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이 미야케가 만든 2121디자인 사이트에서 본 <미래의 조각> 전시
아기와 함께한 도쿄여행, 남편은 거의 모든 동선을 전시관 위주로 짰다. 언뜻 생각해 보면 전시관은 아기와 함께 하기 어려운 것처럼 느껴진다. 일단 매우 조용해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근 전시관은 아기와 함께 가기 좋은 곳이다. 일단 실내라 온도나 습도 등이 쾌적하며, 언덕이 없으며, 유모차 끌기에 매우 좋은 매끈한 바닥이며, 대부분 정부나 큰 기관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그런지 수유실이나 유아 휴게실이 잘 정비되어 있다. 그리고 엄청 인기 있는 전시가 아닌 이상 대부분 한산하기도 하기 때문에 은근 아기와 가기 좋은 곳이다. 게다가 여름 도쿄처럼 습기가 차고 더울 때는 전시관처럼 아기와 가기 좋은 곳도 없다.
아기를 낳기 전 전시관에서 아기를 봤을 때, '아기가 감상을 할 줄 알까? 왜 굳이 이곳에 아기를 데려왔을까?'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은근 아기는 새로운 물체들을 보면 그것을 매우 빤히 쳐다보는 등 말 그대로 감상을 할 줄 안다. 돌이 갓 지난 아기도 말이다.
특히 아기는 엄마나 아빠가 안고 걸어 다니면 거의 울지 않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아기를 낳기 전에는 아기들이 도깨비처럼 시도 때도 없이 맥락 없이 우는 줄 알았다. (그런 아기도 있다고 한다...부모님 화이팅) 그러나 아기를 키워보면 아기의 울음에는 대부분 맥락이 있으며 기저귀도 갈아주고 분유도 먹여놓고 안아주면서 걸어 다니면 거의 울지 않는다. 가끔은 유모차 안에서 잠을 자주는데 그때는 아주 편안하게 전시를 감상할 수 있다.
마티스의 전시 이후 찾은 전시는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가 만든 2121 디자인 사이트라는 곳에서 열렸다. 더운 요즘, 한국에서도 매우 인기 있는 패션 스타일이 플리츠 스타일이다. 이세이 미야케는 플리츠를 만든 디자이너로 매우 유명한 사람이다.
이세이 미야케는 주름 가공 패턴으로 심플하고 입기 편한 플리츠를 대중적으로 알린 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렸다. 대표적으로 ‘플리츠 플리즈(Pleats Please)’ 의류 라인이 있다. 이 플리츠 디자인은 올여름 매우 큰 인기를 얻고 있으며 비슷한 디자인 브랜드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나 역시 플리츠 디자인을 매우 좋아한다. 시원할뿐더러 너무너무 편하기 때문에 한번 입으면 그 이전에 입었던 여름옷들로 돌아갈 수가 없다.
남편 역시 플리츠 디자인을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이 전시관에 관심이 생긴 것 같았다. 마침 도쿄 미드타운에 친척 언니를 만나러 간 날이었다. 미드타운 일대에는 좋은 카페들과 여러 가지 미술관들이 모여있고, 멋진 공원들도 있어서 아기와 함께 온 가족들이 많았다.
2121 디자인 사이트에 들어서자마자 플리츠 소재의 원단들이 늘어져 있고, 플리츠 디자인이 어떻게 되는지 전시되어 있었다. 상설 전시인 줄 알았는데 6월 말까지만 하는 전시였다.
이 전시를 디렉션한 디자이너의 설명에 따르면 옷의 주름부터 관찰을 시작해 옷이 만들어지는 구조에 주목했다고 한다.
플리츠 소재가 태어나는 형태나 천의 움직임을 단계별로 볼 수 있었다. 사실 이때까지는 '그냥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전시했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한층 내려가면 본격적인 전시를 볼 수 있는데 시기마다 전시가 달라진다. 당시 개최되고 있는 전시는 3월 29일부터 시작된 기획전 <미래의 조각: 과학과 디자인의 실험실>이었다. 9월 8일까지 전시한다고 한다.
