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늙은 어부의 노래
밤 10시, 그물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롤링rolling이 심하다. 찰나에 선장이 확성기를 통해 그물을 올리라고 지시한다. 우리는 내리던 그물을 다시 걷어 올린다. 영문을 몰라 배 반장에게 물으니 태풍경보가 내려 피항避航을 해야 한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바람이 세차게 얼굴을 때렸다.
그물이 롤러에 다 감긴 뒤 갑판을 정리했다. 어상자 등이 롤링에 나뒹굴지 않도록 밧줄로 단단히 조여 맸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롤링까지 심해 작업을 하는데 애를 먹었다. 간신히 일을 마치고 몸을 씻었다. 그리고 선실로 들어가 침상에 누웠다.
배가 심하게 흔들린다
선체가 오르내리는 폭이 크다
파고가 높다는 것일 터
‘빨리 항구에 들어가야 하는데····’
침상에 누우면
세상의 모든 시름을 잠시 잊을 수 있다
겨우 몸 하나 눕힐 수 있는 작은 공간
허리를 펴고 앉아 있을 수조차 없는
비좁은 침상은
내가 자유를 구가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그 안에서 책도 보고,
일기도 쓸 수 있다
그리고 아이들을 생각할 수도 있고,
무상무념의 세계에 빠질 수도 있다
태풍이 온들,
그 태풍으로 인해 배가 어찌 되든
그것은 내 힘으로 결코 어찌할 수 없는 일
빨리 피항하고 싶다고 해서
빨리 갈 수도 없다
오직 배가 하는 대로,
그저 운명에 맡겨두는 것이 최선이다
오히려 롤링을 즐기면서,
안전한 항해가 되도록 부처님이든 예수님에게든
기도나 열심히 하면 그 뿐.
높은 파고를 타고 흔들리는 침상에서, 그래도 상당히 긴 시간 잠이 들었나 보다. 어느새 새벽 4시. 어디쯤 왔을까. 롤링이 그리 심하지 않은 것으로 봐 파도는 누그러진 것 같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태풍이 소멸된 모양이다. 아니면 태풍의 진로에서 벗어났든가. 벨소리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 갑판으로 나온다. 청명한 하늘 덕분인지, 멀리 산봉우리가 보인다. 간밤에 우리 배는 달리고 달려서 육지 가까이 다다른 것이다. 아마도 중국 연안 가까이 있는 듯했다.
우리는 항구로 들어가지 않고 먼바다 쪽으로 나아가면서 다시 그물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와이어로프가 꼬이면서 벼리 줄이 뒤엉킨 것이다. 결국 그물이 롤러에 끼여 찢어지고 말았다. 이 때문에 선장의 육두문자 욕설을 모든 선원들이 바가지로 먹었다. 이를 바로잡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2호선이 먼저 투망에 들어갔다.
우리는 그물을 바로잡아 놓고 나서 냉동고 작업을 했다. 밴딩을 하고, 저장고 정리를 한 것. 그리고 점심을 먹고 나서 투망을 했다. 이때쯤, 다시 망망대해였다. 남태평양인지, 인도양 인근인지 알 수는 없다.
나는 이날도 무거운 어상자를 잘 다루지 못해 기관사 등 간부들보다 일을 덜했다. 아니, 언제나처럼 일의 전체 양은 많이 했다. 하지만 에스컬레이터처럼 움직여야 할 상황에서 한 파트를 감당하지 못해 그 임무를 기관사가 대신하곤 했다.
그러니 그들의 불만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들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그들에게 밉보이지 않으려고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갑판을 정리하고 커피를 타 먹으려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때 내 귀에 박히는 한 마디.
“돈 까먹으러 왔지 뭐.”
분명 나를 두고 한 말이다. 식탁에는 갑판장과 기관사, 요리사 등이 앉아 소주를 마시고 있다. “돈 까먹으러 왔지”라고 말한 사람은 기관사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내가 나타나자 입을 꾹 다문다. 나는 못 들은 척하고 ‘코리아노’ 믹스 커피를 한 개 꺼내 종이컵에 쏟았다. 그리고 뜨거운 물을 부어 커피 포장지로 휘저으면서 갑판으로 나왔다.
식당에는 늘 화덕에 뜨거운 물이 올려져 있다. 바닷물을 정수한 생수를 그냥은 먹지 못하고 끓여 먹어야 했다. 보리차나 둥굴레 차를 넣어 끓인 물을 식혀서 냉장고에 넣어두고도 마신다.
내리쬐는 햇살을 받으며 갑판에 퍼질러 앉아 ‘코리아노’ 커피를 홀짝홀짝 마신다. 선상에서 마시는 커피도 소주만큼 달다. ‘코리아노’는 내가 지은 믹스 커피 이름이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믹스 커피는 세계인의 입을 사로잡고 있다. 그리하여 ‘카푸치노’(이탈리아), ‘아메리카노’(미국)처럼 믹스 커피를 ‘코리아노Koreano’라고 부른 것이다. 어미 ~no는 이탈리아어로 ‘~처럼’이라는 뜻이다.
각설하고 “돈 까먹으러 왔지 뭐.”라는 말이 가슴에 대못처럼 박힌다. 이 말의 뜻은 일을 제대로 하지는 못하지만, 나중에 실적급은 자기들과 비슷하게 받게 돼 있어 결국은 자기들 돈을 내가 가져가는 것으로 보고 한 말이다.
‘그럴 만도 하겠지. 내가 할 일을 자기가 해야 하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그렇잖아도 그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아 미안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재떨이도 비워주고, 물심부름까지 해주면서 비위를 맞추려 애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