훅 자란 버베나, 결국 분갈이 행
이전, 수국과 장미캄파눌라를 화원에서 데려오면서 버베나도 덤으로 받았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10cm 기본 포트에 담긴 버베나는 내가 원한 아이도 아니었고 꽃 색깔이 취향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다지 정이 가지는 않았다. 그래도 어쩌나- 일단 공짜는 거절하기 싫었고, 내 손에 들어온 아이이니까 챙겨줘야지.
새로 구입한 슬릿분이 늦게 도착해서, 집에 들인 지 4일 째에야 분갈이를 해줄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적당히 큰 사이즈의 화분도 없어서 10센티 슬릿분으로 옆그레이드 이사. 그래도 애가 작아서 크게 문제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이쯤 꽃이 시들어 꽃대는 잘라주었다. 다른 꽃대도 그다지 보이지 않아 꽃은 이제 끝인가? 하고 생각했는데...
집에 온 지 열흘 째, 분갈이 한 지 엿새째.
뭔가 조짐이 수상하다.
너... 좀 많이 크지 않았니?
워낙 관심이 없었다 보니 처음에 어느 사이즈였는지, 키가 얼마나 작았는지 거의 기억이 안 나긴 하지만- 확실히 애가 쑥 컸다.
잎도 풍성해지고, 꽃대도 무척 많이 올라왔다.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어 화분 밑바닥을 살펴봤더니...
뿌리가... 뿌리가 벌써 튀어나왔어어어어어!!
분갈이 타이밍이 보통 뿌리 튀어나올 때라고 하던데 또 분갈이를 해야 해..?
사실 조금 튀어나온 거기도 하고, 눈 가리고 아웅 하면 될 것 같기는 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빨리 어떻게든 해버리고 싶었던 나는 과감하게 가지고 있던 15cm 분에 옮겨 심어 보기로 했다.
아무리 봐도 15cm 분은 너무 거대해 보였으나 중간 사이즈 분이 없어서 강행해 버렸는데, 옮기고 보니 의외로 또 그렇게 커 보이지도 않네..?
너무 빽빽해 보여서 이파리를 좀 뒤적여가며 안쪽 가지 몇 개를 솎아내고 나니 애들이 자연스럽게 벌어져서 그런가 화분에 그럭저럭 괜찮게 찼다.
도대체 왜 열흘 만에 이렇게까지 컸는지 참 웃기기도 하고 어이도 없고 대견하기도 하고 어디까지 클지 무섭기도 하고 온갖 복합적인 감정이 몰려왔다. 우리 집 환경의 어떤 부분이 버베나랑 딱 들이 맞아 폭풍성장을 한 모양이라는데, 어디가 그렇게 좋았는지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다. 초보의 손에 분갈이를 두 번이나 마쳤는데, 시름시름 앓는 이파리 하나 없이 너무나도 짱짱하다. 아무래도 얘는 순한 아이인가 보다. 순해서 그런가 벌레도 매우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ㅠㅠ
친구들이랑 나랑 각자 취향이 조금씩 다른 모양인데, 우연히도 올해 셋 다 다른 색의 버베나를 하나씩 데리고 있게 되었다. 잘 키워서 서로 나눠갖자는 얘기를 했었는데, 이렇게 되면 내가 제일 먼저 나눔을 하게 될 것 같다. 조금 더 커서 15cm 분에도 넘치게 되면 식집사 인생 처음으로 포기나누기에 도전해야지.
잘 크니까 관심도 애정도 따라가게 된다. 앞으로도 건강하게 자라렴. 부디 벌레는 달고 오지 말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