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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Dec 29. 2023

'마감에 허덕이는 나'는 안멋지다

하루키가 말하는 마감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6장의 제목은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든다'이다. 하루키가 생각하는 '마감'에 대한 이야기다. 하루키가 성실한 작가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긴하다. 그러나 그가 마감에 대해 생각하는 바를 읽다 보면 '아, 역시 이 정도이니 가능하구나'라는 깨달음이 온다. 


하루키가 인기 있는 이유를 쓰려면 논문급의 글을 써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가볍게 한마디 걸쳐보자면, 하루키가 인기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쓴 글 내용뿐 아니라 그의 인물됨 때문도 있는 것 같다. 널리 알려진 그의 성실함, 멋진 취향과 함께 꾸준한 체력관리 등 자기 관리를 잘하고 센스 있는 인물상 같은 것. 


그의 에세이를 읽다 보면 성실함의 토대가 되는 멘탈을 엿볼 수 있는데 그것이 일종의 '성공한 사람의 자기 계발서'처럼 읽히는 부분이 있다고나 할까. 귀여운데 단호한 스타일이라고 해야 하나. 6장을 읽다 보면 다시 한번 그 귀여운 단호함에 홀딱 빠져버린다.




우선 마감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보겠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면 보통 '마감'이라는 단어에 양가적인 마음을 품을 것이다. 애증의 단어다.


매일매일 마감이 있는 기자 역시 이 말에 애증이 매우 깊다. 쳐내고 쳐내도 또 오는 마감일이 집안일처럼 지겹다가도, '마감이 있는 나'라는 자아를 잃고 싶지 않다. '마감해야 돼'라고 말하는 내가 조금은 멋져 보이지 않을까 싶은. 그런 징그러운 마음이 있다.


나는 마감을 매우 잘 지키는 편이다. 9년 동안 일하면서 '의도치 않게' 마감을 지키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다. 편집국에서의 마감 역시 마찬가지고 편집국 외부에서 의뢰하는 외고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학교 과제 같은 일에서도 마감을 어겨본 적이 없다. 


다만 종종 기사를 쓰면서 '의도를 가지고' 마감을 안 지킨 적은 있다. 예를 들어 아무리 생각해도 이 기사는 당장 마감을 해도 주말에 노출될 것 같은 때. 마감에 임박해 데스크에 '이 건은 오늘까지는 못쓸 것 같습니다'라고 보고한 적 있다. 당장 쓸 것들이 즐비하고 오늘은 그것에만 집중해도 될 것 같은데, 데스크께서.. 괜히(?) 마감을 일찍 잡아놓은 아이템의 경우 말이다. 약간의 저항정신을 가지고 마감을 어겨본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의도한 마감 어기기 외에는 외고에서도 마감날보다 늦게 원고를 보내본 적은 없다.




그래서 나는 나의 마감 생활에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여기고 살아왔다. 아니 오히려 꽤 자랑스럽게 마감 능력을 자랑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남편과 살면서 '어 이렇게 하는 거 아닌가' 싶은 감정을 느낀 적이 많다.


나는 마감날에 늦지는 않지만, 마감날에 딱 맞춰 원고를 보내는 편이다. 예를 들어 10월에 원고 의뢰가 들어온 외고가 있다고 치자. 그런데 마감은 12월 10일이라고 치자. 시간이 매우 풍족한 원고라도 해도, 나는 12월 10일에 원고를 보낸다. 그리고 2달 동안 머릿속에 원고를 생각하긴 하는데, 원고를 실제로 쓰기 시작하는 시기는 12월 1일 정도부터다. 그리고 10일 동안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마감이 얼마 안 남았어..'라면서 글을 쓰는 스타일이다. 게다가 두 달 정도 이미 그 원고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으므로, 꽤 오랫동안 그 글 때문에 시간과 에너지를 잡아먹는 것이다.


