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칸야마 티사이트와 지적자본론
돌아기와 함께한 도쿄 여행 기록을 남기고 있다. 첫 번째 날은 이동한 후 숙소에서 짐 정리, 숙소 주변이었던 아자부다이 힐즈에서 저녁거리를 사서 집으로 왔던 간단한 일정이었다.
남편과 둘이 여행을 할 때는 하루에 관광지와 쇼핑센터, 맛집 등을 돌면서 진짜 빡빡하게 돌아다녔던 우리지만 아기와 함께하는 여행이니만큼 하루에 1~2군데가 최대였고, 그것도 아기와 함께하기 좋은 장소여야만 했다.
두 번째 날 아침부터 시작된 첫 번째 여정은 '다이칸야마 티사이트'. 아기랑 함께 가기 매우 좋은 장소였다. 브런치 식사부터 시작해 산책, 사람 구경, 스타벅스 이용, 기념품 구매까지 할 수 있었고 그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 내내 쾌적했다.
아기와 함께 쓸 수 있는 화장실 시설이나 수유실 당연히 잘 되어있고. 산책하기 좋고 유모차 끌기 좋고 아기 좋고 부모 좋은 곳.
다이칸야마 티사이트
16-15 Sarugakucho, Shibuya City, Tokyo 150-0033 일본
일본을 한 번이라도 방문해 본 사람이라면 ‘츠타야서점’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츠타야 서점을 방문한 적도 있을 것이다. 이미 일본에는 천 개가 넘는 츠타야 서점이 있으니 말이다. 그 가운데 다이칸야마 티사이트는 츠타야 서점을 기획한 CCC그룹의 대표적인 장소라고 볼 수 있으며, CCC의 대표 마스다 무네아키의 철학을 그대로 옮겨온 장소로 꼽힌다.
이곳에 방문한 후, CCC의 대표 마스다 무네아키가 쓴 책 '지적자본론'을 바로 읽어 보았다. 나는 여행 중 책 읽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지적자본론'을 완독 했고 그가 만든 대표급 장소까지 즐겼으니 여행 중 기억에 남는 장소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츠타야 서점 중, 다이칸야마 티 사이트는 어떤 기획 아래 탄생한 것일까? 책 지적자본론에서 다이칸야마 티사이트를 언급한 부분을 가져왔다. 티 사이트에 대한 기획 의도와 함께, 마스다 무네아키의 경영 철학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문단이라고 생각한다.
(다이칸야마 티사이트를 기획하면서) 효율성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기분 좋은, 편안한 공간을 고객에게 제공한다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각 입주자들은 숲 속의 산책로로 연결되어 있다. 부지 안에 원래 있었던 느티나무는 그대로 남겨 두었다. 절대로 베어 내지 못하게 했다.
생각해 보면 인간에게 ‘자연’만큼 효율성이 나쁜 것은 없다. 가령 나무를 심어 두면 가을마다 낙엽이 떨어져 청소를 해야 한다. 여름을 맞이하기 전에는 가지를 쳐 주어야 하는데 이것 역시 일손이 필요한 작업이다.
그러나 그 숲을 지나는 바람은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 주고, 흔들리는 나뭇가지 사이로 새어 드는 햇살은 정말 아름답다. 나는 다이칸야마에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쪽이 행복에 가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차장도 그렇다. 땅값이 만만치 않은 다이칸야마에 120평의 평면 주차장이라니, 당연히 효율성이 떨어지는 선택이다. 기계식 타워 주차장을 만든다면 부지를 훨씬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매장 면적도 늘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차장에 자동차를 주차한 다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을 때의 상쾌한 느낌. 그것이 중요했다. 그런 상쾌함은 다음에 또 방문하고 싶게 하는 설렘과도 연결된다. (책 '지적자본론')
효율과 행복은 어쩌면 양립하기 어려운 일이다. 사업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는 바로 앞의 효율보다는 행복을 택하는 것이 자신의 경영철학이라고 한다. 결국 이러한 선택이 그를 포브스 일본 부자 순위 48위로 만들었으니, 고객의 행복을 선택하는 것이 돌고 돌아 자신에게도 엄청난 효율을 가져다준 것이 아니겠나. 항상 단기적인 효율보다는 무엇이 진짜 효율적인지를 생각하면서 선택을 해나가야 함을 되새긴다.
이러한 철학 아래 만들어진 덕분에 공간 곳곳 세심한 쾌적함이 돋보인다. 그런 배려로 인해 아기와 반려동물에게도 매우 친절한 공간이다. 곳곳에 반려동물과 아이들을 위한 장소가 마련돼 있다.
결국 아기나 거동이 어려운 사람들이 가기 좋은 곳이, 누구나 가기 좋은 곳 아니겠나.
일본어 책이라서 책 구경보다는 공간 구경 위주로 했지만, 책과 함께 그 책을 집어든 사람의 취향에 맞는 굿즈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어 기념품 사기에도 좋았다. 만약 한국에서 이런 서점이 있다면 가능한 한 자주 방문했을 듯하다. 실제로 이 공간을 만든 마스다 무네아키 역시 이곳을 거의 매일 들러 책을 보고 산책을 한다고 한다. 한국에서 발행된 그의 인터뷰를 보아도 인터뷰 장소가 다이칸야마 티사이트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곳의 책 배열이나 굿즈 배열은 무엇이 다를까? 이것 역시 책 '지적자본론'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츠타야 서점을 만들 때 기존의 도서 분류법에 따라 도서를 배열하는 것이 아니라 츠타야 만의 도서 전시법을 따른다고 한다.
