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7. 오~ 슬픈 여수 밤바다

<에세이> 늙은 어부의 노래

by sunb

파고가 높다. 파도를 타고 배는 밤새 달린다. 오전 일찍 여수항에 입항했다. KY호는 선적이 삼천포였다. 하지만 내가 여수항에서 이 배를 타고 바다로 갔듯, 여수항에 다시 입항한 것은 이곳에 어시장이 발달해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여기서 경매를 통해 고기를 판매하는 것이다.

KY○8호도 우리 배 옆에 나란히 정박했다. 물양장에 접안 후, 선상에서 간단히 식사를 했다. 그리고 하역준비를 했다. 배 어창 입구에서부터 물양장까지 이동식 컨베이어가 설치되었다.

어창에 세 명이 들어가 어상자를 어창 입구까지 날라야 한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어창 입구 밑에서 상자를 들어 갑판 위로 올려주면, 갑판에서 다른 사람이 그것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그 상자를 넘겨받아 컨베이어 위에 올려 자동으로 물양장까지 가도록 하는 것이다. 이 일은 전적으로 갑판원이 하게 돼 있었다. 그리고 물양장에서의 어상자 운반과 하적荷積은 여수항 조합 사람들이 맡아 한다.

나는 갑판에서 고기 상자를 컨베이어에 올려놓는 임무를 맡았다. 어느 파트를 맡든 컨베이어벨트가 계속해서 돌아가는 것처럼 잠시도 쉴 틈이 없이 기계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하면서 한눈팔 짬도 없다.

나는 냉동고에서 올려주는 고기 상자를 들어 컨베이어로 옮기다가 떨어뜨리는 등 실수를 연발했다. 가슴이 결린 데다, 꽁꽁 얼어붙은 어상자가 그렇게나 무거울 수 없었던 것.

옆에서 이를 지켜본 선장이 기관사에게 내가 하는 일을 대신하라고 지시했다. 본디 기관사는 하역작업에는 열외였는지, 그는 컨베이어벨트 옆에 서 있기만 했다. 고기 상자가 다른 데 걸리거나 바닥에 떨어지지 않고 물양장으로 잘 이동할 수 있도록 돕는 정도였다.

기관사는 선장의 지시에 차마 거부하지는 못하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여 내가 하는 일을 넘겨받았다. 나는 그가 하던 일을 대신했다. 하역작업을 하는 내내 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마치 가시방석에라도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그들은 새참으로 뭍에서 가져온 막걸리를 마시면서도 내게 한잔 먹어보라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다. 그들이 막걸리를 마시는 것을 곁눈으로 보면서, 나는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 마셔봤으면…’ 하고 소원했다.

하역작업은 낮 12시 30분께 끝났다. 작업을 마치고, 나를 바라보는 기관사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았다.

“에이, c8~ 더러워서 못해 먹겠네!”

그는 나 들으라는 듯 험한 말을 내뱉고는 식당으로 휑하니 들어가 버린다. 그런 그를 보면서 나는 몸 둘 바를 몰랐다. 눈칫밥을 먹듯, 배에서 점심을 먹고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선장이 “하룻밤 새고, 내일 오전 10시께 다시 출항할 것”이라면서 “시내에 나갔다 시간에 맞춰 와도 좋다.”고 했다.

그때, 2호선 KY○8호에 타고 있던 이 군이 짐 가방을 들고 우리 배로 건너왔다. 한눈에 봐도 하선하는 품새이다.

나는 그에게 “집에 가느냐.”고 물었다.

이 군은 “힘들어 더이상 못하겠다.”면서 “배에서 내리기로 했다.”고 대답했다.

그는 원체 체격이 약골이었다. 처음부터 난 그가 잘 버텨낼까 걱정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배기지 못하고 하선하고 말았다.

이 군도 얼마나 부대꼈을까. 육신이 고된 것도 그렇거니와 마음고생이 심했을 터.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고 고참들의 구박이 오죽했겠나 싶으니, 마치 나를 보는 듯했다. 그가 홀연히 물양장을 지나 떠나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마음이 착잡했다.

나도 ‘이번에 아예 하선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라도 참고 버텨야 한다고 다짐했던 나.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지옥에라도 가겠다는 결심으로 배를 타지 않았던가. 적어도 한 달 만이라도 버텨야 한다는 오기가 나를 붙들어 맸다.

