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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늙은 어부의 노래

<에세이> 늙은 어부의 노래

by sunb

적어도 이번에 도전한 ‘어부 생활’은 분명히 패배자인 셈이다.

<노인과 바다>의 작가 헤밍웨이는 주인공 산티아고 노인의 입을 빌려 “아무렴, 인간은 패배하기 위해 창조된 게 아니다.”면서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다.”고 단언했다.

그렇다면, 나는 파괴된 인간인가?

파괴된 인간과 패배하지 않는 인간은 또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선상 생활이 지치고, 아이들이 보고 싶을 때마다 뱃전에 오도카니 기대어 망망대해를 비라다 보았다. 내가 타고 있는 배는 그야말로 일엽편주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위에 의지하고 있는 나는 한 점 티끌에 지나지 않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메모장에 휘갈겨 놓은 <늙은 어부의 노래> 가사를 흥얼거리며 스스로 위안을 받는다.


망망대해 한복판 일엽편주에

홀로 서있는 인생이여~

지금 내 가는 곳 어디인가

내 머물 곳 또한 어디메뇨

사위를 둘러보아도 내 갈 곳 없고요

천지 팔방 돌아보아도

내 머물 곳 아닐레라

너른 바다에 그물 내리어라

어야 디여~ 에헤라 디여~


그물에 걸린 것은 무엇이더뇨

죽은 갈치의 날 선 이빨이

인간의 살점을 뜯는구려~

아야~ 아야~ 아야야~

그래~ 그리~ 아파할지어다

인간이 바다에 버린 쓰레기도

인간에게로 되돌아 오지

돌고 돌아~ 되돌아가는 인생사~

어야 디여~ 에헤라 디여~


하늘과 바다는 하나이고요~

여기~ 하늘을 떠받치고 선

나는야~ 우주의 전사

아자자자~ 자~ 나아가 싸우자

그물을 빠져나가는 물처럼

그물에 잡히지 않는 바람처럼

물처럼~ 바람처럼, 그리 살리라~

어야 디여~ 에헤라 디여~ (이하 반복)

그래~ 그저~ 그리 살리라~


버스는 두 시간여 만에 낙동강을 넘어 고향 터미널에 도착했다. 집에서 지고 갔던 배낭을 메고 버스에서 내린다. 고향 땅을 밟으니 새삼 힘이 솟는다. 마침, 서쪽 하늘이 노을에 젖어 찬연히 빛나고 있다. ‘내 슬픈 귀가’를 위로라도 하는 듯.

나는 부상군의 몰골로 <늙은 어부의 노래> 가사를 흥얼거리며 전철역으로 간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을 걸어가 전철에 올라탄다. 그리고 퀴퀴한 습기와 곰팡이가 지키고 있는 집에 도착한다. 아무런 감동도 없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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