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늙은 어부의 노래
벌써 몇 번째인가. 이젠 투망이나 양망의 횟수 같은 건 관심 밖이다. 그것은 오로지 일상사인 것. 우리가 타고 있는 배는 그물을 내렸다가 올리고 다시 내려두면서 사위가 온통 바다뿐인 동지나해를 유유히 지나치고 있다.
우리는 다시 벨 소리에 맞춰 일제히 갑판 양쪽에 도열한다. 그리고 각자 맡은 자리에서 양망 작업을 수행한다. 이번에 잡힌 고기 역시 조기가 주 어종이다. 갈치와 오징어, 붉은 새우 등도 많이 잡혔다. 갈치는 손바닥 넓이만큼 큰 것에서부터 상품 가치가 없는 실갈치까지 다양하다. 짙은 회색의 갈치와 은색의 갈치가 뒤섞여 있다.
갈치 역시 조기 못지않게 우리 국민이 선호하는 생선. 그만큼 맛이 있기 때문이다. 주로 구이나 조림으로 요리를 해 먹고, 제주도 같은 지역에서는 회가 인기를 끌기도 한다. 갈치의 성어는 대개 몸길이가 1.5m 정도이다. 이쯤은 돼야 상품 가치가 있다. 대륙붕의 모래진흙 바닥에 서식하며, 야간에 활동하고 산란기는 봄이다. 온대와 아열대 지역에 널리 분포한다. 야행성이라 그런지 주로 야간 어로 때 갈치가 많이 올라왔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갈치의 헤엄치는 방법이 특이하다고 한다.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머리를 위로하여 곧게 선 상태로 헤엄을 친다는 것. 그리고 가끔 머리를 위아래로 움직여 W자를 그리며 나아간다고 한다. 크기가 작은 경우 동물플랑크톤을 먹고 몸길이가 25cm 이상이면 주로 갑각류, 오징어류 등 작은 어류를 잡아먹는다. 큰 갈치는 자기들끼리 서로 잡아먹기도 한단다.
산란기는 8∼9월이고, 우리나라의 경우 2∼3월께 제주도 서쪽 해역에서 월동하다가 4월께 북쪽으로 이동하여 연안에서 산란한다. 일부는 더 북상하여 압록강 하구까지 이르며, 9월께 수온이 내려가면 남쪽으로 이동하여 제주도 서방 해역에서 월동한다.
갈치는 주로 저층 트롤이나 낚시에 의하여 잡는다. 그런데 우리가 하는 저인망 어로에서도 대량으로 잡힌다. 살갗에 있는 은백색의 구아닌 색소는 인조진주의 광택원료로 많이 이용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색소는 소화가 잘 안 되고, 영양 가치도 없으므로 깨끗이 제거하고 요리를 하는 것이 좋단다.
갈치의 입은 매우 크다. 아랫부분이 앞쪽으로 돌출해 있고, 양턱 앞부분의 이빨 끝은 갈고리 모양이다. 갑판에 오른 갈치는 성질이 급해서인지 대부분 죽어있다. 죽은 뒤 대개 입을 벌리고 있는 데다 매우 날카로워 선별하다 손을 베이기도 한다. 지느러미의 가시도 매우 강해 손가락에 박히면 잘 빠지지 않는다.
나는 선별 작업을 하면서 멋모르고 손으로 고기 더미를 파헤치다 갈치 이빨에 손가락이 베이고 말았다. 오른손 가운뎃손가락이다. 선별은 면장갑을 끼고 한다. 대개 장갑 두 개를 겹으로 낀다. 그러나 나는 그런 요령을 알지 못했다.
따끔해 재빨리 고기 더미에서 손을 빼어보니 손가락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갈치의 이빨이 면장갑을 자르고 살갗을 1cm 정도 벤 것이다. 나는 식당으로 가 화장지를 뜯어 지혈을 시켜야 했다. 다행히도 상처가 그리 깊은 게 아니어서 지혈은 금방 되었다. 장갑을 다시 끼고 일을 시작한다. 그제야 배 반장이 장갑을 두 장 포개서 끼라고 일러준다.
