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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Aug 25. 2023

다시 유행으로 돌아온 '프랑스 육아'

돌고 도는 육아 트렌드 속 나를 지키는 법  

패션계에서 지난 1~2년 전부터 1990년대 'Y2K'(Year Two Kilo, 1990~2000년대 초반의 생활양식을 뜻한다) 패션이 유행했다. 길을 가다가 '엇, 저거 나 초등학생 때 언니오빠들이 입고 다니던 건데.' 하는 룩이 자주 보인다. 이와 비슷하게, 육아계(?)에서는 2010년 초반 유행했던 육아법이 다시 각광을 받고 있는 듯싶다.


최근 육아를 주제로 하는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서 굉장히 많이 보이는 것은 '프랑스 육아법'이다. 


꼭 육아를 다루는 곳이 아니더라도 '프랑스 육아법'에 대한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프랑스에서는 길거리에서 아이가 말을 안 들으면 뺨을 때린다더라'라는 과격한 '카더라'(프랑스에서도 아이를 때리면 안 된다)부터, 인기 유튜브 '조승연의 탐구생활'에서 조승연 작가가 프랑스 친구 집에서 본 육아법 이야기 등이 대표적이다.


조승연 작가의 이야기를 전달하자면, 프랑스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아이가 어른들의 이야기에 끼고 싶어 하니 '어른들 이야기에 끼고 싶으면, 어른들이 재밌어할 만한 이야기를 해봐'라고 했다는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wvQm3qf3CEo


이를 두고 황석희 번역가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나는 프랑스식 아빠는 아닌 듯'이라는 글을 올렸다. 그 글에는 최근 프랑스식 훈육을 칭송하는 분위기를 두고 조금 의아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어른들이 아이의 수준에 맞춰 대화하는 게 더 많은 대화를 이끌어 낼 수 있고 더 즐겁다"며 어른들끼리 이야기를 할 때도 대화에 끼지 못하는 사람을 배려하면서 이야기하는 것이 매력 있는 대화법인데, 왜 아이들에게는 그렇지 않냐는 지적이다.




이렇게 다시 '프랑스식 훈육' 이야기가 나오는 맥락을 살펴보면, 한동안 육아계를 휩쓸었던 오은영 박사 식의, 아이를 때리지 말고 공감해 주는, 엄격하기보다 다정하게 아이맘을 ‘읽어주는’ 육아법이 유행한 후폭풍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오은영식 육아법이 칭송받아왔다. 그만큼 추종자들도 많지만 동시에 '오은영 반대파'들도 많아졌다.


요즘 아이들이 버릇이 없는 이유가 (로마시대에도 '요즘 애들은 버릇없다'라고 쓰여있다고 한다..) 지적이나 훈육을 충분히 받지 않고 공감만 받아와서라는 것이다.


다만 오은영 찬성파는 이러한 주장에 '오은영은 훈육을 하지 말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오히려 훈육이 꼭 필요하다고 가르친다. 다만 훈육에 육체적인 폭력을 쓰지 말라고 할 뿐이다. 오은영의 이야기를 오해해서 퍼뜨리고 있다'라고 반박한다.


최근 각광을 받는 육아 전문가를 분류해 보면 오은영과 그 반대파인 조선미, 하정훈 파로 볼 수 있다. 조선미 교수는 단호한 훈육을 강조하는 육아 전문가이고 하정훈 의사는 전통육아를 강조하며 '부모가 중심이 되는' 육아를 하라고 주장한다.


오은영 육아법의 유행이 가고 요즘 다시 유행하는 조선미나 하정훈 식의 육아법은 '프랑스 육아법'과도 맞닿아 있다. 아이 위주보다는 부모(엄마) 위주의 삶을 살며 아이에게 단호하게 훈육하는 게 그 골자다.




프랑스 육아법 이야기를 크게 유행시킨 것은 역시 2013년 3월에 발간된 레전드 육아에세이 '프랑스 아이처럼'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아이를 기르는 사람들이 오은영, 조선미, 하정훈을 모를 수 없는 것처럼 이 책도 모를 수 없을 것이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12834260&start=pnaver_02


나는 이 책을 대학 전공 수업 가운데, 프랑스 문화를 다루는 수업에서 읽은 적 있다. 당시에는 '이 미국 여자는 프랑스 사대주의가 굉장히 심하네'라고 생각하고 책을 대충 읽었다. 사실 육아라는 것이 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대충 넘겼던 것이다.


