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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Dec 22. 2023

맥주가게의 우롱차를 좋아합니다

하루키가 만든 캔 우롱차의 맛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5장 '자, 뭘 써야 할까?' 챕터는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챕터다. 가장 좋아하는 챕터라 할 이야기도 많지만 곤란한 점도 있다. 이미 이 챕터를 인용한 글을 쓴 적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연재를 시작하게 된 것도 그 글을 쓰면서 '아니, 아무리 리뷰라지만 이 책을 하나의 포스팅으로 다룬다는 게 말이 안 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가 '책 한 권을 줄줄이 길게 리뷰로 다루면, 누가 네 글을 읽니? 차라리 하루키 원본 책을 읽지'라고 말해도 솔직히 할 말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책에 대해 할 말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글을 통해 하루키 책을 읽어본다면 그건 더 좋은 일이고 말이다.


이 장을 통해 3가지 이야기를 해볼 수 있다.

지속가능하게 글을 쓰려면 외부의 힘이 아닌 내부의 '자연 재생 에너지'가 필요하다.

소설가에게 필요한 자질은 빠르게 평가 내리는 능력이 아닌 관찰 능력이다.

하루키는 글감을 따로 메모하지 않고, 머릿속의 '캐비닛'에 글감을 저장해 두는 걸 좋아한다.  




우선 1번에 대해서는 이미 글을 썼다. 하루키가 헤밍웨이를 언급하면서 지속가능한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 쓴 글이 있으니 간단하게만 언급만 해보겠다.


하루키는 전쟁을 모티브로 쓰는 헤밍웨이를 두고 묵직한 소재를 가지고 출발한 작가로 분류하고, 초기 소설이 좋다고 말한다. 헤밍웨이가 계속 전쟁에 참가하고 투우에 빠지거나 낚시에 빠진 모습을 보고 '항상 외적인 자극이 필요했던 것'이라고 봤다.


반면 자신은 묵직한 소재에 대해 쓰지 않아 가벼운 이야기를 쓰는 사람으로 비판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한다.


다만 그런 자신에 대해 '써야 할 것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말을 바꾸면 '무엇이든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것이라 이야기한다. 오히려 묵직한 소재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내측에서 스토리를 짜낼 수 있는 작가라면 도리어 글쓰기가 편하다고 한다. 이것이 하루키가 말하는 '자연 재생 에너지'이다.


하루키는 오랫동안 외부에서 '이런 건 소설도 아니다', '문학도 아니다'라는 평을 받아왔다고 한다. 하루키가 쓰는 것이 묵직하지 않다는 것은 스스로도 알고 있는 듯하다. 그런 평들에 하루키는 이렇게 답한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새로운 세대에게는 새로운 세대만의 소설적 소재가 있고, 그 소재의 형태나 무게로부터 역산逆算해서 그것을 실어 나를 비이클의 형태나 기능이 설정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소재와 비이클과의 상관성에서, 그 접면接面의 바람직한 자세에서, 소설적 리얼리티라는 것이 탄생합니다.

어떤 시대에도 어떤 세대에도 각각 고유의 리얼리티가 있습니다.


이전 시대에는 묵직한 것을 쓰는 세대였고 자신의 글에 대해 가볍다고만 평가했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신의 글도 틀리지 않았다고 증명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러면서 35년간 이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멋진 자신감이라고 생각한다.


하루키의 말은 묵직한 이야기를 쓰지 않는 사람, 역사적이거나 철학적인 이야기를 쓰지 않는 사람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는다. 꼭 외부의 것을 비판하거나 평가하거나 역사적으로 남아야 하는 이야기를 쓰지 않아도 된다고, 자신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것을 꾸준히 성실히 스스로 만족감을 느낄 정도로 쓴다면 새로운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하루키는 자신 안의 이야기를 쓰면서, '건전한 야심을 잃지 말라'라고 한다. 1장의 '링에, 어서 오십시오'와 같은 말처럼 하루키는 항상 글을 쓰려는 사람에게 파이팅을 보내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 하루키로부터 건전한 야심을 가지고 꾸준히 써보라는 응원을 받는 것 같다. 때문에 나는 글쓰기를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이 책을 펼쳐보게 된다.


