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늙은 어부의 노래
이번엔 어획량이 많아 작업시간이 평소보다 더 걸렸다. 그래서 고기 상자를 냉동고에 집어넣은 뒤 곧바로 그물을 내렸다. 덕분에 아침밥은 오전 10시에야 먹었다.
이날은 유독 일을 많이 했다. 아침 식사를 한 뒤 커피 한 잔 마시고 나서 곧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급속 냉동고(영하 60도)에서 어상자를 꺼내 포장을 하는 일이다. 이 일 역시 모든 선원이 에스컬레이터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만 한다.
냉동고에 들어가 고기 상자를 꺼내는 일은 언제나 중국인 선원 유와 조가 한다. 방한복을 입고 고기 상자를 모두 꺼낸 뒤 밖으로 나온 그들은 마치 에스키모처럼 변해 있곤 했다. 방한모의 인조털과 그들의 눈썹, 콧수염엔 하얗게 눈꽃이 피어 있다.
급속 냉동고에서 나온 고기 상자는 비닐로 싸고, 호치키스hotchikiss로 고정시켜 그 위에 고기 숫자와 등급을 매직펜으로 적는다. 등급은 고기 마릿수로 결정된다. 호치키스 작업을 하는 사람은 갑판장과 기관사였고, 매직펜으로 적는 일은 기관장이 했다. 내가 그 포장된 상자를 저장고인 저온(영하 20도) 냉동고 입구에서 내려주면 배 반장이 냉동고에 가지런히 쌓는 일을 한다. 이러니 한 사람이라도 빠지게 되면 작업이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못한다.
영하 60도를 유지하는 급속 냉동고는 갑판 위(조타실 아래)에 있고, 영하 20도를 유지하는 저장 냉동고는 갑판 아래에 있다. 저장 냉동고로 옮겨진 고기는 입항해서 하역할 때까지 그대로 유지된다.
나는 급속 냉동고 안에는 들어가보지 못했다. 나이가 많아선지 선임들이 냉동고 출입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 대신 저장 냉동고 작업에는 빠짐없이 참여했다. 처음, 저장 냉동고에 들어가 일을 하다가 미끄러져 가벼운 찰과상을 입는 등 크게 고역을 치렀다. 냉동고에는 반드시 방한복과 방한화를 착용하고 들어가야 했다. 하지만 신입이었던 내겐 지급된 방한복과 방한화가 없었다. 선실 옆에 여벌로 걸려 있는 방한복을 찾아 입긴 했으나 발에 맞는 방한화가 없어 일반 장화를 신은 채 냉동고에 들어갔다.
냉동고 안은 말 그대로 얼음의 세계다. 바닥은 빙판과 같아 매우 미끄럽다. 나는 고기 상자를 들어 옮기다 미끄러지고 말았다. 크게 다친 곳은 없었으나 무릎에 멍이 들었다. 이를 본 선임이 이제야 한 마디 조언한다. “냉동고에 들어올 때는 꼭 방한화를 신어야 한다.”고. 그 이후 나는 커서 철떡거리든, 안에 물이 젖어 있든 가리지 않고 방한화를 신고 냉동고에 들어갔다. 젖어있는 신발을 신고 들어갔다가 발이 시려 고통을 받기도 했다. 냉동고에서 발이 젖어있으면 동상에 걸리기 십상이다.
냉동고 안에서 하는 작업은 이처럼 내게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미끄럽고 추운 것도 문제였지만, 무거운 어상자를 들어 옮기는 일이 무척 힘에 겨웠다. 같은 부피라도 얼면 중량이 더 나가는 것인지, 꽁꽁 언 고기 상자가 그렇게나 무거울 수 없었다. 나는 고기 상자를 들어 올릴 때마다 이른바 배지기를 했다. 상자 한쪽을 아랫배에 올려두고 나르는 것이다.
