사라졌다는 점에서는 자의식이 낮아진 것 같지만, '다 똑같은 걸 하더라도 내가 하는 게 중요해'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자의식이 높아진 결과인 것 같기도 하다.


자의식이 낮아졌든 높아졌든 이제 나는 아무리 평범한 밥상이더라도 나와 내가 사랑한 사람이 먹는 식탁이라는 것, 내 소중한 친구들과 함께 나눈 식탁이라는 것, 내가 준비해내고 내가 만든 식탁이라는 점에서 기록할 만한 대상이 됐다고 느낀다.

밥과 야채, 스팸을 구워 올린 지극히 평범한 한 그릇.

장강명 작가의 2020년 작 '책 한번 써봅시다'를 읽으면서도 비슷한 내용을 찾았다. 이 문구를 읽고 ‘그래, 좀 시시한 걸 써도 상관없지’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책 출간은 자동차 운전과 다르다. 시시한 책을 내도 아무도 다치지 않는다. '자격 있는 사람만 책을 낼 수 있다'는 은근한 분위기는 이미 책을 낸 기성작가들과, 작가를 선망할 뿐 글을 쓰지는 않는 사람들이 함께 만드는 허구다. (48p)
뛰어난 사업가가 되지 못하는 사람은 사업을 하면 안 되는 걸까? 중요한 건 '뛰어난 사업가가 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이 사업으로 내가 무엇을 얻을까'다. (59p)


지극히 평범하더라도, 내가 직접 차린 이 한 그릇의 사진을 찍은 사람은 나뿐이다.  평범한 요리와 평범한 글이더라도, 내 요리로 내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나뿐이다. 그래서 이런 걸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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