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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Dec 12. 2023

인간관계가 망한 사람들

하루키가 속물적인 사안에 대해 솔직하게 답한 이유


두 번째 연재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하루키가 지금까지 받았던 비판들에 대해 '제대로 한번 해명해 보겠다'라고 작정한 것처럼 느껴진다. 두 번째 장에서 자신이 왜 정치적인 것과 멀어졌는지, 왜 불성실한 인터뷰이로 맨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라는 식으로 말하는지에 대해 해명(?)했다.


하루키의 에세이 중에서도 이 책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지금까지는 말하기 어려웠던, 문학상이라든가 문단과의 관계라든가 하는 '속물적' 이슈에 대해 진솔하게 말하기 때문이다. 역시 나는 속물적인 이야기가 제일 좋다..


기자들이 지금껏 계속 물어왔으나 명확한 답변이 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작정하고 쓴 느낌이 있기에, 하루키의 '진짜 생각'을 듣는 기분이다.


세 번째 장은 두 번째 장보다 더 본격적이다. 문학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은 세 번째 장에서는 일본의 아쿠타가와상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하루키는 "상당히 직접적이고 미묘한 부분을 건드리는 화제여서 섣불리 말하기가 힘들지만, 그래도 오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이쯤에서 한번 언급하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말한다.


마치 베일에 가려져왔던 화제의 인물이, 기자들이 인터뷰를 하자고 해도 계속 거절했던 인물이 어느 날 '그럼 나 그냥 기자회견할게'라고 했을 때의 두근두근함이라고 할까.




남의 말에 신경을 쓰지 않는 하루키 같지만, 이 장의 시작은 모 문예지에서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읽고 시작된다. 문예지의 한 칼럼에서 아쿠타가와상에 대해 언급하며 "아쿠타가와상에서 떨어지고 문단을 멀리하는 무라카미 하루키 씨 같은 작가가 있어서 점점 더 그 권위의 가치가 드러난다"라고 쓴 대목을 읽은 하루키의 생각이다.


누군가 하루키에게 날린 잽을, 제대로 잘근잘근 씹는 하루키의 '디스전'이라고 읽어도 될 정도다.


실제로 하루키는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두 번 올랐지만 수상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하루키는 그 상을 못 타서 문단에서 멀어진 것이 아니라 '애초에 상이나 문단에서 관심이 없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난 상이나 문단에 관심이 없어~'라고 말하면 다들 '에이.. 괜히 하는 말이겠지.' 혹은 '하하 그렇게 말하겠지'라는 조롱하는 분위기가 있기에 제대로 한 번 설명에 나선 것이다.


하루키는 자신이 상이나 문단에 관심이 없는 이유를, 애초에 등단 자체를 '감'으로 해버렸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등단 이전에 등단을 하려고 문단을 연구하고, 기웃거렸다면 문학상이나 문단에 관심이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관심 자체가 없다는 말이다. (그놈의 감, '에피퍼니'에 대해서는 연재글 2번째에서 자세하게 다뤘다.)


두 번째는 이미 매우 잘 알려진 바대로, 전업 작가가 된 이후로는 너무나 성실한 삶을 사느라 다른 것에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전업 작가가 된 뒤로는 그렇게까지 바쁘지는 않았지만, 생각하는 바가 있어서 현실적으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을 하고 일상적으로 운동을 하고 그 덕분에 밤에 어딘가에 나가는 일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주쿠 골든가에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 문단에 대해, 혹은 골든가에 대해 무슨 반감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그냥 현실적으로 그런 장소에 관여하거나 찾아가거나 할 필요성도 시간적 여유도 그 당시의 나에게는 어쩌다 보니 없었던 것뿐입니다.



이 장에서 매우 흥미로운 점은 하루키가 아쿠타가와상 등 다른 문학상에는 전혀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심사위원 등도 모두 거절하지만, 자신이 처음탄 상, 즉 문예지 '군조'에서 탄 상에 대해서는 굉장한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하루키는 자신이 처음 신인상을 탄 것에 대해서는 일종의 문학계로의 '입장권'이라고 말한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라는 작품이 문예지 <군조>의 신인상에 선정되었을 때는 정말로 순수하게 기뻤습니다. 그건 널리 전 세계를 향해 단언할 수 있습니다. 내 인생에 있어서 참으로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에게는 그 상이 작가로서의 ‘입장권’이었기 때문입니다. 입장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얘기가 완전히 다릅니다. 눈앞의 문이 열리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그 입장권 한 장만 있으면 그다음은 어떻게든 될 거라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아쿠타가와상이 이러니 저러니 하는 건 그 시점에는 생각할 여유도 없었습니다.



