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가 말하는 오리지낼리티
나는 남편과 소개팅으로 만났다. 사실 딱 처음 만나자마자 서로 완벽하게 마음에 든 것은 아니었던 듯하다. 우리는 홍대입구 3번 출구에서 연남동으로 들어가는 골목에서 만났다. 나는 대학생활 내내 이 동네에서 실제로 거주한 적도 있고 거의 살다시피 한 시간이 많았으므로, '어디로 갈까요?'라는 물음에 내심 '당신이 이 동네에서 픽하는 식당은 내가 거의 다 알고 있을 걸'이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소개팅남을 따라 간 골목은 내가 8년 동안 처음 본 골목의 식당이었다. '아니 이 구역에 이런 골목, 이런 식당이 있었단 말이야?' 맛집에 꽤 자신 있었던 나도 신선한 골목이었다. 사실 그곳은 이제 맛집 좀 아는 사람이라면 많은 이들이 아는 식당이 됐지만, 그 당시만 해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 곳이다.
그 식당에서 우리는 하이볼을 마셨다. 그의 식당 선정에 꽤 마음이 들었던 나는 먼저 질문을 던졌다. 그날은 토요일 오후였으므로, '오늘 오전엔 뭘 하시다가 나오셨나요?'라고 스몰토크를 시작했다. 뭐 대충 영화를 봤다거나, 집에 있었다거나 운동을 했다거나, 남은 일이 있었다는 정도의 대답이겠지. 그는 '아 요새 술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어서 막걸리 만드는 학원에 다니고 있어요. 거기서 막걸리 만들고 왔어요'라고 말했다. 음? 막걸리를 마신 게 아니라 만들고 왔다고라? 오? 신선한데..?
내가 그에게 느낀 첫 호감의 감정은 '신선함'이었다. 물론 그 뒤로 나와 공통점 등을 확인하는 동질감의 감정을 느끼긴했다. 그럼에도 첫 신선함의 인상은 여운이 있었다. 보통 이성에게 호감이 있다고 확인하는 감정은 외모가 잘생겼다라거나 몸이 좋다, 똑똑하다, 부지런하다, 열심히 산다, 옷을 잘 입는다, 말이 잘 통한다 정도의 느낌이었는데 신선함도 호감의 감정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그 뒤로 나에게 '신선함'이라는 감정은 매우 중요한 단어가 되었다. 누군갈 만날 때 신선함을 느끼고 싶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신선함-후레쉬함~-을 선사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나의 카톡 프로필 문구에 이 단어를 오래도록 써놓기도 했다.
하루키 이야기를 하는 연재물에서 어쩌면 좀 TMI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에게 왜 '신선함'이라는 단어가 중요했는지 설명해야 할 것 같아서 써보았다.
연재의 이야기로 돌아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4장은 '오리지낼리티에 대해서'라는 장이다. 이 장에서도 신선함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온다.
이 장에서 하루키는 어떤 것이 '오리지널'인가에 대해 서술한다. 음악광이기에 첫 예시는 비틀스의 '플리즈 플리즈 미'와 비치 보이스의 '서핀 USA'다. 그 외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도 오리지널의 예시에 들어간다.
이들의 공통점은 처음 들었을 때 '굉장하다'라는 느낌이 들지만, 동시에 많은 이들에게 혼란을 주고, 꽤 많은 이들에게 비판을 받는다는 점을 든다.
비틀스는 데뷔 처음부터 많은 인기를 얻긴 했지만 그들의 헤어스타일이나 패션 등은 큰 사회문제로 어른들의 혐오 대상이기도 했다고 한다. 비슷하게 미술 분야에서는 고흐나 피카소, 문학에서는 나쓰메 소세키나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있다.
그러면서 하루키는 자신의 소설에 대한 반응도 비슷했다고 한다. 물론 개중에는 하루키의 작품을 나름대로 좋게 평가해 주는 관계자도 있었지만, 그 수도 적고 목소리도 작았다며, 업계 전체적으로 보면 ‘예스’보다는 ‘노’라는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컸다고 전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소설은 당시 문단 시스템과 너무 빗겨있었고, 편집자들에게 자주 '전례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관례’ ‘문학계의 불문율’을 거스르겠다는 식의 의식은 딱히 없었습니다. 다만 지극히 개인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인간이라서 어렵사리 이렇게 (일단은) 소설가가 되었으니까, 그리고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니까,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나가자고 처음부터 마음을 정했습니다.
시스템은 시스템대로 해나가면 될 것이고 내 쪽은 내 쪽대로 해나가면 된다. 나는 1960년대 말의 이른바 ‘반란의 시대’를 뚫고 나온 세대의 사람이라서 ‘체제에 말려들고 싶지 않다’는 의식은 나름대로 강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시에,라고 할까, 그보다는 우선, 그래도 명색이 표현자의 말단으로서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자유롭고 싶었습니다. 내가 쓰고 싶은 소설을 내게 맞는 스케줄에 따라 내가 원하는 대로 쓰고 싶다. 그것이 작가인 내가 가져야 할 최저한의 자유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세간의 비판을 많이 받아왔음에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이런 ‘최저한의 자유’를 추구하고 있었고, 그 ‘자유로움’에서 오리지낼리티가 나왔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오리지낼리티는 자유로부터 나온다, 다시 한번 곱씹어보는 대목이다.
그러면서 오리지낼리티의 정의를 마무리하기 위해, 비틀스를 평가한 뉴욕타임스의 기사를 인용한다.
They produced a sound that was fresh, energetic and un-mistakably their own.
(그들이 창조해 낸 사운드는 신선하고, 에너지가 넘치고, 그리고 틀림없이 그들 자신의 것이었다.)
아주 심플한 표현이지만 이것이 오리지낼리티의 정의로서는 가장 이해하기 쉬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선하고, 에너지가 넘치고, 그리고 틀림없이 그 사람 자신의 것인 어떤 것.’
그러면서 이 장은 하루키 자신도 ‘사람들의 마음의 벽에 새로운 창을 내고 그곳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고 싶다’고 희망하면서 끝난다.
오리지낼리티에 대한 정의를 다룬 이 장을 통해 나는 왜 다시한번 내가 그 사람과 사랑에 빠졌는지 확인했다. ‘그 사람 자신의 어떤 것‘은 곧 신선함을 선사한다. 그렇기에 나 역시 신선함을 느껴버린 그 사람에게 빠져버렸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