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늙은 어부의 노래
선미 갑판에 서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물거품 속에
풍덩 빠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스크루가 회전하면서 만드는 물보라가
‘뛰어들어와~’ 하고
땀에 흠뻑 젖은 육신을 유혹하는 듯했고
너무도 지친 나머지 그냥 빠져들고 싶다
‘저 속에 빠지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가겠지~’
생각하면서····
우리와 짝을 이룬 2호선이 바짝 다가온다. 그들에게서 밧줄을 넘겨받은 우리는 다시 또 있는 힘을 다해 그물을 건져 올린다. 집어망이 두툼한 게, 많은 고기가 잡힌 것 같았다.
그물을 열어보니 조기와 새우가 주로 잡혔다. 갑판은 황금색과 붉은색으로 그득했다. 시중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게 이 붉은 새우이다. 아무리 크다 해도 가운뎃손가락 크기만 한 것들이었다.
보통 대하大蝦 또는 왕새우라고도 하는데, 말 그대로 큰 새우라는 뜻이다. 큰 것은 20cm가 넘는 것도 있다고 하나, 어로작업 중에 그런 새우를 본 적은 없다. 동지나해와 서해의 중국 산둥(山東)에서 뽀하이만(渤海灣)에 이르는 해역에 걸쳐 분포한다. 산둥~뽀하이만 해역은 우리나라에서 보면 황해에 속한다.
일본 사람들은 우리가 대하라고 말하는 ‘오도리おどり’를 특히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오도리’라는 새우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하(왕새우)를 생(회)으로 먹는 것, 회로 먹는 왕새우를 오도리라고 하는 것이다. 일본 말 ‘오도리踊り’는 춤을 춘다는 뜻이다. 생새우가 펄쩍, 펄쩍 뛰는 모습이 마치 춤을 추는 듯하다 하여 그리 부른 것으로 보인다.
오도리가 강정 식품으로 알려지면서 우리나라 사람들도 매우 즐겨 먹게 되었다. 회로 먹는 새우(오도리)는 붉은 새우가 아니고, 약간 푸르스름한 색을 띠는 보리새우(참새우)이다. 보리새우는 대체로 붉은 새우보다 몸체가 더 크다. 그래서 대하라고 하는 것.
선별을 하다보면 다른 새우는 모두 죽어있는 데 비해 보리새우는 대부분 살아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날로 먹어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임들은 이 보리새우가 보이기만 하면 재빨리 주워서 껍질을 벗긴 뒤 아작아작 씹어 먹곤 했다. 나도 먹어보고픈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나 그 위생성이 의문스러웠고, 신참 주제에 그럴 수는 없었다.
보리새우는 어쩌다 눈에 띌 뿐, 양이 많지 않았다. 고참들이 즉석에서 다 먹지 않아 남은 것은 식당으로 가져다 구워 먹는다. 그래 봐야 양은 중간 크기의 양푼 한 개 정도였다. 나도 식당에서 구운 새우를 맛보았다. 역시 맛이 일품이었다.
젓새우라는 것도 있는데, 젓갈을 담가 먹는 새우를 말한다. 커봐야 4cm 내외이다. 거의 모든 새우의 수명은 1년 내외로 짧은 것이 특징. 강과 같은 담수에서는 대하와 흡사한 징거미와 토하土蝦가 산다. 징거미는 구워 먹거나 찌개로 만들어 먹고 토하는 찹쌀죽을 섞어 젓갈을 만들어 먹는다. 토하는 익히거나 삭히면 새빨간 색으로 변한다. 그래서 ‘벼락새우’라고도 부른다.
토하젓은 소화 작용을 돕는 효능이 있어 예로부터 체했을 때나, 돼지고기를 먹을 때 함께 먹어왔다. 새우와 돼지는 상극이라고 한다. 산 돼지가 새우젓갈을 먹으면 즉사한다는 것. 그래서 돼지에게 새우젓이 든 음식을 주는 것을 금기시한다. 반대로 새우가 돼지고기를 소화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돼지국밥집이나 보쌈집과 같은 음식점에서 반드시 새우젓갈을 함께 내놓는 연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토하가 아닌 바다 새우지만.
독도 바다에서 잡힌다고 하여 우리에게 익숙한 독도새우는 일명 꽃새우라고 한다. 독도 바다 이외에 동해 먼바다에서도 서식한다. 자갈치시장과 부전시장 등에서 만날 수 있다. 이들 새우만을 취급하는 전문 식당도 적지 않다.
독도새우가 아니라도 대부분의 새우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생선이다. 그렇다 보니 바다에서도 크게 대접을 받는다. 다른 고기는 상품성이 없다 싶으면 버리거나 사료용으로 천대를 받지만 새우는 그렇지 않다. 새우는 껍질이 연약해 양망 과정에서 쉬 터지는 등 상처가 나기 쉽다. 하지만 버리지 않고 상자에 담아 냉동고에 차곡, 차곡 저장한다.