그러면 독자들이나 기자, 문학평론가들은 이러한 비판을 제기할 수 있다. 자신이 처음 탄 상을 '입장권'이라고까지 말해놓고, 다른 사람의 입장권이 될 수 있는 문학상 심사는 의미 없다는 식으로 말하면 이중적인 것 아니냐, 이기적인 것 아니냐 하는. 하루키는 이러한 비판에 이렇게 답한다.


이미 작가로서의 지위가 어느 정도 정착된 사람이라면 또 모르지만, 이제 막 나온 신인 작가의 명운을 나만의 선입견이 걸린 세계관으로 좌지우지하는 그런 일은 무서워서 도저히 못 합니다.


그러면 대(?) 작가의 사회적 책임을 방기 하는 것 아니냐, 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이에 하루키는 또 답한다.


너도 그와 똑같은 서비스를 젊은 세대에게 제공할 책무가 있는 것 아니냐. 세계관에 다소의 선입견이 걸려 있다고 해도, 노력해서 최저한의 객관성을 배워 후배를 위해 이번에는 네가 입장권을 발행해 기회를 부여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 그렇게 말한다면 분명 그것도 맞는 말입니다.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한마디로 나의 태만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잠깐만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만, 작가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책무는 조금이라도 질 좋은 작품을 지속적으로 독자에게 제공하는 것입니다. 나는 일단 현역 작가고, 말을 바꾸자면 아직 발전 도상에 있는 작가입니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는지, 앞으로 무엇을 하면 좋은지, 그걸 아직 더듬더듬 찾아가는 처지입니다.


하루키는 자신은 성실하게 소설을 쓰는데 집중할 뿐이고, 문학상이나 문학상 심사는 자신의 의무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솔직하게 내게는 그럴만한 여유가 없습니다. 그걸 둘 다 동시에 잘 해내는 분도 계시겠지만, 나는 나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를 하루하루 완수하기에도 벅찬 형편입니다."라고 말한다.


쉽게 말해 소설을 쓰느라 다른 데에 쓸 에너지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내 사정만 앞세우고 이기적인 이야기라 또 비판한다면, 그 비판은 달게 받겠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사안에 대해(그냥 속물적인 사안이라고 할까요) 생각하는 바를 얘기하기가 상당히 어렵군요. 경우에 따라서는 솔직하게 말할수록 더 거짓말 같고, 또한 오만하게 비칠지도 모릅니다.

던진 돌멩이가 더 강하게 내게로 되돌아올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 최종적으로는 가장 득책이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분도 분명 어딘가에는 계실 것이다, 하고.




이 장을 읽고 최근 유퀴즈에 나왔던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떠올랐다. 하루키와 함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 중 하나가 이동진 평론가인데 하루키가 3장에서 하는 말과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유퀴즈에서 조세호가 "영화도 그렇게 보시고, 책도 그렇게 보시고. 도대체 어떻게 시간관리를 하시느냐"라고 물었다. 이에 이동진은 "인간관계 망하면 됩니다."라고 답한다.



어쩌면 하루키와 이동진은 자신의 본업에 충실할 시간도 너무나 모자라다고 생각해, (그렇기에 본업에서 그렇게 출중한 아웃풋을 내는 것일 테다) 다른 것들은 '망하게' 놔두었다고 해야 하나. 특히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을 포기한 듯하다. 


어째 두 분은 그런 부분에서 조금 비슷한 모양새가 있다.


다음 연재 5화에서도 여전히 3장에 대해 이야기할 것 같다. 3장은 전자책 '하이라이트'의 기능이 필요 없을 정도로, 거의 모든 문장에 '하이라이트'를 친 장이기도 하다. 그만큼 강렬한 공감이 간 장이다.


자신의 에너지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 가늠하고, 다른 것에는 신경 쓸 겨를 없이 소설에만 그 에너지를 사용하겠다는 의지. 그렇다고 해서 세간의 비판에 귀를 닫지 않고, 솔직하게 쳐낸다. 솔직한 것이 결국은 가장 득책임을 알기에. 또 솔직함을 받아들여줄 독자를 믿기에. 그럼에도 남아있는 비판엔 '그 비판은 달게 받겠다'는 말까지. 하나하나 모두 배우고 싶은 삶의 자세다.


그 외에도 3장에는 독자에 대한 애정, '소설가가 문학상 보다 중요하게 여겨야 할 덕목'을 제시하는데 그 부분은 5화에서 이어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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