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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첫 그물을 내리다

<에세이> 늙은 어부의 노래

by sunb

선원들은 모두 ‘갑바’라는 옷으로 갈아입고, 장화를 신은 뒤 작업에 임한다. 갑바(갑빠)는 건설용어로, 방수천으로 만든 작업복이지만 뱃일할 때도 입는다. 웬만한 상처 등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두껍고 질긴 소재로 만든다. 프로 야구를 하다 갑자기 비가 내리면 마운드 등 전 경기장을 덮는 천도 이 갑바이고, 천막 소재도 갑바이다. 갑바는 요즘 ‘가슴 근육’을 나타내는 속어이기도 하다.

‘갑바’는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올라있지 않다. 그렇다고 일본어 등 ‘외래어’라는 정보도 없다.

아무튼 선장과 기관장, 항해사와 조리사 등 4명을 제외하고 6명이 갑판 양쪽으로 갈라서서 그물을 내리는 일을 한다. 나는 선미 쪽이 아닌, 그물이 감기는 대형 롤러 바로 곁에 서서 그물이 바다로 내려가는 것을 거들었다. 그 일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그물 맨 끝에는 잡힌 고기를 한데 모아 올리는 거대한 자루와 같은 집어망集魚網이 있고, 거기에 그물이 이어져 있다. 그물코는 끝에서 안쪽으로 올수록 성기게 짜여 있다. 그리고 그물은 마직 벼리로 연결돼 있다. 벼리는 배 가까이 올수록 굵기가 크고, 그것은 다시 지름 30mm가 넘는 철사 동아줄(강삭鋼索)에 연결돼 있다. 이 철사 동아줄의 한쪽 끝은 2호선인 KY○8호에 연결돼 있다. 두 척의 배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이 그물을 끌고 가며 고기를 잡는다. 그래서 ‘쌍끌이 저인망’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

‘쌍끌이 저인망’이라는 말은 사회에서 ‘싹쓸이’를 의미하는 속어로 쓰이기도 한다. 쌍끌이 저인망 어업은 어종의 씨를 말리는 ‘바다의 횡포자’인 셈이다. 새우에서부터 대형 다랑어까지 크고 작은 고기가 가리지 않고 잡히는 것이다. 그 가운데 씨알이 굵은 것만을 선별, 상자에 담아 어창에 보관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바다에 바로 버리거나 사료용으로 상자에 담아 냉동시킨다. 사료용은 주로 양식장으로 간다고 했다.

정부 당국에서 어족자원의 보호를 위해 그물코를 규제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쌍끌이 저인망에는 해당이 되지 않은 것인지 의아했다. 그물코가 조금만 더 커도 잡히는 고기의 3분의 2는 바다에서 계속 몸집을 불리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그물을 내릴 때는 서로 꼬이지 않게 여간 신경을 써야 했다. 특히 축구공처럼 생긴 부이buoy를 매단 줄이 꼬이지 않고 바다로 잘 들어가야만 하는 것. 만약 꼬이기라도 하면 이를 롤러에 되감아 올려 바로잡은 뒤 다시 내려야만 한다. 이 부이가 그물을 적당히 떠 있게 하는 역할을 하므로 서로 꼬여 있으면 그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물과 이 부이는 일정한 속력을 유지하며 바다로 내려가기 때문에 몸놀림을 재빠르게 해야만 한다. 가끔 부이가 엉킨 바람에 선장으로부터 모진 욕을 얻어먹는 일이 다반사였다.

선장은 조타실에서 확성기를 통해 투망投網(그물 내리기)과 양망揚網(그물 올리기) 작업을 지휘하고 통제한다. 그런데 나는 그 확성기 소리를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 바닥에서 쓰는 특수한 용어가 그리 많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부글부글 끓는 듯한 확성기 소리와 또렷하지 못한 선장의 어투에 나는 청각장애인이나 다름없었다.

선장에겐 경어나 존칭 같은 건 없다. 그물을 내리거나 올릴 때 성에 차지 않으면 그는 쌍욕부터 해댔다. 나는 일을 어찌해야 하는지를 잘 몰라 버둥거릴 때나,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헤맬 때마다 그 쌍욕을 얻어먹었다. “c8×”은 예사였고, 여태껏 내가 들어보지 못한 욕지거리를 수도 없이 해댔다.

다른 선원들도 욕을 먹긴 마찬가지. 그때마다 그들은 “에이~ c8, c8”을 중얼거리면서 잘도 참았다. 세간에서 선원을 ‘뱃×’이라고 폄하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두 중국 선원은 한국말을 잘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오랜 경험을 통해선지 얄미울 정도로 영악하게 움직였다.


오후 7시께, 그물 내리기가 끝났다. 나로선 처음 해본 투망 작업이다. 그럼에도 순조롭게 투망작업이 끝났다는 안도감으로, 저녁 식사를 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나서 어창魚艙 청소를 했다. 입항해 고기를 하역하고 비워둔 뒤여서 결빙이 녹았는지 바닥엔 물이 많이 고여 있었다. 두 중국인 선원과 나, 세 사람이 양동이로 물을 퍼냈다. 중국인 두 사람이 어창으로 들어가 한 사람은 통에 물을 담아 주고 또 한 사람이 물통을 들어 위로 올려주면 내가 갑판에서 그것을 받아 버리는 일을 했다. 내가 신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많아선지 중국 선원은 군말 없이 자기들이 어창으로 내려갔다. 어창 청소는 30여 분 만에 마칠 수 있었다. 식당에 앉아 쉬고 있던 배 반장이 고생했다며 이젠 씻고 잠을 자라고 했다.


양치질만 하고는 선실 침상에 드러누웠다. 내 위 침상에는 젊은 중국인 조가 비스듬히 누어 책을 보고 있다. 곁눈질로 책을 얼핏 보니 중국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인 듯했다. 아마도 그는 독학으로 고교과정을 익히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가 기특하게 생각됐다. 그는 늘 밝은 얼굴로 일을 잘했다.

나는 그와 대화를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한자로 필담을 나누는 등 친숙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의 성이 유 씨와 조 씨임을 알게 되었다. 유 씨는 딸이 소학교에 다니고 있고, 조 씨는 이제 돌이 지난 아들이 있다고 알려 주었다.

나는 집에서 가져간 작은 수첩에 시간대별로 일과를 기록하고, 눈을 붙여보려고 애썼다. 그러나 허사였다. 평소에도 쉬 잠에 떨어지지 않았고, 좀처럼 깊은 잠에 들지 못했다. 그러니 흔들리는 선실, 삐걱거리는 소리에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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