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늙은 어부의 노래
투망과 양망이 반복되는, 그야말로 단순 반복작업이 계속된다. 나는 양망과 투망이라는 주 업무 외에 때때로 갑판을 정리하거나, 선실을 청소하고 쓰레기통을 치운다. 또 널빤지로 어상자를 만들고, 부서진 상자를 보수하는 일을 도맡아 했다.
그러는 가운데 우리는 자꾸만 동지나해 깊숙이 들어가고 있다. 보이는 건 오직 하늘과 바다뿐. 가끔은 멀리서 컨테이너를 싣고 유유히 떠가는 배가 아이들 장난감처럼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낮과 밤이 따로 없는 동지나해에서 25시간을 살고 있다. 비가 아무리 퍼부어도 어로작업은 계속된다. ‘갑바’라고 부르는 비옷을 입고 일을 하는 것은 정말 고역이다. 비가 오지 않아도 양망 작업을 하고 나면 몸은 온통 물로 흠뻑 젖는다. 언제나 땀에 젖고 바닷물에 절어 산다.
그래서 작업할 때 입는 옷은 벗어서 그대로 갑판에 걸어두었다가 다시 입는다. 그리고 일이 끝나고 선실에서 쉬거나 식사를 할 때 입는 옷을 따로 준비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 늘 빨아서 말려 입을 여건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선상 생활의 요령을 터득했으며, 뱃일에 잘 적응해 갔다. 때론 드높은 파도로 심하게 흔들리는 배에서 불안감을 느끼면서….
이럴 땐 선실 침상에 처박혀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게 상책이다. 배멀미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보다 축복이다. 침상에 드러누워 있으면 ‘흔들흔들’ 흔들리는 그 자체가 좋았다. 요람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삐그덕~ 삐걱~’ 배가 삐걱거리는 소리, ‘처얼썩~ 철썩~’ 뱃전을 때리는 파도 소리도 음악처럼 들린다.
다소 귀에 거슬리는 것은 ‘통통 통통 통통 통통’ 쉴 새 없이 울려대는 기관의 엔진소리다. 하지만 눈을 감고 있어도 그것은 내가 배를 타고 망망대해 어딘가에 떠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통통거리는 소리조차 내가 살아있음을 알리는, 심장의 박동 소리인 양 정겹게 들린다.
잠시 눈을 붙였는가 싶었는데 요란한 벨소리가 또 울린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작업복으로 바꾸어 입고 갑판으로 나온다. 작업복은 늘 젖어있는 상태다.
하늘엔 은하가 길게 흐르고
눈썹 같은 하현달이 멀리
수평선 위에 쪽배처럼 떠 있다
파도는 비교적 잔잔하다
동지나해와 같은 대양에서는 파도가 아니라
‘너울’이라고 하는 편이 옳다
너울~ 너울~ 바다가 춤을 추는 것이다
바다가 추는 그 춤사위에 따라
우리도 춤을 추어야 한다
삶의 춤을…
인간, 그 누구도 결코 바다의 춤사위를
거스를 수는 없다
거대한 대양도 결국은 하늘의 뜻에 따라
너울춤을 춘다
대양 한가운데, 일엽편주에 의지한 우리는
오로지 하늘의 뜻에 따라야만 한다.
우리 배 옆구리에 KY○8호가 바짝 다가오고 있다
그들은 또 우리에게 밧줄을 던져 줄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끌어당기는 일부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물 벼리가 꼬이지 않고
롤러에 잘 감기기만 하면
일은 순조롭게 진행될 터
선장의 욕을 먹지도 않을 것이고….
집어망이 선미를 타고 갑판으로 올라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갑판 가운데 펜스를 설치하는 것이다. 배 한가운데 있는 어창 입구 쪽으로 고기가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만 한다. 철망으로 된 펜스 끝을 양쪽 뱃전에 장치되어 있는 U자형 홈에 끼워 넣는 일이다. 그래야 고기 선별을 용이하게 할 수 있다.
펜스는 양쪽에서 두 사람이 들었는데, 나는 그 펜스가 어찌나 무거운지 여간 애를 먹었다. 한 번은 펜스를 들고 홈에 끼워 넣으려다 미끄러져 넘어졌다. 그 바람에 입술이 터져 피가 났다. 마침내 피를 본 것이다. 치아가 상했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이는 탈이 없었다. 다른 선원들이 그런 나를 안타깝게 쳐다본다. ‘안됐다’ 하는 연민지심憐愍之心 보다는 ‘으이그~ 저 등신!’ 하는 표정들이 역력하다. 식당으로 가 휴지를 떼어 지혈한 뒤 물을 한 사발 마시고 다시 갑판으로 나왔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을 계속한다. 선별 작업이 거의 끝나가고 있을 무렵.
하늘이 희끄무레 밝아온다
잠시 허리를 펴고 일어나 바라다본다
아득히 수평선 너머
하늘이 점차 발갛게 물들고 있다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일출을 보게 되다니…
배를 탄 뒤 여러 날이 지났지만
해돋이를 보는 것은 처음이다
구름 한 점 없이,
시뻘건 태양의 나신裸身을
직접 목격할 수 있다니
어머니의 자궁 속 같은 어둠을 뚫고
머리를 내미는 태양의 나신
티끌 한 점 없는 선홍색 빛깔이여!
열세 살 소녀의 초경 혈이 저럴까…
일출의 장관을 즐기고 있을 여유는 없다. 저토록 탐스런 태양을 호주머니에 주워 담고 싶은 욕망은 접어두고, 다시 고기 선별 작업에 몰두한다. 잠시라도 게으름을 피우는 것을 다른 선원들에게 들키면 아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리를 펴는 시늉을 하면서 짬짬이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곁눈질 한다.
태양이 나신을 모두 드러내는 시간은 순식간이다. 태양이 물 밑에서 수평선 위로 전신을 내놓기까지는 눈으로 거리감을 느낄 수 있다. ‘슉 슉 슉’ 솟아오르는 태양의 움직임을, 게양대를 타고 올라가는 국기처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뒤로도 몇 차례 일출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태양의 나신을 보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태양도 알몸을 드러내기가 부끄러운지, 치마를 두르듯 늘 구름으로 가리고 있다. 구름의 종류에 따라 태양의 빛깔은 다르다. 흰 구름 속에서는 홍색으로, 비를 머금은 검은 구름 속에서는 검붉은 모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