미래라는 것이 너무나 막연하고 뚜렷한 윤곽을 잡기 어렵기 때문에, 크리에이터들은 미래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을 생각하게 만들어 보았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미래의 형태를 분명히 그릴 수는 없어도, 만들어진 '미래의 조각'을 통해 그 일부를 부드럽게 만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전시 디렉터의 글이다. 전시 소개처럼 고무처럼 말캉말캉한 오브제 등 만질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사실 처음 전시를 봤을 때는 공학 디자인이라는 이해가 전무했기 때문에 '이게 뭘까..?' 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전시관 앞쪽에 있던 몇몇 전시품을 보았을 때는 조금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이 전시품들은 마치 어렸을 적 우리가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들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어떤 설명할 수 없는 힘에 의해 띠요용하고 모습을 바꾸는 길고 얇은 막대기 모양, 바람에 의해 이리저리 뒤틀리는 물체들, 손으로 힘을 주어 굴리면 빙그르르 돌아가는 종이같이 얇은 철제 모양의 오브제들이었다. '이것들이 다 뭐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전시 타이틀은 당초 <디자인의 싹>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논의를 하면서 <미래의 조각>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이 전시회에서는 그대로는 실용화되지 않을지도 모르는 최신의 프로토 타입(무언가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시험용으로 미리 만들어보는 물건)이 많다고 설명한다.
전시 이후 홈페이지의 설명 등을 살펴보았다. 이 가운데 디렉터들의 토크쇼 내용 중 흥미로웠던 말이 있다. 디렉터는 평소 학생들에게 "어떤 일이 미래에 도움이 되는지 생각하는 것은 그만하자"라고 자주 말한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재미있으면 무언가가 될지도 모른다"라고 전했다. '유익한' 예상은 잘 맞지 않는다며. 그러면서 이 전시는 '미래의 예상'이 아니라 '미래의 조각'이라고 강조했다.
이 토크쇼 내용까지 보니 자질구레할 수도 있다고 느꼈던 전시품들이 이해가 갔다. 사실 우리가 어릴 때 종이를 빙그르르 돌리면서 그 모양을 관찰하거나 찰흙놀이를 하거나 책의 끝자락에 낙서를 해서 플립북을 만든다든가 하는 일들을 한다. 아이들은 어른의 입장에서 아이들은 '요게 시간 낭비 하고 있네?'라는 행동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 때가 많다. 대표적으로 만화 보기 등이 그럴 것이다.
디렉터의 말대로 어른들은 항상 아이가 '미래에 무언가 유익한 것'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 바란다. 아이뿐 아니라 배우자나 회사 동료에게도, 스스로에게도 그런 것을 바랄 것이다. 생산성을 위한 뭔가를 하기 원한다.
그러나 사실 '미래에 유용한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우리는 알 수가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열심히 공부해 투자를 한다도 하더라도, 오히려 가만히 아무것도 안 하고 놔뒀을 때 더 큰 수익을 내는 사례가 많은 것처럼 말이다.
이 전시를 보면서 생산성이라는 결과를 만드는 것은 그렇게 정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고, 남들이 볼 때 낭비 같았던 시간이 하나의 조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완성된 공학품 앞쪽에 그것들을 처음 생각했을 때 그려진 스케치 등을 보면서도 든 생각이었다.
어떤 행위가 도움이 되는지만을 생각한다면 어쩌면 실제로 미래에 도움이 되는 일은 하나도 못할 수도 있다. 반면 매우 쓸모없어 보이지만 이상하게 관심이 가는 일을 계속하다 보면 그것이 '미래의 조각'이 될 수도 있다.
지금 엄청나게 인기를 끌고 있는 플리츠라는 소재가 어쩌면 옷의 주름 하나를 관찰하는 일에서 시작된 것처럼 말이다.
p.s 물론 이는 예술적인, 낭만적인 이야기다. 내 안의 T성향은 이런 말을 들어도 보통 ’아니 그러면 뭐 아무렇게나 살라는 말이야? 예측이 어려운 미래니까 더 철저히 분석하자고 해야지 정말 무책임하다. 자신만 멋있게 보이려고 남 인생 망치는 조언을 하네.'라고 생각하게 한다. (너무 심했나..) 그러나 말이나 책으로 이런 이야기를 만나는 것보다 이렇게 전시를 통해 표현해 주면 조금이나마 낭만적으로 생각해 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렇기에 예술이 있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