아이를 낳고, 어쩌다 10년 전 육아책이 다시 유행이 된 덕분에 이 책을 다시 찬찬히 읽어보았다.




이 책을 쓴 파멜라 드러커맨은 월스트리트저널의 경제 섹션 기자로 일하다 정리해고를 당하고 도피성 결혼과 임신, 출산을 하게 된다. 평생을 살아온 미국이 아니라 프랑스 파리에서 결혼과 육아를 하게 되면서 프랑스 엄마들과 미국 엄마들을 비교한 책이 '프랑스 아이처럼'이다. 2013년 작이지만 지금까지도 베스트셀러에 꼽힌다.


기자 특유의 뛰어난 관찰자 시점과 글솜씨로 일단 매우 재미있어 술술 읽혔다. 대학생 때 내가 느꼈던 것처럼 프랑스에 대한 칭송이 여전히 느껴지기는 한다. 다만 거의 모든 챕터에 반복적으로 '모든 프랑스 엄마가 그런 것이 아니고, 모든 미국 엄마가 이런 것도 아니다'라는 방어적 문장이 들어가 있는 게 이제는 보인다.  




아주 거칠게 책을 요약하면 프랑스 엄마는 아이를 낳는다고 해서 아이만을 위한 삶을 살지도 않고, 살도 찌지 않으며, (정확히는 살이 찐 후 그 모습대로 자신을 방치하지 않는다) 일도 그만두지 않고 어쨌든 아이에게 거리를 두고 잘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그런 프랑스 엄마들과, 아이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고 조금이라도 울면 즉각 달려가며, 살이 쪘고, 아이에게 모든 것을 집중하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끼는, 상반된 저자의 모습을 비추는 것이 이 책의 전반적인 포맷이다.


이 책은 단호하게 수면교육을 하는 이야기부터 전업주부라도 탁아소에 아이를 맡기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프랑스 엄마들의 모습, 모유수유 신화를 무시하는 모습, 단호한 훈육 교육, 아이를 낳고 나서 남편과의 관계도 변하지 않는 프랑스 여자들 이야기가 서술된다.


아이를 낳고 나서 여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이야기들이 총망라돼 있다.


다시 이 책을 읽어보니 대학생 때 느꼈던 것처럼, 그저 프랑스 엄마들에 대한 사대주의적 인상 비평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저자가 본 프랑스 엄마들의 특징 외에도 루소로 대표되는 프랑스 교육 철학에 대한 이야기나 프랑스의 육아 정책들이 어떻게 '프랑스 육아법'에 영향을 주었는지도 분석하면서 설득하기에 그저 '프랑스 사대주의자'의 시점으로만 보기엔 아까운 책이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재미로 읽기엔 충분하고 하나의 의견으로 보기엔 충분하지만 여전히 무언가 뒤죽박죽 됐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대학생 때 왜 이 책을 삐딱하게 보았는지 이제는 글로 설명할 수 있게 되어서, 글이 길어지지만 한번 설명해 보겠다.


이 책이 뒤죽박죽스럽다고 느낀, 그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한 문단을 소개해보겠다.

프랑스 엄마들이 즐겨보는 한 잡지에서 프랑스 여배우 제랄딘 파일라의 화보를 보고 깜짝 놀랐다. 39세의 파일라는 두 아이의 엄마이지만 전혀 다른 엄마의 전형을 보여준다. 화보 속 파일라는 유모차를 밀면서 동시에 먼 곳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운다. 또 다른 사진 속에선 금발 가발을 쓰고 이브 생 로랑의 전기를 읽고 있다. 세 번째 사진에선 검은색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아찔한 스파이크힐을 신고 복고풍 유모차를 밀고 있다.

피처 기사에선 파일라를 프랑스의 이상적인 어머니상으로 묘사한다. '그녀는 그 자체로 여성해방의 표상이다. 엄마로서 행복을 느끼고 새로운 경험에도 왕성한 호기심을 품으며 위기상황에도 지혜롭게 대처하지만, 완벽한 어머니가 되기 위해 발버둥 치지도 않는다.