나는 처음, 온전하지 못한 새우를 주워 담지 않고 버려두었다가 고참으로부터 된통 혼이 났다. 새우는 크기가 작든, 상처가 있든 가리지 않고 모두 주워 담아야만 했다. 그 작은 새우 한 마리가 식탁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손이 들어가 있는지를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한 마리, 한 마리 주워 담고 바닷물로 깨끗이 헹궈서 일일이 상자에 담는 등 선상에서만 새우 한 마리에 5~6번의 일손이 들어간다. 상자에 그냥 쏟아붓는 것이 아니라 큰 것은 큰 것대로, 작은 것은 작은 것끼리 다시 골라내야 한다. 그리고 군인이 줄지어 열병하듯 상자에 반듯하게 정렬해 담아야만 상품 가치를 인정받는다.
새우는 이처럼 무척 일손이 많이 간다. 하지만 그 절대량은 많지 않아 수익성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한 번 그물을 올릴 때마다 다섯 상자를 넘지 못했다.
이따금 병어兵魚가 잡히기도 한다. 병어 역시 대접을 받는 어종. 병어도 크기에 상관없이 잡히는 대로 냉동저장고로 들어간다. 병어는 몸길이가 60㎝에 이르는 것도 있다고 하나, 우리가 잡은 것은 대개 20~30cm 정도였다. 푸른빛을 띤 회색의 둥근 모양이다. 그리고 납작하게 생긴 병어는 벗겨지기 쉬운 미세한 비늘로 덮여 있다. 배지느러미가 없는 게 특징이고, 등지느러미는 1개이다.
외양성外洋性이나 산란기인 6∼7월 무렵 내해로 들어와 무리지어 유영하고, 때로는 강 하구에 접근하기도 한다. 가을엔 외해로 나가며 새끼도 전체 길이 3㎝ 정도가 되면 외해로 나간다.
우리나라에서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병어를 어획하고 있었음을 문헌을 통해 알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병어가 경기도, 전라도 지방의 토산물로 실려 있다. ‘난호어목지’에는 병어를 ‘창鯧’이라 기록하고 있다. 또 정약전 선생의 ‘자산어보’에는 ‘편어扁魚’, 속명 ‘병어甁魚’라고 실려 있다. 등과 배가 불쑥 나와 그 모양이 사방으로 뾰족하고, 길이와 너비가 거의 같으며 입이 극히 작다고 설명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저인망으로 잡기도 하고 어살漁箭이나 중선망으로 다른 어류와 함께 어획했던 것으로 나와 있다. 근래에는 주로 근해 안강망과 우리가 하는 기선 저인망으로 어획한다. 우리나라 남 서해와 동중국해 등에 분포한다.
병어는 여름철의 고급 생선이다. 주로 굽거나 찜으로 조리해 먹는다. 특히 뼈가 부드러워 뼈를 가리지 않고 먹을 수 있고, 회로도 즐긴다. 회는 활어보다는 선어를 주로 이용하는데, 쉬 상하지 않는 특성 때문. 병어를 잡은 날은 병어회를 맛볼 수 있었다. 요리사가 두세 마리 가져다가 반찬으로 찜도 하고 회를 만들어 주었던 것.
우리가 잡는 고기 중에는 주어종은 아니지만 장어도 있다. 바닷장어와 아나고가 더러 잡힌 것. 장어류는 뱀장어를 비롯해 바닷장어·붕장어·먹장어 등 비슷한 게 많다. 나는 처음 이들 장어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했다.
뱀장어는 민물에서 자라고, 알은 바다에 낳는다. 바다에서 나는 장어류 가운데 뱀장어와 가장 닮은 것이 바닷장어. 음식점에서 장어구이로 대접받는 어종이다. 바닷장어 외에 흔히 ‘꼼장어’라고 부르는 먹장어Hagfish와 ‘아나고’라고 불리는 붕장어가 있다.
‘꼼장어’는 포장마차 안주의 대명사로 서민들이 즐기는 생선이다. 먹장어는 턱이 없고 입이 흡반 모양으로 생긴 원구류에 속하는 원시 어류로, 뱀장어와는 아주 다른 종류이다. 먹장어 껍질Eel skin은 지갑, 손가방 등을 만드는 재료로 쓰인다. Eel skin 제품은 질기고 부드러워 수출 상품으로 인기가 높다. 껍질이 벗겨진 채 꼼지락거리는 먹장어를 보면 흉물스럽기도 하지만 이로 인해 스태미나stamina 식食으로 각광받고 있다.
붕장어Conger eel는 회로 인기가 높고, 구워 먹어도 맛이 좋다. 역시 스태미나 보양식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주로 연안의 사니질 속에서 산다. 한반도 주변 해역의 붕장어는 가을에 알을 낳으러 제주도 남방으로 회유한다. 부화한 버들잎붕장어는 봄에 연안에 도달하여 붕장어로 변태한다. 새끼붕장어는 백색 반투명체로서, 모양이 버들잎 같아 ‘버들잎붕장어’라는 이름이 생겼다.
바닷장어는 팔뚝 크기만 한 것이 더러 잡혔다. 장어는 큰 것을 제외하곤 대부분 반찬으로 쓰였다. 가끔 먹어보는 장어구이는 별미였다. 요리사는 장어의 배를 갈라 말린 뒤 찜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