또 왼손 중지 손톱 아랫부분에 갈치 가시가 박혔는지 통증이 왔다. 갈치 등지느러미는 가시로 돼 있다. 가시가 가는 데다, 색깔이 하얘선지 피부에 박혔으나 눈으로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가시를 빼내야만 하는데 빼낼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참고 버틴다.
나는 손가락이 베인 뒤 갈치를 상자에 주워 담으면서 생각했다. ‘갈치의 분노’라고. ‘갈치는 죽어서도 억울함을 앙갚음하려고 인간을 공격하는구나’ 생각하니 섬뜩했다. 동그란 눈을 부릅뜨고 있는 갈치가 무섭기까지 했다. 그로부터 나는 갈치를 여간 두려워했다.
‘갈치의 분노’에 맞닥뜨리면서 소설 <노인과 바다>가 떠올랐다.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는 미국 작가 헤밍웨이가 1952년에 발표한 마지막 소설(중편)로, 1953년 퓰리처상을 받는 등 그의 출세작이라 할 수 있다. <노인과 바다>에는 갈치가 아니라 청새치가 등장한다. 소설 속 주인공인 늙은 어부 산티아고가 바다의 폭군 청새치를 잡고 돌아오는 여정을 그린 것이다.
조그만 배를 타고 물고기를 잡아 생을 지탱하는 산티아고는 84일 동안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다. 그러다 85일째 마침내 청새치 한 마리를 잡는다. 그러나 무려 5.5m에 달하는 거대한 청새치는 그물에 걸린 채 산티아고 노인이 탄 돛단배를 끌고 가는 형국이 연출된다.
헤밍웨이는 작품 속에서 “고기야, 네놈이 지금 나를 죽이고 있구나. 하지만 네게도 그럴 권리는 있지. 한데 이 형제야, 난 지금껏 너보다 크고, 너보다 아름답고, 또 너보다 침착하고 고결한 놈은 보지 못했구나. 자, 그럼 이리 와서 나를 죽여보려무나. 누가 누구를 죽이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하고 노인 산티아고의 입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틀 동안 자신의 몸으로 그물을 지탱한 채 청새치에게 끌려가던 노인. 이때, 청새치도 지쳤는지 노인에 이끌려 배 위로 날아 오른다.
헤밍웨이는 작품에서 “조금 전에 고기가 왜 뛰어올랐을까. 마치 자기가 얼마나 큰지, 그리고 풍채가 당당한지 과시라도 하려고 솟아오른 것 같아.” 하고 산티아고 노인의 독백으로 전한다. 그는 이어 노인 산티아고를 통해 “저 고기 놈이 되어보고 싶구나. 오직 내 의지, 내 지혜에 맞서 모든 걸 갖고 싸우고 있는 저놈 말이야.” 라고 하면서 인간과 청새치의 동질성을 갈파한다.
청새치는 황새치와 함께 바다의 최상위 포식자. 그리고 지구별의 영장류인 인간 역시 최상위 포식자이다. 바로 육지 최상위 포식자와 바다 최상위 포식자 간의 싸움인 셈이다.
산티아고는 사투 끝에 작살로 청새치를 찔러 잡는다. 그러나 이번에는 청새치의 피 냄새를 맡고 쫓아온 상어 떼와 처절한 싸움을 벌인다. 지칠 대로 지친 산티아고는 결국 상어 떼 처치에도 성공한다. 그 과정에서 청새치 살점은 이들 상어에게 다 뜯기고 만다. 그리고 항구로 돌아온 노인 곁에는 청새치의 머리와 앙상한 뼈만 남아 있다.
산티아고 노인이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모엇일까?
갈치는 비록 청새치에 비하면 미미한 존재이다. 하지만, 그 나름으로 죽어서까지 인간에게 경고를 보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은 갈치의 공격을 받아 손가락에 난 상처는 좀처럼 아물지 않는다. 베인 곳도 문제지만 가시가 박힌 손가락은 속에서 곪은 것인지 진물이 났다. 손가락을 건조하게 하고, 소독이라도 했으면 덧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매일 물을 묻혀야 하고, 내겐 소독약 같은 것도 없었다. 조타실에 상비약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으나 선장에게 이야기하지는 못했다.
