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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래, 배를 타리라

<에세이> 늙은 어부의 노래

by sunb

‘그래, 배를 타리라.’

결심하고 찾아간 곳이 부산역 부근의 H선박컨설팅. 곧바로 승선계약서를 쓰고 서명했다. 월급은 96만 원, 4대 보험이 적용되고 실적급으로 어로수익금의 5%를 받는 조건이다. 실적급은 6개월 이상 승선 조업을 해야만 받을 수 있다고 담당자는 말했다.

6개월간 모든 비용을 제하고 3억 원의 이익금이 발생했을 경우 1,500만 원의 모갯돈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 6개월 동안 받는 고정 월급이 576만 원이니까, 총소득은 2,000만 원이 조금 넘는 셈이었다. 그들이 생활정보지에 낸 광고에서 연봉을 3,000만~4,000만 원이라고 밝힌 것이 산술적으론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승선 수속을 마치고 대기실에 머물렀다. 컨설팅회사가 나와 같은 60 노인(?)에게 별 군말 없이 승선계약서를 써 준 것을 보면 그만큼 선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알 만하다.

대기실은 잠을 잘 수 있도록 된 구들방이었다. 나 이외에 40대 초반의 구具 씨라는 사람과 李 군이 함께 대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 군은 이제 스물셋으로, 막 군에서 제대하고 마땅히 할 일이 없어 배를 타기로 했단다. 체격은 크지 않았으며, 그다지 강단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담당자가 저녁 식사를 시켜주면서 “여수에서 배를 타는데, 저녁 9시께 사람이 데리러 올 것.”이라고 일러준다. 식사를 마치고 무료한 나머지 방 안에 있는 무협지를 읽었다. 책장엔 몇 종류의 무협지가 여러 질帙 비치돼 있다. 9시께 데리러 온다는 사람이 오지 못하게 됐다고 담당자가 전했다. 그래서 총 24권짜리 무협소설을 절반 정도 읽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식사를 하러 구 씨와 함께 인근 식당으로 갔다. 구 씨는 해장국을 시키고 소주도 한 병 주문한다. 그가 내게도 술을 따라 주었으나 마시지 않았다. 술을 좋아하긴 했지만 아침술을 마셔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구 씨는 무엇인가에 쫓기는 듯 무척 초조해하고 있다. 그는 아마도 그 초조감을 술로 달래는 듯하다. 무엇이 두 아이의 아버지인 그를 또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가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자신의 처지에선 저인망 어선을 탈 수가 없다고 했다. 그는 “사업에 실패하고 아내와 이혼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내에게 아이들의 양육비를 보내야 하고, 카드 대금 결제 등으로 한 달에 최소한 200만 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임금을 모개로 받는 것보다는 월급으로 받는 게 낫다는 얘기다. 그래서 그는 트롤(선망旋網)선 타기를 원한다는 것.

트롤trawl은 한 달 단위로 조업을 하고, 매달 월급을 준다고 했다. 그 때문에 희망자가 많아선지 좀처럼 자리가 나지 않는 모양이다. 지난밤 구 씨가 잠시 사무실을 나간 사이 컨설팅회사 직원이 하는 전화를 귓전으로 듣노라니, 구 씨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는 “자리가 없는데, 한사코 트롤을 원하고 있다.”면서 욕설을 퍼붓고 있었던 것.


시간은 흘러, 낮 12시께 우리를 데리러 왔다. 밴VAN을 몰고 온 운전사는 40대 중반으로 보였다. 이 바닥의 풍토를 말해주듯, 직감적으로 그가 거칠게 느껴진다. 구 씨는 결국 작파하고, 나와 이 군만 밴에 올랐다.

운전사는 부산 시내를 벗어나 고속도로에 진입하더니 시속 160Km를 넘나드는 속력으로 차를 몰았다. 나는 너무도 불안한 나머지 “천천히 가자.”고 말했다. 그랬더니 운전사는 “오후 2시까지 현장에 닿아야 하는데, 시간이 모자란다.”면서 막무가내 과속을 했다.

운전사는 선원 운송을 ‘탕뛰기’로 도맡고 있었다. 그는 “어젯밤 밤을 새워 선원을 실어다 주고 눈을 붙여보지도 못하고 곧바로 왔다.”고 호기豪氣를 떨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더욱 불안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자칫 졸음운전이라도 할까 싶어 조마조마하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의 참견을 하지 않은 채 손잡이를 꽉 붙잡고 운명에 맡겼다.

내겐 두 건의 교통상해보험이 가입돼 있다. 그래서 이 나이에 교통사고를 당하는 것도 나쁠 것이 없다는 생각으로 체념을 한 것이다. 내가 교통사고로 죽게 되면 아이들은 3억 원이 넘는 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다. 냉정히 따져보면, 이 시점에서 내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교통사고로 죽는 일이었다. 아이들은 보상금으로 내가 지고 있는 빚을 탕감하고도 상당한 액수의 돈을 상속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나는 배를 타려고 작정한 뒤 아이들에게 유언을 남겼다. 거기에 보험증권 번호와 수령방법 등을 소상히 적어 두었다. 그러니 나로선 교통사고로 죽는다는 사실이 전혀 두렵지 않았던 것.

곡예 운전을 했음에도 차는 무사히 여수에 도착했다. 3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총알처럼 달려왔으나 광양시와 여수 시내를 통과하는데 정체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수어항에 우리를 내려 준 운전사는 옷가지 등이 담긴 큼지막한 가방을 건네준다. 컨설팅회사 담당자가 말했던 ‘선상 용품’이 든 가방이다.

집에서 가져온 배낭을 등에 짊어진 채 선용품가방을 손에 들고 항구에 자리잡은 해양파출소에서 간단한 승선 수속을 했다. 해경은 주민증을 확인하고, 승선자(출항자) 명단에 이름 등 신상정보를 기재하라고 했다. 해경은 우리가 적어둔 출항자 명단을 살핀 뒤, 승선해도 된다고 했다. 해양파출소를 벗어나 운전사가 타라고 일러준 KY○7호에 올랐다. 이로써 나의 어부 생활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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