특히 사료용 고기 상자는 다루기가 까다로웠다. 사료용은 플라스틱 팬에 담아서 냉동을 한다. 이 무게는 대부분 40kg이다. 냉동이 끝나면 이를 팬에서 꺼내어 그대로 저장고에 쌓아 보관한다. 팬에서 꺼낼 때는 팬을 거꾸로 들어 바닥에 내동댕이치게 되면 저절로 빠져나온다. 마치 커다란 벽돌 모양의 얼음덩이와 같다. 미끄럽기 때문에 손으로 잡을 때에도 어려움이 많다. 더욱이 갈치가 많이 담긴 사료용은 가시에 찔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작업이 끝난 것은 낮 12시 20분께. 아직 그물을 올리기까진 잠시 눈을 붙여도 될 만큼 여유가 있었다. 선임들은 거의 모두 각자의 침상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하거나 잠을 잔다. 갑판장과 요리사는 식탁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는 일이 고된 나머지 입이 말라서 식탁 벤치 끝머리에 앉아 물을 한 컵 마셨다.
그런 내가 측은했던지 요리사가 종이컵에 소주를 가득 따라 내게 건넨다. 나는 갑판장의 눈도 있고 하여 사양하였다. 그랬더니 갑판장도 “괜찮으니 한잔 하이소.” 하고 권한다.
나는 못 이긴 척하며 컵을 받아 한입에 마셨다. 소주가 목줄을 훑고 내려가는 그 시원, 상쾌한 느낌이라니… 나는 그 짜릿함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 잠시 입을 다물고 있어야 했다.
‘세상에나, 소주가 이리도 달 줄이야!’
60평생 처음 만나 본 맛이었다. 흔히들 맛에 대한 극찬으로 ‘꿀맛’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꿀 백 잔과 한잔의 소주를 놓고 선택하라 하면 기꺼이 이 한잔의 소주를 택하리라.
소주를 한잔 마시고 나니 없던 힘이 솟는 듯했다. 한잔 더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으나 그 뿐. 한잔을 받아 마시게 된 것도 오로지 내 나이가 많은 덕분이었다. 그들의 측은지심이 발동했기에 가능했던 것.
“영감, 배를 처음 탄다고 했능교?”
요리사가 물었다. 요리사는 늘 나를 ‘영감’이라고 불렀다. 그는 아마도 내가 나이를 속이고 있다는 낌새를 알고 있는 듯했다.
“난생 처음입니다.”
“그런데 그리 일을 잘 하능교?”
요리사가 빤히 쳐다보며 다시 말을 걸었다.
“내가 뭐 잘한 게 있습니까? 고기 상자 하나 제대로 들지 못하는데….”
“고기 상자는 젊은넘들이 들면 되고요, 너무 무리하지 마이소.”
“일손이 모자라는데 그럴 수 있습니까.”
“선장도 뱃일을 처음 하는 것 같지는 않은 것 같다고 말하던데요. 나도 그리 보고요.”
갑판장도 거들었다.
“잘 봐주셔서 그렇겠지요.”
나는 웃으면서 말을 했다.
나는 정말 백지상태에서 눈치껏 일을 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어도 그물을 내릴 때 어디쯤 서서, 무슨 일을 해야겠구나 하는 판단은 나 스스로 할 수 있었다. 그물을 올릴 때도 와이어로프가 서로 꼬이지 않고 롤러에 감기게 하고, 벼리와 그물에 걸려온 폐그물 등 쓰레기를 재빨리 뜯어내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위(조타실)에서 일하는 것을 지켜본 선장의 눈엔 그래서 내가 뱃일을 처음 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선장은 투망 때나 양망 때 눈에 거슬리면 무차별 욕설을 퍼붓긴 해도, 평소 나를 보면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나이 많은 사람이 가리지 않고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모습에서, 그는 내게 호감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내가 마지막까지 남아 갑판청소와 정리를 하고 있으면 “영감님, 빨리 와서 식사하세요.”라고 하면서 “배에서 너무 부지런히 일을 하면요~, 탈이 날 수 있으니 살살 하이소.” 하고 말하기도 했다.