파일라를 보면 그간 나에게 낯설게 대했던 프랑스 엄마들이 떠오른다. 그들은 헌신적인 엄마지만 동시에 아이와 독립적으로 죄책 감 없이 자유의 순간을 즐기고자 한다. (...) 섹시하지만 편안해 보인다. 아이가 행복하기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그저 여자로서 행복한 모습이다. 엄마이기를 거부하고 여성이로서만 부각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와 여성의 역할이 잘 융합해 돼있다. 그 둘이 동시에 보이지만 둘은 서로 갈등하지 않는다.

-'프랑스 아이처럼' 170~171p




이 문단만 읽고 눈치챈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기존의 '완벽한 어머니상'이 아닌, 또 다른 '완벽한 어머니상'을 제시하고 있다. 그 때문에 여러 가지 모순적인 부분이 있다. 물론 어머니이기만 한 이전 완벽한 어머니상을 옹호하는 것도 아니고, 많은 부분 이 책에 쓰인 말들에 동의하기도 하지만(사실 나도 프랑스를 좀 많이 좋아한다.) 이 책 역시 또 다른, 엄마들이 완벽히 실행하기 어려운 어머니상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은 말해봐야겠다.


예를 들어 검은색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아찔한 스파이크힐을 신은 프랑스 엄마의 모습을 '그 자체로 여성해방'이라고 써놓은 피처 기사를 높게 평가하는 것을 보면 무슨 말인가 싶다. 그리고 프랑스 엄마들 중에 진짜 저런 모습을 여성해방이라고 생각하는 엄마들은 얼마나 있을까? 물론 10년이라는 시차가 있는 책이지만 하이힐이나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날씬한 '엄마'가 되라는 것도 ‘희생하는 엄마’라는 이상향 못지않게 여성에게 또 다른 족쇄를 거는 것임을 이제는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물론 그것을 지향할 수는 있지만, 쉽지는 않은 일이다.


이 책에서는 미국식의, '푸근하고 자기희생적인 엄마'만을 이상향의 엄마로 설정하면서 오히려 현대 사회에서 엄마가 된 여성에게 요구하는, 날씬하고 스타일도 좋고 일도 잘하고 애도 으쌰으쌰 쿨하게 잘 키우는 또 다른 '완벽한 엄마'가 되는 것은 쉬운 일처럼 서술한다.


그리고 그 '완벽한 엄마'가 전통적인 '희생적인 엄마'가 아니라는 이유로 더 우월하고 쉬운 것처럼 말한다. 여기까지가 내가 대학생 때 이 책을 읽고 들었던 무언가 불편한 지점이었다.




요즘 다시 돌고 있는 '프랑스 육아법'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책 리뷰처럼 되어버린 글이지만,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육아에 대한 공부를 하다 보면, 정치글과 비슷하게 육아계 역시 다양한 관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세상만사가 그렇다. 우파와 좌파라는 구분과 비슷하게, 이런 쪽의 육아법이 있고 저런 쪽의 육아법이 있다.


누군가는 조선미의 말을 듣고, 누군가는 하정훈의 말을 듣고, 서로의 육아법이 틀렸거나, 혹은 특정 방법이 더 우월하다고 주장하고 상대방을 비난한다. 어떤 엄마들은 특정 전문가의 편을 들고, 또 다른 엄마들은 또 다른 전문가를 추종하며 갈등을 빚기도 한다.




결국 내가 뉴스를 다루면서 배웠던 것과 똑같은 결론을 내야겠다.


이런 담론들을 소비하는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많은 정보를 찾아보고 '직접' 읽어보며, 궁금한 부분은 또 다른 원재료들을 찾아 자신의 질문과 논리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내가 어떤 특정한 계파에 속해서 각 사안들을 그 계파가 생각하는 것처럼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각 사안사안마다 자신만의 논리를 세울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어떤 날은 내가 A 전문가의 육아법에 동의할 수도, 또 다른 날은 B 전문가의 육아법에 동의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생각과 논리는 어떤 정보를 알고 있느냐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또한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심지어 책의 저자나 전문가 역시 견해가 변할 수 있다는 것도 유념해야 한다.


그러므로 각 사안마다 공부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고, 특히 '나'라는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그때그때마다 고민해 나갈 수밖에 없다. 이리저리 바뀌는 육아법 트렌드에서도 날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이다.  


사실 나도 조금 많이.. 프랑스 문화를 애정하는 사람이다. 프랑스문학을 전공했고 파리를 매우 사랑한다. 그런데 저 책 저자만큼은 아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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