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기랑 일본 국립신미술관에서의 마티스전 관람
서울에서 MMCA에 자주 가는 것 같이, 도쿄에서도 국립 현대미술관을 가보기로 했다. 가는 길을 잘못 들어 매우 험난해 포기할 뻔했지만 포기를 모르는 여행 파트너 덕분에 어찌어찌, 땀 뻘뻘 흘리며 도착한 국립신미술관.
솔직히 큰 기대를 안 했는데 마침 마티스 전이 열리고 있었다. 이 전시 보러 일본에 온 사람들도 있을 정도 나름 큰 전시였다. 입장료는 한 사람당 2만 원이었다.
마티스전 대부분이 사진을 찍을 수 없었기에 사진으로 전달은 안되지만 정말 풍성한 전시였다.
서울에서도 마티스전을 관람한 적이 있었는데 마티스의 작품은 몇 개 없었고 인쇄 그림과 굿즈만 엄청나게 많고, 사람만 북적여서 매우 실망했었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정말 퀄리티 좋은 전시라고 느꼈던 것이 마티스가 처음 그린 유채화 작품부터 포비즘 스타일 작품, 니스의 아틀리에 안에서 그린 오달리스크 주제의 회화, 발레 의상, 대형 장식, 조각, 도예, 책 삽화, 태피스트리, 오린 종이 그림까지 매우 방대한 마티스의 작품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마티스의 초기작부터 연대별로 죽 볼 수 있어서 그의 화풍이 어떻게 발달되었는지 보기 편했다. 이 전시를 죽 보다 보면 마티스가 처음부터 아주 특별한 그의 화풍을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지만 색채가 화려한 특징은 초창기부터 돋보인다. 초기작은 말기의 작품처럼 아주 단순한 화풍을 가지고 있지 않고 다른 화가와 비슷한 느낌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러나 이때 역시 색채만은 굉장히 특이하게 쓴다.
중간중간 마티스가 관심을 보인 조각, 도예, 책 삽화, 무대 의상 등도 매우 충실하게 전시되어 있다.
잡다한 관심사 전시가 너무(?) 충실해서 보다 보면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잡다한 것에 관심을 가진 것일까? 그림만 계속 관심 가졌다면 더 빨리 더 큰 대가가 되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길 정도였다. 그가 매우 다양한 것들을 만들고 조각하고 수집하기 때문이다. 특히 무대 의상이나 잡다한 오브제 같은 것들은 나의 관심이 되지 못해 더 그렇게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조각들과 오브제들을 보고 나서 1910년 이후의 작품들을 보다 보면 나의 이런 생각이 아주 어리석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관심사들이 모이고 모여 그만의 스타일이 되어가는 과정이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해석에 대해 미술사나 마티스를 많이 공부하신 분들이 동의할지는 모르겠지만 전시를 보면서 나는 이런 것을 느꼈다.
이 전시에서는 '춤'을 하나의 전시관에 넣어 굉장히 주목되게 전시했는데 정말 인상 깊은 작품이었고 이때부터 파격적인 색채와 단순한 형태의 마티스 스타일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남편은 그의 조각 작품들을 인상 깊게 보았다면서, 그가 가진 스타일이 마치 조각을 회화로 옮겨온 것 같은 단순함이 있다고 말했다. 나 역시 그 의견에 공감했다.
1940년 작품들이 전시된 관으로 넘어가면 '이카루스'같은 극도로 단순화된 작품들이 나온다. 물론 그가 말년에 관절염으로 고생을 해서 그림을 그리기 힘들어 색종이로 콜라주를 했다는 것은 매우 유명하지만 그렇게 단순화한 그림으로 그의 스타일은 더욱 돋보였다.
이 작품을 보고 나서 쓸데없는 관심이란 없구나, 여러 가지 관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해보면서 3~4가지의 큰 관심들이 합쳐지면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스타일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스타일’이라는 것을 만들기는 매우 어렵다. 예를 들어 회화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많다. 그런데 회화를 하면서 여행도 좋아하고, 조각도 좋아하는 사람까지 찾다 보면 그 수는 줄어든다. 교집합 된 관심은 오리지널리티를 가질 수밖에 없다.
관심이 교집합이 될수록 나의 스타일은 독특하고 단단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만의 교집합은 무엇이 될지, 훗날 중심으로 모인 나의 스타일은 무엇일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