손가락 상처 등이 있을 경우 면장갑 안에 수술용 장갑과 같은 얇은 고무장갑을 끼고 작업을 하면 좋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그걸 구할 수는 없었다. 중국인 선원 조에게 그 고무장갑이 있는 것 같았으나 빌려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두 손가락에 통증을 심하게 느끼면서도 참았다. 입항이나 하면 모를까, 어떻게 치료할 방법이 없다. 통증을 참고 잠을 청했다. 요즘 MZ세대의 신조어인 ‘에겐남’에 해당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잠을 자려니 손가락 통증쯤은 피로에 묻혀버렸다.
흔들거리는 침상에 누워
속으로 ‘관세음보살~’을 염한다
그리고 간절히 기원한다
‘천수천안 관세음보살님이시여,
제게 힘을 주십시오
이 고통을 이겨낼 수 있게 도와주소서!’
그러는 동안 아이들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100일 휴가를 나왔을 때 보았던 맏이의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 최전방 부대에서 복무하고 있는 큰아이. 그는 휴전선 초병은 아니지만 바로 그 후방에서 교육과 훈련을 쉴 틈 없이 받고 있었다.
나는 서른이 다 돼 입대했었다. 가족 누구의 배웅 같은 것을 받지 못했다. 몸에 이상이 생겨 3년을 ‘무종’으로 대기하였고, 뒤늦게 대학에 가는 바람에 입영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 같았으면 방위병 또는 공익요원으로 빠질 수도 있었다.
큰아이는 스물일곱, 비교적 많은 나이다. 그는 법학과를 다니며 사법시험을 준비하다가 입대가 늦어졌다. 내가 경험한 바로, 군대는 나이가 들어서 갈수록 좋지 않다.
‘맏이가 이를 극복하고 군복무를 잘 마쳐야 할 터인데…’ 걱정하며,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원했다.
사랑하는 아들아,
군대는 대한민국 남자라면
어차피 통과해야 할 관문이란다
부디 건강하게,
아무 탈 없이 군복무를 마치고
다시 새롭게 네 꿈을 펼치려무나
다음에 아빠가 면회하러 갈게
그때까지 잘 견디어다오.
‘가능하면 졸병 때 면회를 가야지’ 하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에게 면회 한 번 가지 못하고 배를 타고 말았다. 배는 가끔씩 모항에 입항한다고 하지만, 언제 면회 갈 시간이나 있겠나 생각하니 회한이 덮쳐온다.
새벽 4시. 요란한 벨이 또 울려댄다. 양망 작업을 준비하라는 신호이다. 옷을 갈아입고 갑판으로 나온다. 동쪽 하늘이 어렴풋이 밝아오는 듯했다. 배에서는 동서남북을 분간하기 어렵다. 단지 해가 돋는 쪽이 동이요, 해가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방향이 서쪽이라는 것 말고는 알 수가 없다.
아직 태양은 깊은 물 속에 잠겨 있다. 사위는 칠흑 같은 어둠뿐. 선미의 스크루가 만들어내는 물보라가 하얀 거품을 내며 들끓고 있다.
태양은 바닷속을 빠져나온 듯한데, 검은 구름 뒤에 숨어 있다. 이날 따라 바람이 너무도 시원했다. 그리도 아리던 손가락 통증이 가신 듯하다. 관세음보살님 덕분이라 여겼다. 간절하게 보낸 기원을 들어주신 것이다. 다시 관세음보살을 염하며 사방을 둘러본다.
보이는 건 바다뿐. 하지만 선미에는 벌써 갈매기 때가 선회하고 있다. 갈매기는 참 영리하다. 그들은 언제나 우리가 그물을 올릴 때쯤이면 어디서 날아왔는지 배 뒤쪽 하늘에서 끼룩, 끼룩하며 맴돌았다.
갈매기는 배 뒤에서 손쉽게도 먹이 사냥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갈매기가 날고 있다는 것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육지가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아마도 중국 남해 연안이거나 타이완, 아니면 동남아시아 지역에 가까운 곳일 것으로 짐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