나는 배 반장에게 시내에 나갔다 오겠다고 말하고, 줄지어 정박해 있는 배들을 건너뛰어 물양장으로 나왔다. 딱히 갈 곳도 없었지만 배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너무도 쓸쓸할 것 같아서였다. 특히 손가락 상처를 치료할 약과 가슴에 붙일 파스를 사야 했다.

태풍 영향인지 비가 흩뿌렸다. 마침 집에서 떠나올 때 가져왔던 우산이 있어 다행이었다. 여수 시내 땅을 밟아 본 건 난생처음이었다. 물양장 일대는 수많은 수산회사와 선박부품 가게가 줄지어 있다. 그리고, 해산물 시장이 길게 뻗쳐 있다. 비가 와선지 시장은 조용했다. 시장통을 빠져 큰길로 나왔다. 이따금 시내버스와 택시 등이 지나갈 뿐, 거리는 한산하다.

우산을 받쳤지만 비바람이 몰아쳐 아랫도리가 흠뻑 젖는다.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것은 목욕. 우산을 비껴들고 거리의 건물들을 훑어본다. 멀리서 목욕탕 굴뚝이 눈에 들어온다. 비바람을 헤치고 한참을 걸어가 목욕탕으로 들어간다.

옷을 벗어 젖은 바지를 옷장 시렁에 걸어둔다. 내의까지 벗고 내 몸뚱이를 훑어보니 그저 처량하다. 손가락엔 상처투성이고, 팔다리 여기저기엔 시퍼런 멍이 들어있다. 또 오른쪽 엄지발가락 발톱은 시커멓게 변해 있다. 아무래도 발톱은 빠질 것 같다.

탕에 들어가 몸을 담그니 손가락의 상처가 아리긴 해도 온몸이 시원하다. 탕 언저리에 머리를 누이고 눈을 살며시 감는다. 이 순간만큼은 세상만사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선상에서 겪었던 노역의 고통이나, 선임들로부터 받은 수모 따윈 모조리 잊어버리는 것이다.

따끈한 탕의 온기가 나를 노곤하게 만든다. 한참 동안 모처럼의 여유를 만끽한다. 한증실에 들어가 땀을 빼고, 냉온탕을 몇 차례 드나들다 욕실을 나왔다.

몸을 닦고, 잠시 소파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또 아이들 생각을 한다. 휴대폰을 꺼내 전화라도 해줄까 하다가, 그만 둔다. 전화를 한다면 둘째 아이뿐, 막내는 이즈음 캐나다에 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막내가 걱정된다.

막내는 P공대 학부를 거쳐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었다. 아버지가 학비를 대주어 대학원에 다니는 건 아니다. 막내가 대학에서부터 대학원까지 다니면서 공부를 하고 있었지만, 아버지로서 아무것도 해준 게 없다. 그는 장학금을 받으면서, 전적으로 제힘으로 학교에 다니고 있다.

삼형제 중 막내였던 그는 아버지의 이런 날이 올 것을 예견했는지도 모른다. 두 형을 공부시키느라 쩔쩔매는 아버지를 보면서, ‘아버지가 과연 나까지 뒷바라지를 해 줄까’ 하는 의문을 가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비교적 장학제도가 잘 되어있는 P공대 를 택했다. 자신의 성격이나 적성이 이공계에 썩 맞는 것도 아니면서.

막내의 선택은 나에게 부담을 크게 덜어주었다. 그리고 형들보다 공부를 더 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아이는 학교를 그만두고 아버지를 도울 수 있는 길을 찾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피력했다. 대학원을 나오지 않아도 취직할 곳이 많이 있다는 거였다. 하지만 나는 공부를 계속하라고 했다. 석사과정을 마치는 것과 그러지 않은 것은 많은 차이가 있다고 말해주었다. 공부하는데 아버지가 학비를 대주어야 한다면 모를까, 스스로 공부를 할 수 있으므로 힘이 들어도 꼭 석사학위 취득을 하라고 당부했다. 내친김에 박사과정까지 마치라고 했지만, 그것은 오직 내 욕심일 뿐.

막내는 내가 배를 타기 전, 캐나다로 출장을 간다고 말했다. 학술발표회가 있는데, 학교 대표로 참석하게 되었다는 것. 2주일 일정이라고 했다. 나는 여비를 마련해 줄 형편이 못 돼 걱정했다. 아이는 출장비가 나오기 때문에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내가 승선한 뒤 며칠 후 캐나다로 갔을 것이다.

keyword
이전 17화16. ‘돈 까먹으러 왔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