그물을 올릴 때마다 잡히는 고기 종류는 비슷했으나 해역에 따라 주 어종이 달랐다. 제일 수지가 낫다고 생각되는 가다랑어는 동지나해에서 그렇게 많이 잡히지 않았다. 제주도 근해와 남해 먼바다를 지나오던 길에 주로 많이 잡혔던 가다랑어는 보이지 않았던 것. 동지나해가 가까워지면서는 조기가 주로 많이 잡혔다. 선장도 조기 어군을 쫒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조기는 풍어라고 느낄 정도로 만족을 주지는 못했다. 대부분 상자를 채우는 것은 조기 외에 갈치와 오징어, 새우였다.
오징어는 선별하기에 참 편한 물고기이다. 몸체가 부드러워 다루기가 까다롭지 않다. 오징어는 흔히 갑오징어라고 하는 참오징어를 비롯해 화살꼴뚜기, 피둥어꼴뚜기, 살오징어 등 종류가 다양하다. 시중에서 일반적으로 ‘오징어’로 통용되고 있는 것은 피둥어꼴뚜기이다. 피둥어꼴뚜기는 몸체가 짧으면서 통통하고, 살오징어는 몸체가 가늘고 긴 것이 특징.
대체로 ‘다리’라고 부르는 낙지·문어·오징어 등의 다리는 용도를 보면 팔 같기도 하고, 다리 같기도 하다. 그래서 이런 것을 가리킬 때는 ‘완腕’으로 쓰는데, 팔이란 뜻이다. 이들은 이 완으로 먹이를 잡아먹기에 손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오징어와 꼴뚜기, 한치 그리고 문어·낙지·주꾸미 등은 다리 수로 그 족속이 갈린다. 오징어와 꼴뚜기, 그리고 오징어와 생김새가 비슷한 한치는 다리가 열 개이다. 그리고 문어와 낙지, 주꾸미는 8개.
한치는 몸길이가 한 치(一寸)에 불과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그만큼 체형이 크지 않다는 말이다. 가끔 1m가 넘는 대형 한치가 잡혔다는 뉴스가 전해지곤 하는데, 이는 틀린 이야기. 한치의 몸통 길이는 커봐야 최대 20cm 정도라고 한다. 수컷은 40cm까지 자라는 경우도 있고. 한치는 육질이 부드럽고 연해 횟감으로 많이 이용된다.
오징어는 불빛을 좋아하는 성질이 있다. 이 성질을 이용하여 밤에 집어등集魚燈을 사용해 낚시로 낚아 올리는 ‘채낚이’ 방법이 널리 쓰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동해 연안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오징어 잡이는 이 방식을 쓴다. 그러나 정치망이나 저인망으로도 어획된다. 동지나해에서 우리가 잡는 주 어종은 이 참오징어였다.
오징어는 한자로 오적어烏賊魚라고 적는다. 오징어는 까마귀를 즐겨 먹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사냥법이 참으로 독특하다. 오징어는 물 위에 떠서 죽은 체하다가 이것을 보고 달려드는 까마귀를 다리腕로 잽싸게 감아서 물속에 들어가 먹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 오적어烏賊魚이다. 바로 ‘속임수의 달인’인 셈이다.
중국인 선원 조는 오징어를 매우 좋아했다. 선별에서 밀려난 오징어의 배를 갈라 손질한 뒤 말려서 먹었다. 오징어를 납작하게 펴 기관 굴뚝 옆에 있는 철망에 걸어두면 금세 말랐다. 그는 이것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찢어 먹곤 했다. 그리고 선임들이 달라고 하면 조금씩 찢어주었다. 나도 그 말린 오징어가 먹고 싶었다. 하지만 조는 그런 내게 다리 한 개나마 준 적이 없고, 그렇다고 그에게 손을 벌리기는 싫었다. 직접 손질해 말려서 먹기도 뭐해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