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늙은 어부의 노래
그렇게 또 하룻밤을 보내고 새날을 맞는다. 그런데 다시 바람이 이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태풍이 상당히 센 것이 오고 있다고 했다. 이에 따라 우리는 서둘러 그물을 올렸다. 그리고 선별 작업을 하는 동안 배는 동 북진을 계속했다. 배는 여느 때와 달리 속력을 내고 있었다. 이번엔 모항인 삼천포 항으로 간다고 했다.
모든 작업을 마치고, 식사를 한 뒤 휴식에 들어갔다. 이제 삼천포항에 들어가 고기 상자를 하역할 때까지 편히 쉬면 되는 것이다. 몸을 씻고 막 선실로 들어온 나를 기관사가 불러 앉힌다. 나는 침상으로 들어가려다 말고 선실 바닥에 그와 마주 앉았다.
“어찌 할라요?”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는 “어찌하겠냐.”는 말뜻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러자 그가 말을 이었다.
“오해는 하지 마이소. 다른 사람들 모두의 생각이 그런데요, 아저씨는 아무래도 뱃일을 하기엔 무리인 것 같습니다.”
그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라고 전제를 달았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그의 생각이라는 것을 난 알고 있다. 그래서 대답했다.
“이번에 귀항하면 하선하겠습니다. 몸도 안 좋고 해서····.”
나는 몸이 안 좋다는 핑계를 덧댔지만, 기관사의 노골적인 하선 종용에 의욕을 잃고 말았다. 기관사의 말 한마디에 하선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덧정이 없어졌다. 사실 갈비뼈에 이상이 생겼는지도 몰랐다. 병원에 가 진찰을 받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래서 어차피 일시적이나마 하선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여겼다.
내가 하선하겠다고 하자 기관사는 나를 위로하려는 듯 이런저런 말을 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선을 결심하고 나니 마음이 후련하다. 중도에 하선하는 것은 더 할 수 없는 불명예이다. 그리고 돈도 몇 푼 받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육체적, 심적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안도감이 나를 편안하게 했다.
이윽고 삼천포항에 도착해 하역을 끝냈다. 그리고 짐을 정리해 배낭을 메고 나오면서 선장을 만났다.
“선장님, 아무래도 하선해야겠습니다.”
“왜요, 누가 뭐라카든교?”
그는 대뜸 내가 자의로 하선하려는 것이 아님을 알아차린 눈치였다.
“아닙니다. 손가락 상처가 자꾸 덧나고, 가슴도 아파서 아무래도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아서….”
“그라믄, 병원에 가서 치료 받으시소. 회사 지정병원이 있으니까, 그리 가서 치료하면 됩니다. 이번에는 며칠 있다가 출항하니까네, 그동안 치료받으면 되겠네요.”
선장은 그러면서 지정병원 이름을 가르쳐주었다.
나는 “알겠습니다. 일단 치료부터 받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면서 치료받으려면 신분증이 필요하니, 주민등록증을 달라고 했다. 주민증은 승선할 때 선장에게 맡겨져 있었다.
선장이 조타실 서랍에 들어있던 주민증을 꺼내 건네준다. 나는 주민증을 받아 윗주머니에 넣은 뒤 배낭을 짊어지고 돌아선다. 그랬더니 선장이 내 배낭을 낚아채 빼앗는다. 내가 아주 하선할 것으로 안 그가 가방을 볼모로 붙잡아 두려는 거였다. 그와 승강이를 하다가 결국 배낭을 넘겨주고 말았다. 배낭을 조타실 안쪽에 집어넣은 뒤 선장은 내게 다시 말한다.
“아저씨요, 조금만 참아 보이소. 아저씨는 너무 부지런해서 그런데요, 차차 요령이 생기면 그렇게 힘들지 않게 일할 수 있을 겁니다. 그라고, 얼마 안 있으면 인도네시아에서 두 사람이 더 옵니다. 그러면 아저씨는 힘든 일 하지 않아도 될 테니, 그때까지 기다려 보시이소.”
선장은 나를 놓치기가 아까운지 한사코 붙잡아 두려고 한다. 나는 알겠다고 말하고는 총총히 배를 내려왔다. 선장은 내가 배낭을 놔둔지라 다시 올 것으로 믿고 있는 것 같았다.
자칫 배에 붙잡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해방감이 들었다. 선장이 가르쳐 준 병원을 찾아갔다. 일요일이었지만 병원장과 일부 의료진이 몇몇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었다.
차례를 기다렸다가 손가락을 치료받는다. 원장은 퉁퉁 부은 두 손가락을 칼로 찢어서는 고름을 짜내었다. 겉보기와는 달리 속이 많이 곪아 있었다. 이어 갈치 가시가 박힌 손가락도 칼로 째고, 핀셋으로 가시를 빼낸다. 이처럼 두 손가락 시술과 드레싱dressing을 한 뒤 가슴 X-레이를 찍었다. 이어 엉주(엉덩이 주사)를 맞고 나서 X-레이 필름을 봤다.
의사가 필름을 가리켜가며 설명한다.
“다행히 뼈에 금이 간 건 아니네요.” 하고 말한다.
의사의 말에 일단 안심이 됐다.
“손가락 치료(드레싱)를 받고 항생제 등 주사도 더 맞아야 하니, 내일 또 오세요.” 의사가 말을 덧 붙인다.
“예, 그리 하겠습니다.”
나는 의사에게 다짐을 주고 진료실을 나와 원무과 접수창구에서 처방전을 건네받았다. 산재 처리 때문인지 병원 치료비 등은 내지 않아도 되었다. 처방전을 들고 약국으로 갔다. 약사에게 처방전을 내밀었더니 외용약과 내복약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