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민경 Mar 22. 2024

어린이집 가방을 메기 싫은 엄마

어린이집 가방을 메고 다닐 때 엄마가 듣는 소리  

아기가 멜 것도 아닌데... 엄마에겐 너무 불편한 가방


아기가 어린이집에 간 지 3주가 되었다. 아기는 입소 3주 만에 적응을 한 듯 안 한 듯싶은 모습이다. 갑자기 생긴 오전의 자유시간에 적응이 되지 않는 건 오히려 나였다.


분리시간이 2시간이었던 둘째 주에는 아기를 어린이집에 두고 요가 학원에 가서 1시간 요가를 열심히 하고, 집에 와서 씻고 집안일하고 아점을 먹어두면 아기를 데리러 갈 시간이 되었다.


셋째 주가 되어 분리시간이 4시간이 되자 요가를 하고 집안일을 하고 아점도 먹고 대학원 숙제를 하고 브런치나 블로그에도 글을 올리고 있다. 나에게 이런 시간이 허락되었다는 게 어색한 시점이다.


어린이집에 간지 3주차된 아기.


자유 시간 말고도 나에게 아직 어색한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아기의 어린이집 가방을 둘러메고 다니는 일이다.


2월 어린이집 OT에 참석했을 때 처음 어린이집 가방을 받아보았다. 사실 나는 엄마들이 어린이집 가방을 둘러메고 있을 때, '굳이 저 가방으로만 메야하나? 요새 이쁜 책가방 많은데'라고 생각을 했다. OT때 아기 가방을 받았을 때도 똑같이 생각을 해서, 안일하게 다른 가방으로 메도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 가방은 나에게 너무 불편했다. 너무 딱딱했고, 아기가 멜 것도 아닌데 아기에게 맞춰진 어깨끈 사이즈 때문에 나는 그 가방을 메기에도, 들기에도 불편했다.


어린이집 등하원 때 아기를 안고 있으니 (아기가 유모차를 싫어한다 ㅠㅠ) 가방이라도 편할 걸 메고 싶은데 잘 메지지도, 들어지지도 않는 가방을 메는 게 너무나 불편했다.


첫 주에는 어차피 엄마가 멜 건데 엄마가 편한 백팩이나 어깨끈이 넓은 가방으로 메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서 원래 내가 쓰던 기저귀 가방을 사용했다. 아기가 커서 자기 가방을 자기가 멜 수 있을 때 그 가방을 사용하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어린이집에 내 가방을 메고 가자 어린이집 선생님은 "앗, 어머님 혹시 가방을 못 받으셨나요?"라고 물어보셨다. 그리고 어린이집 가방을 사용해야 한다고 알려주셨다. 등하원 출석 때 찍는 카드 등을 해당 가방에 달아야 했기 때문이다.


"왜 꼭 이 가방으로 사용해야 하나요?"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진상 어머니가 되는 것 같아서 그냥 "앗, 네 알겠습니다!"라고 답하고 해당 가방을 사용하고 있다.


메는 것이 불편한 것 외에도 그 가방은 너무 딱딱하고 작아서 아기의 물통, 젖병, 식판, 도시락 가방, 기저귀와 손수건 등등을 넣으면 꽉 차서 잘 잠기지도 않아서 잠글 때마다 불편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안 그래도 어린이집 공간이 작은데 아이 엄마들이 제각각 가방을 놔두고 물건도 많이 가져가다 보면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생활하기 비좁아질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그래서 일부러 가방을 작게 만든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것저것 넣다보면 항상 터질 것 같은 아기의 가방.





아기 어린이집에 보낸다고 광고하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안 그래도 이렇게 어린이집 가방이 마음에 안 들었던 나인데, 그 가방을 또 메기 싫은 이유가 생겼다.


며칠 동안 어린이집 가방과 함께 아기를 메고 등하원을 하다 보니 지나가던 사람들이 내가 아기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걸 자연스럽게 알게 된달까? 그 상황이 너무 싫었다.


첫 번째 상황은 며칠 전의 등원길이었다. 아파트 청소를 하시는 아주머니가 가방과 아기를 보셨다.


"어머! 벌써 어린이집 가는구나. 너무 어린 아기인데..."


그냥 어린 아기가 어린이집을 가는 것을 보니 안쓰러우셔서 자동반사적으로 말하신 걸 안다. 그러나 안 그래도 내 머릿속에는 "너무 어린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걸까? 내가 일을 하겠다고 이렇게 아기를 키워도 되는 걸까? 아니 그렇다면 아기를 낳으면 여자는 다 일을 그만둬야 하나? 요샌 여자들이 다 일하면서 아기 키우지. 내가 연약한 생각하는 거겠지? 나는 앞으로 어떻게 일을 해야 할까? 첫째도 이런데 둘째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기가 내가 일을 하는 바람에 뭔가 정서적으로 잘못되면 어떡할까? 이렇게 일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등등으로 몇 달 내내 일과 육아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나에게는, 너무나 큰 돌이 가슴에 날아오는 것만 같았다.


두 번째 상황은 어제의 하원길이다. 배드민턴을 치고 돌아오시는 것 같은 할머니 무리가 내 옆을 지나갔다.


"어머! 아기가 어린이집 다녀오나 봐."

"요새 아기들은 100일만 되어도 어린이집 간대."

"엥? 100일 아기가~? 어머. 너무 불쌍하다."


