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늙은 어부의 노래
약국에서 나온 나는 곧바로 터미널로 가 귀향 버스를 타고 싶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없지만 배낭이 배에 있다. 그래서 하룻밤 자고 치료도 더 받은 뒤 배로 돌아가 배낭을 가져올 참이다.
이번에도 밤은 찜질방에서 보낸다. 그러나 뱃일을 그만두게 되었다는 안도감에서인지, 마음 편하게 밤을 보낼 수 있었다.
다음 날, 간단하게 아침 요기를 하고 선박을 찾아 갔다.
‘선장이 있으면 일이 어려워질 텐데…’
걱정하면서 조심스레 배에 오른다. 배에는 중국인 선원들만 갑판에서 자질구레한 작업을 하고 있다. 다행히도 선장은 없다. 조타실에 들어가 숨겨져 있던 배낭을 찾아 걸머지고 잽싸게 배를 빠져나온다. 혹시라도 선장에게 잡히면 난감하겠기 때문이다.
중국 선원들은 실적급이 아니고, 월급제여서 귀항을 하더라도 자유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그동안에 무슨 일이든 해야만 하는 것. 마음씨 좋은 배 반장에게 인사라도 하려 했으나, 그는 시내에 나가고 없었다.
배 반장은 집이 인천이라고 했다. 그에게도 아내와 아들이 있었다. IMF 때, 잘 다니던 회사에서 해직되어 트럭 운전을 하다가 인명사고를 내 감옥살이를 했단다.
형을 마치고 나와 보니 아내는 초등학생 아들을 할머니에게 맡겨두고 종적을 감추었다고 했다. 그는 큰 상처를 받고, 좌절했단다. 그러나 아들을 생각해 이를 악물고 배를 타기 시작했다고 했다. 어린 아들을 두고 온 아버지의 그 마음 또한 오죽하랴.
나는 재빨리 선창을 빠져나왔다. 태풍이 심했는지 거리엔 여기저기 가로수가 부러지고, 넘어져 있다. 간판들도 찌그러진 게 많다. 비는 그쳤지만, 아직도 바람이 세게 일고 있다.
병원으로 가 손가락 상처 드레싱을 받고 엉주도 맞았다. 갈치 가시를 빼낸 손가락의 통증은 가신 듯했다. 의사에게 부산으로 간다고 말했더니 3일분 약 처방전을 준다. 약국에 처방전을 내민 뒤 약값을 치르고 약을 받아 배낭에 넣었다. 그리고 약국을 나와 곧바로 시외버스 터미널로 갔다. 차표를 사 잠시 기다린 뒤 고향행 버스에 올랐다.
버스 등받이에 상체를 비스듬히 기대어 앉는다. 잠시 후, 버스가 서서히 움직인다. 차창 밖을 보고 있던 머리를 안으로 돌려 받침대에 누이고, 눈을 지그시 감는다. 그리고 상념에 잠긴다. 오만 망상妄想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돈을 벌어보려고, 나이까지 속여가면서 기어이 배를 탔다. 그러나 나이를 속일 수는 있어도 세월을 속일 수는 없었다. 세월의 정직함이라니···.
‘바다도 나를 버리는가!’
바다마저 나를 버렸다고 생각하면 너무도 서글프다. 생각해 보면, 나를 버린 것은 바다가 아니라 세월이었다.
사실 나를 버린 건 세월도 아니다. 많은 나이로 인해 바다에 적응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뱃일에 적응하지 못한 것은 더욱 아니다. 단지 뱃사람들의 조그마한 이기심이 나를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
여하튼 한 달 가까이, 있는 힘을 다해 배를 탔다. 그리고 열심히 어로작업을 했다. 그런데 지금 내 손에 떨어진 것은 무엇인가?
소설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산티아고 노인처럼 뼈만 앙상하게 남은 청새치일까? 아니다. 내 손에 떨어진 것은 청새치 뼈만도 못한 약봉지인 것을····.
월급이라는 것도 배를 타기 전 받은 선상 용품 비용을 제하고 나면 몇 푼이나마 받을 수 있으려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손가락 등의 치료비가 산재 적용을 받는다는 점. 부산에도 KY회사와 계약을 맺은 산재병원이 있었다. 우선 치료부터 받으며, 집에서 요양할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 다행이라 여겼다.
통원 치료가 끝나고 산재 보상금 청구를 신청하면 된다고 했다. 만약 이대로라면 산재연금 몇 푼 받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을 것 같다. 정말이지 ‘공수래空手來’인 것이다.
지금 나는 완전히 빈손 들고 집으로 가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또 패배자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