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민경 Jul 17. 2023

보기 좋은 것이 ‘정리’라는 편견

질서에 맞추기보다 자신에게 맞추기

요즘은 하루에 한 공간씩 정리하기를 실천하려고 한다. 아기를 돌보며 집에 있는 시간이 급격히 많아졌다. 내가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 쾌적하기를 바랐다. 또, 아기가 커가면서 아기를 위한 공간을 마련해야 하니 기존의 물건들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을 최대한 비워내야 했다.


며칠 전에는 안 쓰는 프라이팬들과 냄비들을 버리고, 안 쓰는 그릇과 컵도 정리했다. 지금까지 내 나름대로 주방 서랍을 잘 정리해서 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계속해서 치워야만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릇의 수는 굉장히 많았지만 내가 실제로 사용하는 그릇은 아주 극소수였다. 옷장 속 옷과도 같았다. 손님들이 올 때는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평상시에 사용하는 그릇들은 매우 일부로 10개 남짓이었다.




문제는 평상시에 사용하는 그릇들은 매우 소수지만 그것들이 전부 다르게 생겼다는 점이다. 밥그릇 2개, 국그릇 2개, 일자 접시 몇 가지, 소스나 장들을 위한 작은 접시, 남편이 매일 커피를 담아가는 보온병, 마른안주를 넣는 나무 접시, 커피를 내리는 도구 등.  


나의 주방 서랍은 활용도에 따른 분류가 아니라 생김새에 따른 분류로 정리돼 있었다. 그저 보기 좋아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나에게 정돈된 집이란 우선 '보기 좋게 깔끔한 것'이었기에.


그래서 일자 접시 모두 맨 아래칸에 정렬돼 있었다. 유리로 된 일자접시, 베이지색 일자 접시, 소라 모양 일자 접시, 나무로 된 일자 접시는 모두 맨 아래칸이었다. 두 번째 칸에는 또 똑같이 생긴 커피잔들이 모두 모아져 있었다. 보온병은 2번째 칸 한 구석이나 세 번째 칸으로 모두 모였다. 남편이 매일 쓰는 보온병임에도 높은 위치에 올려져 있어서 꺼냈다 올렸다 하는 것이 불편한 모양새였다.




"자신이 자주 쓰는 것을 손 닿는 곳에 놓아라"


정리정돈의 기본이다. 나 역시 이 말을 안 들어본 것이 아니다. 심지어 머릿속으로는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당연히 그렇게 정리하고 있다고 착각했다. 그러나 실제로 나의 주방은 전혀 그 '기본'에 따라져있지 않았다.


그제야 맨 아래 가장 열기 편한 서랍에 일자접시 몇 가지와 보온병, 커피를 내리는 기구들을 내려놓았다. 눈으로 보기에 '정리된 모습'은 아니었다.




다음날 남편은 출근 전 커피를 내리는 도구들을 꺼내 커피를 내리고고 보온병에 그것을 넣었다. 나는 토스트를 구워 일자접시에 놓았다. 모두 한 칸의 서랍만 열고 닫아도 될 수 있도록 정리가 된 것이다.


그제야 무언가 진짜 정리가 무엇인지 깨달은 느낌이었다. 또한 효율성이란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나는 '보이지 않는 눈'에 의한 질서에 맞추느라 나 자신에게 필요한 질서는 무관심했었던 것이다.


그동안은 쉽게 생각하는 질서에 얽매여 그저 한 가지 그릇 종류만 한 곳에 모아두고 그것을 '정리'라 생각했다.

진짜 정리는 질서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맞추는 일이었다.


눈에 보이기에는 뒤죽박죽 한 서랍, 그러나 나의 쓰임에 딱 맞게 정리된 서랍.


이전 16화 컨셉병은 죄가 없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