이런 이야기들을 듣고 있자니 내가 무슨 대역죄인이 되는 것 같았다. 마음속으로는 '우리 아기는 100일 아기가 아니라 돌 되는 아기인데요!? 그리고 그럼 엄마들은 다 일 그만두고 애만 보나요? 참나~ 할머니들이 봐줄 것도 아니고. 그럼 할머니도 아기들 불쌍하니까 배드민턴 치지 마시고 손주 돌보시지요~?' 이렇게 내 안의 파이터가 스멀스멀 깨어나고 있었다. (극심한 N성향 파이터 특징, 속으로는 오만사람하고 다 싸움) 그저 나는 빠른 걸음으로 그 무리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안다. 안 그래도 내가 육아와 일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하기에 이런 말들에 더 예민한 것. 


그러나 아기를 키우는 엄마라면 다 예민한 주제인데 저런 말들은 굳이 왜 들리게 하나 싶다.


이런 상황들이 펼쳐지다 보니, 나는 애꿎은 어린이집 가방이 더 들기 싫어졌다. 그냥 다른 평범한 가방을 들었다면 다른 지나가던 사람들이 내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것도 알지 못할 테고, 저런 소리도 듣지 않을 텐데...


왜 굳이 저 'OO 어린이집'!!!!이라고 크게 쓰인 가방을 메서 아기를 어린이집에 넣는다고 광고하고 다녀야 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낸 시간,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그러나 마음을 고쳐먹어야 한다. 이건 가방 탓이 아니다.


앞으로 이런 상황이 얼마나 많이 펼쳐질까? 겨울에 아기를 만나면 모두가 "춥겠다"라고 해서 화났던 일화처럼, 이 어린이집 가방 일화들 역시 앞으로 나에게 거의 매일 펼쳐질 '육아 간섭'의 한 조각일 뿐이다.


(많은 공감을 받았던 겨울의 아기 외출 이야기 읽어보시려면 링크로.)


https://brunch.co.kr/@after6min/221


옛날 사람들도 이런 말이 얼마나 듣기 싫었으면 '부자와 당나귀'이야기를 만들었을까. 부자가 당나귀를 타고 다녀도 당나귀가 불쌍하다고, 안 타고 끌고 다녀도 멍청하다고, 아빠만 타면 아들이 불쌍하다고, 아들이 타면 불효자라고 말했다는 이야기 말이다. 옛날 사람들도 다 똑같았나 보다.


그래서 어머니는 강해져야 한다는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예전에는 '엄마는 강해야 한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아니, 엄마만 왜 강해야 돼? 아빠가 도와주면 엄마만 안 강해도 되잖아. 그리고 사람들이 다 육아를 도와주면 엄마가 강하지 않아도 되는데. 왜 엄마가 강해야만 하는 세상에서 애를 키우라고 할까? 그러니까 애를 안 낳지."라고 생각했다.


엄마든 아빠든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강해야 하는 이유는 체력적으로만이 아니라 수많은 육아 간섭 등을 물리쳐야 하기 때문도 있다. 끝없는 육아 간섭들에 일일이 스트레스받지 않고 아기를 키우려면 내 소신이 강해야 할 수밖에 없다.


아기를 공부시켜도 '아기를 어렸을 때부터 공부시키면 아동 학대지' 소리를 들을 테고 공부 안 시키고 놀리기만 해도 '다른 아이들은 이런저런 교육에 열심히던데, 왜 아이를 뒤쳐지게 키우지?'라는 소리를 들을 테다. 어린이집을 일찍 보내도 '아기가 불쌍하다' 소리를 들을 테고 늦게 보내도 '아기 사회성 떨어지게 왜 늦게 보내지?'라고 하겠지. 내가 일을 해도 '아기가 불쌍하다' 소리 들을 테고 일을 안 하면 '저 엄마는 집에서 노나?' 소리 듣겠지. 엄마들 모임에 나가도 '저 엄마들 쓸데없이 저러고 다니네' 소리를 들을 테고 혼자만 있어도 '저 엄마는 혼자 쓸데없는 글이나 쓰네' 하겠지. 나는 아이와 함께 당나귀를 끌고 가는 어른인 것이다.


그렇기에 부모가 강해야 져야 한다는 말은, 체력적인 이야기일 뿐 아니라 정신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가 왜 지금 어린이집에 아기를 보내는지, 왜 계속 일을 하기로 선택했는지 큰 선택들부터 아기를 어떤 기관에 보낼 것인지, 어떤 학원을 보낼 것인지 앞으로 남은 수많은 선택지들, 또 어린이집에 아기를 데려다 놓고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시간을 보낼 건지까지.


나의 계획과 목표가 확실하게 없으면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게 되고, 그렇다면 나는 '아기가 저렇게 어린데 어린이집에 가다니 불쌍하다'는 이야기에 더더욱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육아 간섭에 타격을 받는 건, 내가 뚜렷한 목표와 실행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타격을 더 이상 받지 않으려면 내가 선택한 것에 명확한 이유가 있어야 하며, 그것을 위해 치열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시간, 나는 무엇을 할 건인가. 왜 하는가. 왜 복직을 하는가. 왜 일을 하는가. 왜 글을 쓰는가. 이것부터 명확하게 답을 내릴 수 있고 확신이 있어야 애꿎은 가방 탓을 하지 않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린이집 입소, 엄마도 뻗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