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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쓰레기는 다시 인간에게로

<에세이> 늙은 어부의 노래

by sunb

나는 원칙적으론 배를 타지 못할 나이였다. 그럼에도 가장 졸병이었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일을 했고, 식탁에서는 맨 끝자리에 앉아 밥을 먹었다. 그리고 구역질 나는 담배 재떨이와 쓰레기통을 비우는 등 청소를 했다.

나는 본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그래서 담배 연기를 싫어한다. 내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해서 남이 담배 피우는 것을 타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담배를 피운 뒤 재를 아무 데나 털고, 꽁초를 아무 곳이나 버리는 것을 혐오한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의 주변은 늘 지저분해 싫었고, 그들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냄새가 역겨웠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의 속성은 대개 꽁초를 길거리 등 아무 곳에나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틈바구니 같은 곳에 쑤셔 박는다는 것. 특히 길거리 하수구는 그들이 가장 선호하는 꽁초 버리기 명소(?)이다.

이처럼 담배꽁초를 아무 데나 버리는 사람들을 보면 “도대체 왜 저럴까.” 하고 경멸했다. 너무나도 자기 편의대로 사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정말 뿔이 난다. 그런 내가 아들뻘 되는 선원들의 담배 재떨이를 비우게 될 줄이야.

그들이 쓰는 재떨이는 정말로 지저분했다. 조그마한 깡통을 재떨이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묵은 재가 바닥에 누룽지처럼 붙어있다. 나는 그 재떨이를 비우면서 구역질을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아무리 담배가 맛(?)이 있은들, 이런 곳에 재를 털면서 무슨 맛이 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재떨이를 비우면서 물로 씻어줄까 하다가 작파했다. 배에선 물도 귀하거니와 워낙에 더러워서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실에 있는 쓰레기통도 내가 늘 비운다. 쓰레기통 역시 20ℓ들이 빈 깡통이다. 처음, 나는 쓰레기를 어디에다 비울지 망설였다. 쓰레기를 담아두는 무슨 자루 같은 게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갑판장에게 물었다.

“쓰레기를 어디에 버려야 합니까?”

“바다에다 버리소.” 돌아온 말은 너무도 명쾌했다.

“예?”

나는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갑판장은 말을 내던지고 ‘휙’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요리사가 식당에서 쓰는 쓰레기통을 들고 나온다. 내가 쓰레기통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사이, 그는 유유히 뱃전 너머 바다에 쓰레기를 부어버린다. 생각다 못해 나도 그가 하는 대로 바다에 쓰레기를 부었다. 그리고 고개를 길게 빼 뱃전 너머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다에는 비닐류, 담뱃갑, 휴지, 커피믹스 포장지 등 온갖 쓰레기가 넘실대는 파도를 타고 둥둥 떠가고 있었다.


그로부터, 선실 청소를 하고 쓰레기통을 비울 때면 어김없이 바다에 버리곤 했다. 한두 번 버리고 나니 내게도 이골이 났다. 그저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모든 쓰레기는 바다에 버렸다. 그처럼 속 편한 일도 없었다.

‘내 주변만 깨끗하면 그뿐. 바다가 오염되든, 죽어가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깟 쓰레기 몇 통 버린들 저 드넓은 바다에 무슨 영향이나 있을라고….’

선원들은 모두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무심코 바다에 버린 쓰레기는 어김없이 인간에게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듯했다.

그물을 올릴 때 가장 애를 먹는 게 이 쓰레기. 그물에는 물론 벼리와 와이어로프에 까지 감겨 올라오는 쓰레기를 떼어내는 일은 정말 고역이다. 그물에 걸려 올라오는 쓰레기 중 비중을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게 폐그물. 또 통발과 채낚이 낚싯줄도 매번 그물에 걸려 올라왔다.

계속해서 롤러에 감기고 있는 벼리와 그물에서 이들 쓰레기를 떼어내려면 정말 잽싸게 움직여야 한다. 갑판 여기저기엔 칼이 비치되어 있었고, 손으로 떼어낼 수 없을 땐 이 칼로 잘라내야만 한다. 그러다 안 되면 롤러를 돌리는 모터를 정지시키고 떼어내야 한다.

그물에 걸려 올라온 쓰레기 가운데는 자동차 범퍼라거나 공사장에서 사용된 듯한 양철 가드펜스guard fence 같은 것도 상당수 있다. 모두 인간들이 버린 것이다. 특히 폐그물과 통발, 낚싯줄 등은 선원들이 버렸을 것이다. 선원들에 의해 버려진 쓰레기가 어김없이 선원들에게로 되돌아오고 있는 것.

나는 이들 쓰레기를 떼어내 갑판 한곳에 모아두었다. 처리 방법을 몰랐기 때문. 이들 쓰레기를 역시 자루 같은 것에 담아서 입항할 때, 뭍으로 가져가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도 순진한 생각.

내가 쓰레기를 모아둔 것을 본 선임이 고함을 지르면서 바다에 버리라고 했다. 그들은 쓰레기를 떼어내는 족족 바다에 던져버리고 있었다. 나도 결국 그물에서 떼어낸 쓰레기를 바다에 던져 넣었다. 바다는 그것을 가져가는 듯하지만 언젠가 다시 인간에게로 되돌려 보내겠지…. 누군가 이들 해역에서 어로작업을 하는 선원들은 또 저 쓰레기 때문에 곤욕을 치러야만 할 터.

그 이후, 나는 또 타성이 생겼다. 모든 쓰레기는 바다에 버렸다. 그것을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를 본들, 누가 이를 탓하겠는가. 내게 불필요한 것을 바다에 버리는 것만큼 손쉬운 일은 없다. 그것만큼 배 안이 깨끗하고, 마음이 후련한 것도 없다. 그 좁은 배 안에서 쓰레기를 들고 전전긍긍하는 꼴이라니….

그러나 내 마음이 결코 편한 것은 아니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죄책감에 늘 사로잡혀 있었다. 나로선 어찌해 볼 도리가 없으니까, 고참들이 하라는 대로 해야만 하니까, 그래서 쓰레기를 다시 바다에 집어넣으면서도 좋은 방안이 없을까를 궁리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선원들의 의식이 바뀌지 않고선 해결책이 없을 것 같다. 이들 쓰레기를 모아서 자루(또는 쓰레기봉투)에 담아 뭍으로 가져오는 일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선박이 입항할 때 반드시 수거한 쓰레기를 가져다 당국에 반납토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쓰레기 한 자루(또는 무게에 따라)에 가다랑어 한 상자 값에 버금가는 돈을 준다면 어떨까. 돈이 아니면 그에 상응한 연료를 주어도 될 것이다. 모든 선박은 선상에서 발생한 쓰레기든, 해상에서 수거한 것이든 쓰레기를 가져오도록 의무화하는 규정을 두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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