(관련해 이전에 쓴 글은 여기)

https://brunch.co.kr/@after6min/102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인데도 깨끗한 이유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전자책을 사버렸기 때문이다.

그럼 두 번째 이야기로 넘어가겠다.

소설가에게 필요한 자질은 빠르게 평가 내리는 능력이 아닌 관찰 능력이다.


외적인 자극을 통해 묵직한 것을 쓰는 것도 좋지만, 내 안의 이야기를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관찰'을 꾸준히 해야 한다는 말이다.


‘소설을 쓰기 위해 필요한 소재가 나에게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약간만 시점을 바꾸면, 발상을 전환하면, 소재는 당신 주위에 그야말로 얼마든지 굴러다닌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당신의 눈길을 받고 당신의 손에 잡혀 이용되기를 기다립니다.

인간의 삶이란 얼핏 보기에는 아무리 시시하더라도 실은 그런 흥미로운 것을 자연스럽게 줄줄이 만들어냅니다.



이런 조언은 사실 하루키 외에도 너무 많은 소설가들이 이야기하는 부분이긴 하다. 얼마 전 김영하 작가의 글쓰기 수업을 들었는데 해당 강의에서도 똑같이 강조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그 글을 링크하고 넘어가겠다.


https://brunch.co.kr/@after6min/170



세 번째 이야기는 더 가벼운 이야기다.

하루키는 글감을 따로 메모하지 않고, 머릿속의 '캐비닛'에 글감을 저장해 두는 걸 좋아한다.  


이 이야기는 수많은 작가들이 하는 이야기와 좀 다른 것 같다. 거의 모든 작가들은 메모를 매우 중요시하고 항상 글감을 메모하는 듯 보인다.


사실 나 역시 매우 시답잖은 것도 모두 적어놓는 메모/기록광이긴 해서, 메모앱도 여러 가지를 쓰는 사람이라 하루키의 이 말은 나에게 적용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이 말을 통해 다시 한번 하루키는 역시 조금 천재과가 아닌가 싶긴 하다.


물론 전용 노트를 만들어 거기에 써두는 것도 좋지만, 나는 그보다는 머릿속에 담아두는 쪽을 좋아합니다. 노트를 항상 들고 다니기도 번거롭고, 일단 문자로 적어두면 그걸로 안심하고 싹 잊어버리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머릿속에 다양한 것을 그대로 척척 넣어두면 사라질 것은 사라지고 남을 것은 남습니다. 나는 그런 기억의 자연도태를 선호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나도 '지금 내 손에 노트가 있었다면'하고 아쉬워할 만한 착상은 이때까지 거의 없었다"라고 말할 정도다.


그는 머릿속 '캐비닛'에 글감들을 넣어두고 소설을 쓸 때 이를 하나씩 꺼내 쓴다고 한다. 그는 소설을 쓰는 시기에는 '책상을 깨끗이 하는 일'이 필수인데, 그것이 바로 소설을 쓸 때 외국으로 떠나거나, 에세이 등 연재를 잡지 않는 일이라고 한다.


나에게 에세이란 굳이 말하자면 맥주 회사가 출시한 캔 우롱차 같은 것, 이른바 부업입니다. 정말로 좋은 소재는 다음 소설=본업을 위해 챙겨둡니다. 그런 소재가 그득하게 모이면 ‘아, 소설 쓰고 싶네’라는 기분도 저절로 솟아납니다. 그래서 가능한 한 소중하게 아껴둬야 합니다.


이런 에세이를 맥주 회사가 출시한 캔 우롱차라고 표현하다니, 그의 에세이를 좋아하는 나는 좀 상처를 받아버렸다. 그렇지만 사실 나같이, 맥주 회사의 맥주보다도 우롱차를 더 좋아하는 고객이 있다는 점은 어쩌면 맥주 회사의 입장에서도 좀 섭섭한(?) 일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늘도 난 그가 만든 캔 우롱차를 마시며 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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