이런 나의 모습을 몇 년 간 본 남편은 "도대체 왜 그렇게 일을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지적을 해댔다. 시간이 많았는데 왜 마감에 허덕이냐는 것이 비판의 골자다. 남편은 파워 J이기도 하지만 성격이 워낙 급하다. 예를 들어 10월에 원고 의뢰가 들어오면 10월에 바로 써버리는 타입이다. 그리고 원고도 빨리 송고해 버리는 스타일이다. 


오히려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니 마감이 12월인데 10월에 원고를 보내면 어쩌자는 거야. 상대가 성의 없게 생각할 거 아냐. 다 써놨더라도 미리 보내면 안 되지'라고 대꾸한다. 뭔가 대학생 때 시험을 볼 때 시험 시간이 1시간인데, 15분 만에 답안을 쓰고 나가는 사람을 보는 불안함이라고 해야 하나. 내 기준에는 아무리 시험 답안을 다 썼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50분 정도에 나가는 것이 교수님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남편은 '아니 원고 송고는 12월에 한다고 해도, 10월에 다 써놓고 다른 걸 또 쓰면 되지, 왜 그것만 계속 두 달을 붙잡고 있는 거야?'라고 말했다. 극 J에 극효율주의자인 그의 눈에는 나의 일처리 속도와 행색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남편의 지적을 듣고도 '원래 마감쟁이들은 마감이 닥쳐야 일한다고!!'라면서 내 마감 방식을 합리화해 왔다. 그리고 남편의 지적 사항에 대해 '마감만 맞추면 된 거지. 그전에 어떻게 일하느냐는 성향 차이가 아닌가?'라고 수긍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6장 마지막 즈음 하루키가 이런 말을 한다.


요즘에는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옛날 작가들 중에는 ‘마감에 쫓기지 않고서는 소설 같은 건 못 쓴다’고 호언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문인답다’고 할까 스타일로서는 꽤 폼 나게 보이지만, 그렇게 시간에 쫓겨 급하게 글을 쓰는 방식이 언제까지고 가능한 게 아닙니다. 젊은 시절에는 그걸로 잘 풀렸더라도, 또한 어느 기간에 그런 방식으로 뛰어난 작품을 써냈더라도, 긴 스팬을 두고 부감해 보면 시간의 경과와 함께 작품이 점점 묘하게 비쩍 마른 듯한 느낌이 듭니다.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자면 어느 정도 자신의 의지로 시간을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입니다. 시간에 컨트롤당하기만 해서는 안 되지요. 그래서는 역시 수동적이 되고 맙니다.

‘시간과 밀물 썰물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지만, 그쪽에서 기다릴 생각이 없다면 그런 사실을 분명하게 받아들이고 이쪽의 스케줄을 적극적으로, 의도적으로 설정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즉 수동적이 아니라 내 쪽에서 적극적으로 도전해 가는 것입니다.


안 그래도 최근에 남편의 지적사항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게 좀 비효율적인가?'라는 생각이 심어져 있었던 마음에 강한 펀치가 들어왔다. 하루키의 이 문장을 마주하고는 '호에엥..'하고 시무룩해져 버렸다. 하루키의 단호한 "마감 시간에 컨트롤당하기만 해서는 안 되지요.'라는 말에 완전 넉다운된 것이다.


나는 어쩌면 '마감쟁이'라는 틀 안에서 마감에 허덕이는 나의 모습을 조금 '폼난다'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폼나는 것 같은 모습' 때문에 일을 비효율적으로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러면서 하루키는 이렇게 말한다. 이미 넉다운되어 쓰러진 나에게 마지막 발길질을 날리는 듯하다.


나의 어떤 작품도 ‘시간이 있었으면 좀 더 잘 썼을 텐데’라는 것은 없습니다. 만일 잘 못 쓴 것이 있다면 그 작품을 쓴 시점에는 내가 아직 작가로서의 역량이 부족했다─단지 그것뿐입니다.


그래서 이 장의 제목은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든다'이다. 어쩌면 조금 자기 계발서스러운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관은 없는 것 같다. 


나 역시 앞으로는 마감보다 더 일찍, 나의 '시간에 맞춰' 원고를 작성하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남편이 나에게 '내가 말할 땐 안 듣고!!'라는 반응을 보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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