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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래블러 May 07. 2023

돌탑 #22

Ep22.│순례길에서 만난 돌탑이 짊어진 소원의 무게


어린 시절 매년 여름방학이면

어김없이 가족과 함께 제주도 외할머니집에 갔다. 

협재해수욕장에서 1분 거리에 위치해 있던 외할머니집에서 지내는 동안

어린 시절의 나는 누나와 함께 튜브를 들고나가

일주일 내내 해수욕장의 일렁이는 파도를 한껏 즐겼다.

밤에는 외할머니집 옥상에 누워 엄마가 알려준 노래를 부르며

저 멀리 보이는 비양도의 등댓불이 반짝이는 순간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했다.


- "비양도 등댓불 반~짝 반~짝!"

엄마의 노랫소리에 맞추어 등댓불은 번쩍이며 자신의 위치를 보여준 뒤

이내 어둠으로 사라졌다 반짝이길 반복했다.


뿐만 아니라 초록의 싱그러움을 채우고 싶을 때는 무작정 등산을 가기도 했다.

시선이 머무는 곳곳에는 초록의 생기를 내뿜는 나무들이 서있었고

나뭇가지 위로 자리 잡고 있는 새들의 노랫소리를 듣고 있으면

그동안 쌓여있던 나쁜 감정은

들숨에 들어오는 상쾌한 공기에 몸을 싣고 날숨으로 빠져나갔다.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나는 자연과 친구처럼 허물없이 지내는 삶을 살았다.


그런 그곳에는 언제나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터줏대감이 있다.

바로 돌탑이다.


일상에서의 돌멩이는 매번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을 피해 갈 수 없었다.

그저 가만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인데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잘못걸려

이유없이 이리저리 발고 걷어 차이길 반복하다

이내 사방팔방으로 튕겨나간다. 

그런 일상을 살아가던 돌멩이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라도 나는 듯

사람들의 두 손 위에 고이 담아 소중해지는 순간이 바로 돌탑에 올려질 때이다.


저마다의 욕심 가득한 소원을 꾹꾹 눌러 담은 돌멩이

 또 다른 이의 소원을 담고 있는 돌멩이 위에 차근차근 포개어진다.

그렇게 사람들의 소원이 하늘에 닿을 수 있길 바라며

한없이 높이 올라간 돌탑은 그 누구도 쉽사리 걷어차지 못한다.

설령 그 높이가 낮다 해도 쉽게 그것을 무너뜨릴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돌탑을 바라보고 있으면 

해맑게 주위의 돌을 계속 집어 들어 쌓아 올리는 어린아이의 미소가 보이기도 하고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며 진심으로 빌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돌탑이 홀로 짊어지고 있는 어마어마한 소원의 무게가 보였다.

그 순간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원들이 모여 거대하게 쌓인 돌탑은

웅장하기보단 무겁고 버거워 보였다.


나의 욕심 때문에 누군가에게 부담을 준 적은 없었는지 생각했다.

단숨에 대답이 나올 리 없었겠지만 분명 있었을 것이다.

여행 초반 욕심 가득 옷을 챙겨 무거워진 배낭에

금방 지쳐 팜플로나에서 배낭을 정리했던 것처럼

욕심으로 나를 가득 채우기보다는 지금에 감사하며

덜어내고 검소해지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아침 일찍 출발하여 해가 뜨기 전 꼬불꼬불한 

산길을 지나 철의 십자가에 도착했다.

거대하게 세워진 철의 십자가 주위로

근처를 가득 메우고 있던 돌탑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도 각자의 소원을 담기 위한 괜찮은 돌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내 마음에 드는 돌 하나가 눈에 들어왔고 주워 들어 돌탑을 쌓으려는 순간 

나는 다시금 돌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을 수밖에 없었다. 

다시 한번 내 눈에 돌탑이 짊어지고 있는 소원의 무게가 보인 것이다.


그래서 오늘만큼은 돌탑에게 소원무게를 더하는 대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누군가의 사소한 소원부터 절벽 끝자락에서 간절하게 비는 절박한 사람들의 소원들까지

투덜대지 않고 자신의 무게를 묵묵히 더해가는 삶이 존경스럽다고. 

자신이 빌었던 소원이 현실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간절한 사람들에게

오늘을 살아갈 희망의 불씨를 심어주어 고맙다고.


그렇게 나의 마음에 따듯한 감사의 감정이 차오를 때쯤

어느새 하늘에도 찬란한 빛들이 천천히 차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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