직원들에게 일반 서점의 점원과는 차원이 다른 높은 능력이 요구된다. 물건에 해당하는 서적을 책장에 정리하는 작업을 예로 들어 보자. 기존의 서점이라면 문고본은 문고본용 책장에 진열하면 된다. 출판사별로 분류된 책장 안에 저자의 이름에 따라 가나다순으로 책을 배치하는 것이다. 정말 간단하다. 수납해야 할 서적이 몇 권이든 해당하는 장소에 기계적으로 진열만 하면 되니까 특별한 능력이나 소질은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제안 내용을 바탕으로 구역을 만들어야 한다면? 일단 어떤 제안이 고객의 흥미를 이끌 수 있는지, 어떤 제안이라면 고객의 욕구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
그렇기 때문에 ‘지적자본론’이다. ‘서적 자체가 아니라 서적 안에 표현되어 있는 라이프 스타일을 판매하는 서점을 만든다.’라는 서점의 이노베이션을 가능하게 하는 수준의 지적자본이 필요한 것이다. 쉽게 말해 제안 능력이 회사 내부에 축적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척도가 된다. (책 '지적자본론')
예를 들어 “유럽을 여행한다면 이런 문화를 접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거나 “건강을 생각한다면 매일의 식사를 이런 식으로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는 제안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테마에 대해 잘 알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취향도 뛰어나야 하며, 책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도 알고 있어야 한다. 관련해서 추천할 물건의 트렌드도 알고 있어야 한다.
이런 '지적 자본'들이 츠타야 서점의 서점 배열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것도 놀란 지점이었다. 보통 저 정도의 지적 자본이라면 거의 창업을 할 정도의 수준이지 않을까. 실제로 츠타야에 책 배열을 하는 직원들은 여성 잡지 편집장 커리어가 있는 사람들이나 여행 기자, 자동차 블로거 등이었다고 한다. 츠타야에서 일하지 않았어도 자신만의 커리어가 탄탄했던 사람들이다. 그에 대해 마스다 무네아키는 이렇게 말한다.
‘재미있을 것 같다.’라고 느낄 수 있는, 구심력을 갖춘 이념이 존재해야 한다는 점이 열쇠다.
내가 사장이고 그들이 사원이라고 해서, 나는 자본가이고 그들은 노동자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관계는 결코 그런 도식으로 표현될 수 없다. 그들이야말로 확실한 ‘지적자본’을 보유하고 있는 자본가이기 때문이다. (책 '지적자본론')
결국 자본가인 마스다 무네아키가, 노동자인 그들을 '지적 자본가'라고 부른다. 물론 이러한 명명에 대해 부정적인 관점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낱 말장난 아니냐고, 지적 자본가라고 멋지게 불러준다고 해서 노동자라는 지위가 사라지냐고.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경영가' 들의 공통적인 특징이긴 하다. 철학자 한병철은 신자유주의의 특징으로 모든 노동자들은 노동자로 일하기보다 스스로 경영자(자본가)처럼 일한다고, 그렇기에 자책과 번아웃을 맞을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그래서 이런 서적을 읽을 때는 반대편의 비판을 뒤로 넘기고 일단 읽어보는 편을 택한다. 그리고 가끔은 저런 비판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판단은 각자, 스스로 하면 된다.
내가 츠타야를 몇 번 방문했을 때, 특히 이번 여행에서 티사이트를 방문했을 때 그 규모에 놀라면서 항상 궁금한 것은 "이렇게 기획해서 책을 팔면 진짜 돈이 되나?"라는 것이다. 사실 이건 궁금해하는 게 웃길 정도긴 하다. 2023년 조선일보 기사에 따르면 츠타야 기획자인 마스다 무네아키는 2021년 1340억 엔 재산으로 포브스 집계 일본 부호 순위 48위에 올랐다.
게다가 코로나 시대엔 츠타야의 실적이 엄청나게 급상승했다고 한다. 현재에는 코로나 시대보다는 줄어든 실적이지만 높은 실적을 기록하고 있는 건 맞다.
마스다 무네아키는 책에서도 이런 '출판 산업에 대한 회의'를 알고 있었다고 언급한다. 그가 츠타야를 만들 때나 확장할 때 '책이 돈이 얼마나 되느냐'는 회의가 항상 따라왔다는 것이다.
‘출판 불황’이나 ‘활자 이탈’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는 상황에서 그렇게 거대한 서점을 출점해 성공을 거둘 리 없다는, 그런 시선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플랫폼이 넘쳐 나는 서드 스테이지에서 사람들은 ‘제안’을 원한다. 서적이나 잡지는 그 한 권, 한 권이 그야말로 제안 덩어리다. 그것을 팔 수 없다면 판매하는 쪽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그는 이렇게 '제안'을 잘하기 위해 T 포인트라는 포인트를 만들고, 이 포인트는 일본 최대 이용 포인트(이용자 5000만 명 이상)가 되면서 또다시 경영에 성공하게 된다. T포인트를 통해 사람들의 취향과 빅데이터를 모으고, 이 빅데이터를 이용해 또 그들에게 '취향저격'인 물건을 팔고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이 모든 작업들에 대해 그는 '당연히 제안을 잘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서드 스테이지는 제안의 시대다. 고객에게 얼마나 정확한 제안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비즈니스의 성패를 가른다.
지적자본론을 읽고, 그가 만든 다이칸야마 티사이트에도 가보며 가장 기억에 남는 키워드는 역시 '제안'이다.
나도 항상 글을 쓰고 또 나아가 책으로도 엮을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내가 쓰는 글은 과연 어떤 '제안'을 하고 있는가? 그것은 누군가의 취향에 맞는 것인지 제대로 타깃 하면서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 나아가 나는 살아가면서 사람들에게 어떤 '제안'을 하고 싶은 것일까. 이 질문은 도쿄 여행 이후 계속 생각하고 있는 질문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