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늙은 어부의 노래
가수면 상태에서 벨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눈을 떠 시계를 보니 밤 11시. 각자의 자리에서 자고 있던 선원들이 모두 일어나 작업복을 걸쳐 입고 갑판으로 나온다. 나 역시 그들이 하는 대로 한다.
이제 그물을 올리는 작업을 하는 것. 선상의 대부분 일은 벨소리에 따라 이루어진다. 내가 그 벨소리를 식별할 수 있게 된 건 여러 날이 흐른 뒤였다. ‘따르르릉~’ 하고 길게 한 번 울리면 전 선원 작업 준비하라는 신호, ‘따릉, 따릉’ 짧게 두 번 울리면 기관장을 부르는 신호, 세 번 울리면 요리사를 부르는 신호이다. 갑판장을 부르는 신호도 별도로 있다. 그러니 내가 움직여야 할 신호에만 따르면 된다. 하지만 나는 그 같은 구분을 하지 못해 갑판장을 부르는 소리에, 갑판장이 움직이면 나도 뛰쳐나가곤 했다. 갑판장을 호출하는 신호가 전원 호출 신호와 비슷했던 것이다.
그물을 올리려면 우선 그물을 함께 끌고 있는 두 척의 배가 가까이 접근해야 한다. 1호선 옆구리에 바짝 다가온 2호선 갑판에서 선원(주로 갑판장)이 가느다란 밧줄을 1호선 갑판 위로 던진다. 그러면 1호선 갑판에서 대기하고 있던 갑판장이 이를 받고, 나머지 선원들은 합심해서 이 밧줄을 끌어당겨야 한다. 그 밧줄 끝에는 철사 동아줄이 매어져 있으므로, 이를 배 위로 끌어당기기 위해서다.
그 철사 동아줄이 올라오면 이를 롤러에 연결돼있는 강삭(와이어로프wire rope)에 연결하고, 2호선에서는 동아줄을 선체에 고정시켜 두었던 앵커의 안전장치를 풀어준다. 이때 롤러를 돌려 동아줄을 잡아당기면 본선(1호선)이 끄는 그물 한쪽과 합체되어 갑판위로 올라오게 되는 것이다. 투망할 때의 반대 순서로 강삭과 벼리, 부이, 그물이 대형 롤러에 감기게 된다.
이때, 여간 조심해야 한다. 강삭과 그물 벼리, 부이가 역시 꼬이지 않고 질서정연하게 롤러에 감겨야 하기 때문이다. 갑판원들은 이때 강삭과 벼리 등을 롤러 테 안으로 밀어 넣기 위해 안간힘을 쏟는다. 그러다 잘못하면 강삭이나 그물에 손이 말려들어가는 사고를 당하게 된다. 나는 한두 번 손이 말려들어갈 뻔했다. 다행히 위에서 보고 있던 선장이 재빨리 기계를 멈추어 사고를 모면했다. 대신 그의 욕을 바가지로 먹어야 하는 것은 피할 길이 없다.
사실, 아무런 경험도 상식도 없는 초보가 롤러 가까이서 작업을 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 이 자리는 노련한 유경험자가 맡아야 했다. 그러나 선임들은 모두가 닳고 단 사람들인지라 그 자리를 회피했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위험성을 직접 느꼈고, 또 사고를 당한 일도 있었을 터. 결국은 멋모른 내가 은연중에 자원한 셈이었다.
그물의 벼리로부터 시작된 양망 작업의 마지막은 기중기(크레인)를 이용해 집어망을 갑판 위로 들어 올리는 것이다. 쌍끌이어선에는 대부분 기중기가 설치돼 있다.
마지막으로 집어망이 선미를 통해 올라오면 선상의 작은 크레인이 이를 매달아 올린다. 이때 갑판원이 집어망 밑 부분을 꿰매 놓은 노끈을 풀어주면 고기가 갑판 위로 쏟아지게 된다. 크레인 조작은 선장이나 항해사가 하고, 집어망 노끈을 푸는 일은 주로 중국인 유가 했다.
집어망이 열리면 선상에는 희비가 교차한다. 고급 어종이 다량으로 잡히면 일손은 더욱 바빠지면서도 피곤한 줄을 모른다. 그러나 시답잖은 잔챙이가 그득 올라오면 힘이 빠지게 된다. 죽도록 일을 해봐야 소득은 별로인 것이다.
첫 투망은 비교적 실적(나의 주관적 판단)이 좋은 것 같았다. 허벅지만큼 굵은 가다랑어가 많이 잡힌 것이다. 가다랑어는 비교적 비싼 가격으로 팔린다. 삼치, 고등어와 모양새와 색깔이 비슷해 혼동하기 쉽다. 가다랑어는 꼬리 잘룩한 부분이 가늘고 동그란 모양이다.
