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7. 동지나해서 본격 어로작업

<에세이> 늙은 어부의 노래

by sunb

투망을 끝낸 선원들이 모두 식당이나 선실로 들어간다. 나는 갑판에 서서 출렁이는 바다를 바라다본다.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없다.

어디가 바다이고, 어디가 하늘인가

바다 끝과 하늘 끝자락 맞닿아 있네

바다와 하늘은 하나

천해일여天海一如인 것을

이게 바로 ‘우주’가 아니던가

그 광대무변한 우주 한가운데

난, 홀로 서 있다.

큰 편에 속한다는

KYO7호는 일엽편주에 불과하고,

여기 올라탄 난, 한 티끌이려니

이 드넓은 우주에서 내 운명은

오직 KYO7호에 맡겨져 있다

여기서만큼은 생과 사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이 엄청난 우주의 위신력威信力에

미미微微한 인간이 어찌 대적할 수 있단 말인가

삶과 죽음,

그것의 결정권을 움켜쥐고 있는 것은

오로지 이 우주인 것을

이토록 광대무변한 우주에서

한갓 티끌에 불과한 인간은

이 우주의 위신력을 믿으며,

그 위신력에 의지해서 생을 유지해 가고 있을 뿐

KYO7호에 몸을 맡긴 10명의 사나이

그들은 저마다 누군가를 위해

목숨을 내맡기고 있다.

사업에 실패해 배를 탔거나,

신용불량자가 돼 그랬거나

또 이혼했거나,

이역만리 중국에서 왔거나

그들은 다 가족의 삶을 책임지는

자식이자, 남편이며, 아버지인 것을…

아버지를 걱정하고 있을 아이들이 떠오른다. 여기서는 휴대폰도 터지지 않는다. 떠나올 때, 문자 메시지만 보내놓고 의도적으로 휴대폰 전원을 꺼버렸던 나. 이젠 아이들에게 소식을 전할 수조차 없는 곳에 와있다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하다.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한 우주 공간에서 함께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 뿐.

이런 곳에까지 와서 아이들을 걱정하는 것은 나를 슬프게 한다. 아이들 생각만 하면 저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가급적 아이들을 잊어버리는 것이 상책이다. 그것은 일에 빠져 있을 때만이 가능하다. 그래서 열심히 일을 해야만 한다.

아이들 생각에 잠시 시름에 잠겨 있는 사이 식사하라는 전갈이 온다. 밥을 먹으라고 하거나, 쉬라고 하는 사람은 늘 배 반장이다. 참, 고마운 사람….

점심을 먹고는 침상에 들어가 쉬었다. 그리고 잠시 잠에 빠졌다.

배에서는 따로 잠을 자는 시간이 없다. 그물을 내려놓곤 어창 정리를 하거나, 고기상자 밴딩을 하고, 작업이 없으면 무조건 잠을 자는 것이다.

식사시간도 딱히 정해진 것이 없다. 하루 세 끼를 먹기는 한 데 뭍에서처럼 아침, 점심, 저녁, 이렇게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투망이나 양망이 끝나면 적당한 시간에 밥을 먹는다. 저녁 12시에 먹기도 하고 새벽 3, 4시에 먹을 때도 허다하다.

두 척의 배가 각기 그물을 내렸다가 올리는 시간은 대략 5~6시간의 간격이 있다. 이 시간에 잡아 올린 고기를 선별해 냉동고에 저장하고, 그물을 손질하고, 어상자를 만들고, 식사를 하고, 잠을 자는 것이다.

보통 하루에 두 번 고기를 잡아 올린다. 그러나 그 시각이 일정하지는 않다. 밤중이나 새벽에 그물을 내리거나 올리는 일도 많다. 그래서 한낮에도 잠을 자야 한다. 밤과 낮의 구별이 없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날짜가 어찌 가는지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감이 오지 않는 것. 그리고 한참 지난 것 같은데, 실제는 며칠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루에 잠을 두 번씩 자고, 한밤에도 일을 하기에 여러 날이 흐른 것 같아도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나는 승선 후 며칠간이 그리도 길게 생각되었다. 일주일쯤 지났나 싶었으나 겨우 3일을 넘기고 있었다.

동지나해에서 한 첫 조업의 주 어종은 참조기였다. 평소 내가 알고 있던 참조기가 이처럼 아름다운 고기인 줄은 처음 알았다. 집어망集魚網을 풀었을 때 갑판은 온통 황금빛이었다. 갓 잡아 올린 참조기는 등 쪽 일부를 제외하고는 순금색이다. 그 자태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국립생물자원관 생물다양성정보에 따르면 참조기는 황조기·노랑조기·조기·참조구 등으로 불린다. 영어 이름은 Small yellow croaker 또는 Yellow corvina이다. croaker(크로커)는 ‘조기’이고, corvina(코비너)는 미국 캘리포니아 연안에서 주로 잡히는 ‘민어과 물고기’를 의미한다.

