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가 말하는 운동과 글쓰기의 시너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7장은 '한없이 개인적이고 피지컬 한 업(業)'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제목에서도 유추해 볼 수 있고 하루키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알만한, 꾸준한 운동에 대한 이야기다. 하루키는 하루에 1시간씩 달리기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동시에 루틴 하게 하루에 200자 원고지 20장을 쓴다는 것도 유명한 이야기다. 하루키의 달리기에 대해서는 따로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로 나왔을 정도이며, 많은 이들의 최애 에세이로 꼽히고 있다.
그가 날이면 날마다 판박이처럼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는 것에 장의 절반 이상을 할애한다. 다 아는 이야기임에도 한 문단을 인용해 보자면, 이 문단이다.
나는 어느 젊은 작가와 인터뷰할 때, “작가는 군살이 붙으면 끝장이에요”라고 발언한 적이 있습니다. 그건 좀 극단적인 말이었고 예외도 물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전혀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물리적인 군살이든, 메타포로서의 군살이든. 많은 작가들이 그런 자연스러운 쇠퇴를 문장 기법의 향상이나 성숙한 의식 같은 것으로 보완하지만 거기에도 역시 한계가 있습니다.
나 역시 올해 목표 중 하나가 '절제해서 먹기', 즉 다이어트인데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이 목표를 이루겠다고 다짐했다. 최종 목표는 출산 후 찐 살들을 빼고 출산 이전보다도 4kg 정도 더 빼는 것이다.
누군가는 다이어트와 글쓰기가 무슨 상관이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 역시 이 장을 읽기 전에는 그 연관성이 어렴풋하게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제대로 설명해 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 장을 읽고는 그 연관성을 설명할 수 있게 됐다.
이 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몸을 움직이는 것과 뇌를 움직이는 것이 조화되어야 지속가능하게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뇌 내에서 태어나는 해마 뉴런의 수는 유산소 운동을 통해 비약적으로 증가한다고 한다. 그러나 운동으로 해마 뉴런의 수가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가만히 놔두면 28시간 뒤 소멸해 버린다. 그러나 이 새로운 해마 뉴런에 지적인 자극을 주면 이것이 뇌 내의 네트워크와 이어져 신호 전달 커뮤니티의 유기적인 일부가 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육체적인 운동과 지적인 작업의 조합이 창조적 노동에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하루키 역시 작가가 되면서부터 삼십 년 넘게 매일 한 시간 정도 달리기와 수영을 해왔다고 한다. 운동 1시간과 5~6시간의 집필이 하루의 루틴인 것이다.
정신이든 두뇌든 그건 결국 똑같이 우리 육체의 일부인 것입니다. 그리고 정신과 두뇌와 신체의 경계는 내가 생각하기에는─생리학자가 어떻게 설명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그다지 뚜렷하게 명확한 선으로 구분되는 게 아닙니다.
육체적인 physical 힘과 정신적인 spiritual 힘은 말하자면 자동차의 양쪽 두 개의 바퀴입니다. 그것이 번갈아 균형을 잡으며 제 기능을 다할 때, 가장 올바른 방향성과 가장 효과적인 힘이 생겨납니다.
또 하나 이야기 해볼 만한 재미있는 점은 이 같은 루틴 한 삶에 대해 뇌과학적인 연구로도 그 중요성이 입증됐지만,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별로 '멋지다'라고 생각하지 않다는 점이다. 사실 지금이야 루틴적인 삶을 '갓생'이라 여겨주고 치켜세우지만, 여전히 일부는 '아니 뭔 소설가(예술을 하는 사람)이 이렇게 재미없게 살아?', '우리가 저렇게 재미없게 사는 사람이 쓰는 글을 읽었단 말이야?'같은 시선도 있을 것이다. 혹은 이렇게 열심히 사는 것에 대해 '하루키도 천재는 아니네?'라는 식의 깎아내림의 시선도 있을 수 있다.
우리나라나 어디나 노력보다는 재능에 대해 더 후하게 쳐주는 문화는 똑같으니. 뭔가 루틴 하게 노력을 하면 천재가 아닌 것 같고. 그래서 개근상은 뭔가 창피한 일이 되어버리는 그런 문화 말이다.
하루키 역시 이러한 시선을 의식한 듯 이야기한다.
퇴폐적으로 살면서 가정 따위는 돌보지 않고, 아내의 기모노를 전당포에 잡히고 돈을 마련해(이미지가 좀 지나치게 고리타분한가?) 때로는 술에 빠지고 여자에 빠지고, 아무튼 마음 내키는 대로 살면서 그러한 파탄과 혼돈을 통해 문학을 자아내는 반사회적인 문인─그런 고전적인 소설가 이미지를 어쩌면 세상 사람들은 아직도 내심 기대하는 게 아닐까. 혹은 스페인 내전에 참가해 포탄이 날아다니는 속에서 타닥타닥 타자기를 두드리는 ‘행동하는 작가’를 원하는 건 아닐까.
평온한 교외 주택가에 거주하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건전한 생활을 하고 날마다 조깅을 거르지 않고 야채샐러드 요리를 좋아하며 서재에 틀어박혀 매일 정해진 시간에 글을 쓰는 작가라니, 그런 건 실은 아무도 원하지 않는 게 아닐까. 나는 세상 사람들이 품고 있는 로망에 쓸데없이 찬물을 끼얹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그러나 결국 자신은 어쩔 수 없이 '나 같은 타입'의 작가밖에 이야기하지 못한다며 루틴 한 운동과 원고 쓰기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하며 이 장은 막을 내린다.
즉 당신이 (안타깝지만) 희유의 천재가 아니라 자신이 가진 (많든 적든 한정된) 재능을 시간을 들여 조금이라도 높이고 힘찬 것으로 만들어가기를 희망한다면, 내 이론은 나름대로 유효성을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지를 최대한 강고하게 할 것, 또한 동시에 그 의지의 본거지인 신체를 최대한 건강하게, 최대한 튼튼하게, 최대한 지장 없는 상태로 정비하고 유지할 것─그것은 곧 당신의 삶의 방식 그 자체의 퀄리티를 종합적으로 균형 있게 위로 끌어올리는 일로 이어집니다. 그런 견실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면 거기서 창출되는 작품의 퀄리티 또한 자연히 높아질 것, 이라는 게 나의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쉽게 말해 자신이 천재가 아니라면 꾸준히 운동하고, 지적 활동도 꾸준히 해야 그 둘의 시너지로 그나마(?) 괜찮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이다.
아니, 어쩌면 하루키 같은 천재 소설가도 이렇게 열심히 사니, 너라면 정말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결론일 수도 있겠다. 원래 전교 1등이 제일 늦게까지 공부한다. ㅠ
P.S.
사실 나 역시 20대 초반 천재가 아닌 '평범한 나'를 깨달으면서 우울에서 겨우 벗어난 적이 있다. 당시 빠져있었던 미드 <닥터 하우스>를 보면서 그처럼 우울한 천재가 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최애 캐릭터에게 등을 돌렸었다. 그리고 우울에서 벗어나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다. 닥터 하우스에 대한 저의 이야기를 보고 싶으신 분은 아래 글로.
https://brunch.co.kr/@after6min/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