다랑어는 참다랑어, 가다랑어로 분류되는데 흔히 참치라고 부르는 생선이다. 참치라고 하면 엄밀히 ‘참다랑어’만을 의미한다. 우리가 보통 사서 먹는 참치캔에 들어있는 생선은 ‘가다랑어’라고 한다. 가다랑어는 넓은 의미로는 참치류에 속하지만, 실제는 이름 그대로 가짜 참치인 것이다. 일본에서 참다랑어는 ‘혼마구로’로 불린다.
시중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이른바 ‘마구로’ 횟집에서 내놓는 참치 대부분은 가다랑어라고 보면 된다. 참다랑어는 그만큼 귀하고 맛도 있다. 큰 놈은 몸길이가 3m, 몸무게는 500kg을 넘기도 한다. 등 쪽은 짙은 푸른색이고 중앙과 배 쪽은 은회색으로, 해수면 바로 아래에서 헤엄치면서 먹이 사냥을 한다. 가다랑어와 혼동하기 쉬운 생선은 또 삼치. 몸체의 모양과 색깔이 서로 비슷하다.
다랑어는 1년 중 4~6월에 잡힌 것이 가장 좋은 횟감이라고 한다. 산란 직전이어서 살에 지방이 많이 오르기 때문. 시중 ‘참치 전문’ 식당에서 내놓는 ‘참치회’는 오리지널 참치가 아니라 황새치 또는 청새치일 가능성이 높다.
황새치는 전갱이목 황새치과의 종이다. 황새치는 길이가 3~4.5m 정도인 데, 이보다 큰 게 청새치와 흑새치이다. 이들 세 물고기는 주둥이가 뾰족하고 긴 창 모양으로 돼있다. 이는 곧 타 어족에 대한 공격 무기로 활용된다. 몸체 색깔이 조금 다를 뿐 형태는 비슷하다. 그리고 바다의 먹이사슬 최정상에 있을 만큼 난폭성을 갖고 있다.
미국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1899~1961)가 1952년에 발표한 중편 소설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산티아고 노인이 낚시로 잡은 물고기가 바로 이 청새치이다.
참다랑어는 주로 낚시로만 잡는다. 잡은 즉시 영하 65도 이하에서 급속 냉동해야 횟감으로 쓸 수 있다. 가다랑어는 대개 그물로 잡는데, 영하 20도로 냉동해 통조림을 만들거나 횟감용으로 유통된다. 가다랑어 외에도 눈다랑어, 황다랑어 등이 넓은 의미에서 참치류에 속한다. 일반적으로 일본의 우동 등에 들어가는 천연조미료인 ‘가츠오부시’는 가다랑어를 가공한 것이라고 한다. 입이 뾰족한 황새치, 백새치 등 ‘~새치류’는 참치류와 구별된다.
나는 갑판을 지배하고 있는 풍채 당당한 이 고기가 다랑어인 것으로 알았다. 또 그것이 참치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배 반장이 가다랑어라고 가르쳐 준다.
어쨌거나, 가다랑어는 크게 대접받는 물고기이다. 우선 몸집이 크므로 선별해서 박스에 담는 것부터 편하다. 상자당 단가도 높아 선원들이 가장 조심스럽게 다룬다.
선별 작업을 해보니 다랑어가 20여 상자로 가장 많았고 오징어와 조기, 갈치 등이 각 10상자 내외였으며, 붉은 새우도 네댓 상자나 됐다. 이들은 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급속냉동실(영하 60도)에 저장된다. 씨알이 작은 것들은 삽으로 플라스틱 팬에 퍼 담아 일반 냉동 창고에 저장한다. 그리고 상품성이 적은 꽃게 등은 딱딱한 껍데기로 인해 사료로도 쓸 수 없어 그대로 바다에 버려진다. 그런데 그 양이 그물을 올릴 때마다 적지 않다. 놔두면 크게 자랄 수 있는 것을 무작정 잡은 꼴이다.
나는 고기를 선별하는 것을 눈치껏 했다. 그러나 고등어와 작은 가다랑어 등 비슷하게 생긴 고기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해 많은 타박을 들었다. 크기도 얼마만큼의 것을 선택하고, 버릴지 선뜻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큰 것으로 생각하고 골라놓으면 “헛 일 했다.”고 타박하고, 작다고 사료용으로 분류해 놓으면 또 “비싼 고기를 버렸다.”고 면박을 주었다.