생물다양성정보에 참조기는 몸길이가 대체로 40cm 정도로, 몸은 황갈색이며 배는 진한 노란색을 띤다고 소개돼 있다. 그리고 참조기의 모든 지느러미는 연한 노란색이라고 했다. 세간에서도 노란색을 띤 생선이 참조기로 알고 있다. 지금까지 나를 비롯한 국민 대다수가 그리 알고 있는 바와 같다.

그런데, 지금에 와 알게 된 것은 노란색을 띤 이 생선은 참조기가 아니라 부세라는 것이다. 부산 자갈치시장 상인들에 따르면 은색을 띤 게 참조기란다. 노란빛을 띤 생선은 참조기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참조기보다 더 고급 생선이 침조기(긴가이석태)라고 했다. 참조기와 침조기는 전문가라도 잘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비슷하다.

아무튼, 조기(참조기)는 우리 국민이 가장 선호하는 대표적인 생선이다. 우리 식생활에서 오랜 어업역사를 지닌 조기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가공되어 독특한 맛을 낸다. 그 가운데 굴비가 가장 유명하다. ‘정주굴비’라고도 불리는 영광굴비는 고려시대부터 그 명성을 떨쳤다고 한다.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는 ‘조기가 해족海族 가운데 가장 수가 많고 맛이 좋다’고 소개돼 있다. 여기서 조기는 참조기를 가리킨다. 참조기는 살이 연하고 맛이 좋아 가격도 비싸다. 그러나 일반 소비자들은 참조기와 부세, 보구치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초봄에 말린 전남 영광군 법성포산 굴비가 가장 유명하다. 원래 ‘영광굴비’는 법성포 앞바다에서 잡은 참조기를 말린 것을 말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다른 지역에서 잡힌 조기를 가져다 법성포에서 말린 것이 ‘영광굴비’로 유통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중국산 참조기와 국내산 참조기는 모두 같은 종 같은 개체군으로,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고 한다. 황해(또는 동중국해)산 조기를 중국 배가 잡으면 중국산, 한국 어선이 잡으면 한국산이 되는 것.

참조기와 부세, 보구치 등을 일일이 구분하기가 모호해 여기서는 그냥 ‘조기’로 통칭한다. 몸길이 30cm 정도의 조기는 3만~7만 개의 알을 낳는다고 한다. 부화 후 1년이 지나면 15cm 정도, 2년이면 24cm, 3년이면 30cm가 넘게 자란다고. 상품 가치를 지니면서, 최고의 맛을 내려면 적어도 30cm는 돼야 한다.

우리가 잡은 30여 상자의 조기 가운데 30cm가 넘는 상품은 두세 상자에 불과하고, 20cm 정도의 하품이 대부분이다. 하품에도 끼지 못하는 새끼 조기도 상당수이다. 아직 그물에 걸리지 않았어야 할 새끼들이 무차별 잡힌 것이다. 선별을 하는 동안 ‘이들을 1년만 더 바다에서 살게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내내 가시지 않았다. 값이 비싸고,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높다 보니 어부들은 조기잡이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동해 남부에서부터 남해~서해에 걸쳐 주로 서식하는 조기는 일본 서부 연안, 동중국해(황해) 등에도 분포한다. 여름부터 가을~겨울~초봄까지 잡힌다. 3~6월께 산란을 하므로, 4월 22일부터 8월 10일까지는 금어기이다.

조기의 개체 수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 것이고, 조기 어업은 사양길에 들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요즘 기술이 발달해 참조기의 대량 양식도 가능해졌다고 하니, 괜한 걱정은 안 해도 될 듯하다. 국립수산과학원이 참조기 어미로부터 알을 채취해 인공 사육하는 기술을 개발, 세계 최초의 참조기 양식이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선별을 끝낸 우리는 고기 상자를 급속 냉동고에 집어넣었다. 잡힌 고기가 조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갈치와 오징어, 새우 등 다양한 종류이다. 때론 백상아리 같은 대형 고기도 잡힌다. 고등어와 같은 고기는 아무리 크고 좋아도 다시 바다에 버려진다. 요리사가 한두 마리 가져다가 굽거나 조림을 해서 반찬으로 선원들의 식탁에 올려주면 그것이 최고의 대우인 셈.

keyword
이전 07화6. 첫 조업, 풍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