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가 말하는 '소설가에게 상보다 중요한 두가지'
일을 할 때는, 기사나 외고를 제외하고 보통 불행할 때 글을 썼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서 일을 하다가 집에 와서까지 쓰고 싶은 마음이 크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평을 늘어놓고 싶을 때, 감정 배설하는 듯한 글을 썼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쓰는 기사에서는 그렇게 '시청자' 혹은 '독자'를 생각하는 태도를 강조해 놓고, 독자나 취재원에게 잘보이려고 했으면서, 개인적인 글쓰기에서는 독자를 상정하지 않았던 것 같다.
누군가 나의 배설 같은 글을 맞고 지나가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기사가 아니니까 별로 상관없겠지, 라고 생각한 점도 있었다.
마치 나의 글쓰기는 '기복신앙'과도 같았다. 불행할 때만 울면서 나에게 복을 달라고 글쓰기를 했었던 것이다.
휴직을 하면서 기사가 아닌 내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를 쓰거나 좋아하는 책 이야기들을 썼다. 이때부터 개인적인 글을 읽어주는 '독자'라는 개념에 감사함을 느낀 것 같다.
내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야기를 하려니 그 연결지점이 없어 송구스럽지만, 어쨌든 연재글의 형태이니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3장에서 하루키가 독자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부분으로 점프해볼까 한다.
독자에게 감사함을 느끼는 일이 글 쓰는 이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배우게 된 장이다.
하루키는 3장에서 '사실 문학상 같은 건 정말 안 받아도 돼'라는 말을 길게 한다. 이유는 하루키에게 상이 아니라 중요한 것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참된 작가에게는 문학상 따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주 많다’라는 것이겠지요. 그 하나는, 자신이 의미 있는 것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실감이고, 또 하나는 그 의미를 정당하게 평가해 주는 독자가─그 수의 많고 적음은 제쳐두고─분명하게 존재한다는 실감입니다.
그 두 가지 확실한 실감만 있다면 작가에게 상이라는 건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것입니다. 그런 건 어디까지나 사회적인 혹은 문단적인 형식상의 추인追認에 지나지 않습니다.
때문에 하루키는 앞선 연재에서 언급한 아쿠타가와상에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1973의 핀볼'이 후보로 올라갔음에도 "지금 이 단계에서 그렇게까지 높은 평가를 받는 것 좀 'too much'가 아닌가 하고. 좀 더 쉽게 말하면 '엇, 이런 정도로도 괜찮아요?'라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부분에서 육성으로 터져버렸다. 너무 귀엽게 겸손하신 것 아닌가 하는.
그래서 기자들에게 항상 '상을 받아도, 안 받아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말을 하는데 아무도 믿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저 대답에서 또 이런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요즘 책 읽는 사람이 없잖아요. 다 숏폼 이런 것만 보고. 그런데도 계속 이런 태도를 견지하시겠어요?'라는.
하루키는 또 이렇게 말한다.
어디까지나 눈대중에 지나지 않지만, 습관적이고 적극적으로 문예 서적을 읽는 층은 일본 전체 인구의 5퍼센트쯤이 아닌가 하고 나는 추측합니다. (...) 요즘 책에 무관심하다, 활자에 무관심하다,라는 얘기가 자주 들리고 그건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5퍼센트 전후의 사람들은 설령 ‘책을 읽지 마라’고 위에서 강제로 막는 일이 있더라도 아마 어떤 형태로든 계속 책을 읽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분명하게 책을 읽어주기만 하면 그것으로 괜찮습니다. 내가 진지하게 염려하는 것은 나 자신이 그 사람들을 향해 어떤 작품을 제공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뿐입니다.
그래서 결국 하루키에게 상은 어디까지나 작가를 '지원하는 것'이라고 한다. "작가가 행해온 작업의 성과도 아니고 보상도 아니고 하물며 결론 같은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결국엔 상 보다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결과물'을 낼 수 있느냐라는 말이다. 그와 함께 소중한 독자의 평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덧붙이고 싶다. '독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하시는데, 그 상을 주는 사람들도 '독자'의 일부가 아닙니까?'라는. 독자가 소중하다면 상을 주는, 권위를 가진 독자도 똑같이 중요한 것 아닌가요? 라고.
하루키가 무어라고 대답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핵심은 남의 시선보다는 자신의 시선에서 만족할 만한 작품을 만들면 된다는 식의 대답일 것이다.
이렇게 보면 어쩌면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은 타인의 시선을 조금 많이 무시할 줄 알아야 하는 것 같다. 일종의 오만함을 장착해야 한다고.
하루키도 이 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개인적인 견해를 솔직히 말하게 해 주신다면, 그 정도의 오만함 없이는 애초에 소설가라는 건 될 수 없습니다.
내가 소설가가 될 수 없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호호) 하루키는 어떤 면에서는 참 겸손하기도('엇, 이 정도로도 괜찮아요?'같은 대사에서 보이는), 한편으로는 참 자신만만한 캐릭터이다.
드디어 4장이다. 4장에서는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하루키의 생각이다. 이 장도 참 할 말이 많은 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