선별 작업은 갑판에서 쭈그리고 하는 일이라서 좀이 쑤신다. 허리가 끊어질 만큼 아프고, 무릎이 저려도 허리와 다리를 펼 수 없다. 바로 위 조타실에서 선장이 감시라도 하듯 지켜보고 있고, 시시때때로 잘못하면 욕설을 퍼부어대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보다 어상자를 들어 옮기는 일이 버거웠다. 40kg이 넘는 무게였고, 잘 정리된 고기를 잘못하여 흩트리기라도 하면 욕을 먹기 때문에 여간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물론 어종에 따라 20kg짜리도 있다.
고기 상자를 냉동고에 넣는 일은 팀워크가 짜져야 한다. 한 사람은 어창 위에서 창고 아래로 고기 상자를 내려주고, 그 아래 어창에서 한 사람이 그것을 받는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이 이를 건네받아 냉동고 선반에 진열하는 것이다.
어창에 들어가는 사람은 한여름에도 방한복을 입고, 방한화를 신어야 한다. 나는 갑판에서 고기 상자를 날라다 어창 위에 있는 사람에게 건네주는 일을 주로 했다. 그런데 그 일도 힘에 부쳤다.
냉동 창고에 들어가 일하는 사람은 중국 선원이 전담했다. 그리고 어창 위에서 상자를 내려주는 일은 배 반장이 맡았다. 사실 배 반장이 맡은 포지션이 매우 힘들고 중요하다. 나는 타이밍에 맞춰 배 반장에게 고기 상자를 가져다 넘겨줘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가 않았던 것. 그래서 그 일을 갑판장과 기관사가 대신했고, 나는 갑판 멀리 떨어져 있는 사료용 고기 상자 등을 가까이 가져오는 일을 주로 했다. 그것도 하나씩 번쩍 들어 올릴 수가 없어 갈고리로 끌고 와야만 한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무거운 고기 상자를 들어 나르는 것은 내겐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어상자를 어창에 모두 넣고 나면 나는 갑판청소를 했다. 어상자를 다루는 일이 서툴렀으므로 자연히 홀로 늦게까지 갑판청소 같은 것을 도맡았던 것. 펌프로 대형 호스를 통해 품어 올린 바닷물을 갑판에 뿌려 청소를 한다. 덜 걷힌 생선이나 비늘 등을 말끔히 씻어내 배수구를 통해 바다로 흘려버리는 일을 하고서, 깨끗한 갑판을 보면 그만큼 마음도 상쾌하다.
청소를 마치고 나니 새벽 3시 30분. 손발을 씻고 잠자리에 들었으나 잠이 올 리 만무하다. 비몽사몽 간에 눈을 떠보니 아침 6시 30분. 일어나 양치질과 세수를 하고 갑판 여기저기 구석진 곳 청소를 했다. 그리고 아침 식사를 했다.
이 시간엔 2호선 그물이 바다에 드리워져 있다. 그러니까 잠시 후면 2호선에서 그물을 올려 고기를 선별하고, 어창에 보관하는 작업을 하게 된다. 이때는 쉬는 것 같아도 사실상 일을 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그물을 함께 끌고 있는 우리가 탄 배가 그렇다는 얘기.
그리고 2호선이 그물을 올릴 때 우리는 그물을 내려야 한다. 1호선이 그물을 내리려면 2호선으로부터 그물 한쪽 끝을 매단 철사 동아줄을 넘겨받아야 한다. 이때 1, 2호선은 가급적 선체를 가까이 접근시킨다. 그리고 1호선에서 비교적 가벼운 마직 밧줄을 2호선에 던져 준다. 2호선은 마직 밧줄을 받아 이에 강삭 동아줄의 끝을 묶어 1호선에 던져 준다. 그러면 1호선 갑판원들이 힘을 합쳐 이 강삭을 끌어 올려 롤러에 있는 강삭에 연결시킨다. 그리고 2호선에선 선체에 고정시킨 강삭 핀을 뽑아 준다. 그러면 이제 1호선 그물이 바다에 펼쳐지는 것이다. 이 일을 하루에 두 차례씩 반복한다. 물론 그물 한쪽의 벼리는 여전히 2호선에 고정돼 있다.
우리는 그물을 내리기 전, 롤러에 감긴 그물을 풀어 일일이 점검한다. 그물에 걸려있는 고기를 털어내고, 터진 그물코를 꿰매야만 한다. 그물을 꿰매는 일은 주로 갑판장이 했고, 중국인 선원도 함께 거들었다. 나는 노끈이 떨어지면 알맞게 잘라서 바늘에 감아주는 등 그들의 조수 역할만 했다.
오전 10시, 그물 손질을 다 하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그물을 내렸다. 두어 번 반복하니 그만큼 요령이 생겼다. 정신없이 그물을 내리고 나서 사위를 둘러보니 얼마 전까지도 아득히 보였던 한라산 봉우리가 오간 데 없다. 말 그대로 망망대해. 배裵에게 물으니 동지나해 가까이 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