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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래블러 Aug 27. 2023

아디오스, 산티아고 #32

Ep32.│산티아고에서의 마지막 날, 또 다른 시작을 기대하며



그동안 새벽부터 까미노를 걷는 일정에 익숙해져서였을까. 알람을 맞추지 않았음에도 아침 6시가 되기 전 나의 눈은 자연스레 떠지고 말았다.


비몽사몽 했던 정신은 금방 또렷해졌다. 평소와 다른 아침에 더 이상 걸을 까미노 길이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자 헛헛함마저 들기 시작했다. 분명 다시 잠에 들 수 없다는 것을 안 나는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대신 조용히 알베르게 앞 벤치에 앉아 아침의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한참을 앉아 있다 보니 어느새 잠에서 깬 동원이가 로비로 나왔다.

"좋은 아침! 오늘은 걸을 길이 없네?" 하며 애써 장난스런 아침 인사를 주고받은 우리는 알베르게에 있던 시리얼과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간단한 아침을 먹었다.


산티아고 대성당의 11시 미사가 시작되기 전 묵주와 다른 기념품을 사기 위해 성당 옆에 자리 잡은 성물방으로 향했다.


나는 까미노의 추억을 간직해 줄 수 있는 파란색의 묵주와 천사가 그려진 조그마한 펜던트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후 나보다 더 산티아고에 오고 싶어 했었던 엄마를 위해 나와 똑같은 디자인의 하얀색 묵주와 묵주팔찌를 샀다.



한아름 사들고 성물방에서 나와 미사 시간보다 조금 일찍 성당 안에 들어왔지만 그 큰 성당 안에 자리 잡고 있던 의자에는 이미 사람들이 빼곡하게 앉아있었다. 빠르게 눈동자를 굴려 앉을자리를 어렵게 찾은 뒤 우리는 간신히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아쉽게도 향로미사 시간이 아니어서 그런지 성당 천장에 매달린 큰 향로가 움직이는 것은 볼 수 없었지만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미사를 볼 수 있었다는 것에 의의를 두었다.


미사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나 아까 산 성물들을 가지고 성당 뒤편에 앉아계신 신부님에게로 향했다. 조용히 신부님께 다가가 성물에 축성을 부탁드리자 신부님은 흔쾌히 손은 얹고 축성을 해주시며 기도해 주셨다.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 뒤 뒤를 돌아 계단을 내려오자 며칠 전 만났던 독일 가족이 동원이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한 번 더 못 보고 헤어졌다면 너무나도 아쉬웠겠지만 다시 만난 기쁨에 그 누구보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함께 사진을 찍었다.


- "이거 명함이야. 혹시라도 독일에 놀러 오게 되면 나한테  연락해. 너희  명은 우리 가족의 게스트니까 독일에 오면  연락해야해!"


감동의 순간이었다. 국적도 나이도 다른 우리였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였다. '나 혼자만 이 가족에게 애정을 가졌던 게 아니었구나.' 까미노가 준 가장 큰 선물들이었다.



아쉬운 작별인사를 남긴 뒤 언젠간 또 만나자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순례자 증명서를 받기 위해 순례자 사무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순례자 증명서를 받기 위해 줄지어 있었다.


대기 순서를 기다리고 난 뒤 직원에게 그동안 찍어왔단 크레덴시알을 보여주며 증명서를 받을 수 있었다. 멋들어지게 스페인어로 써져 있던 증명서 위로 Dong Hyeok Kang이라는 이름이 새겨졌다. 발급해 준 직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동원이와 나는 웃으며 서로의 증명서를 바라보며 토닥였다.


- "이제 진짜 끝이네! 고생 많았다!"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 설치된 무대는 이제 곧 축제의 함성을 맞이할 준비를 끝내고 있었다. 출입을 통제하는 빨간 대기선 주위로 수많은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빨리 들어가기 위해 입장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 "여기 오늘 축제하나 본데, 우리도 들어가 볼 까?"

주위를 서성이다 축제에 입장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팜플로나 친구들을 만났다.

- "여기 오늘 축제 행사하는 거야?"

- "어! 오늘 가수들도 오고 축제해!"


한껏 들떠있던 라우라의 손목에는 입장권처럼 생긴 팔찌가 감겨 있었다.

- "그거 입장권이야? 어디서 사야 해?"

- "이거 우리는 다 같이 샀어. 근데 여기 스페인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어. 아마 전 세계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그 사람들을 다 받아들일 수 없어서 스페인 사람들만 볼 수 있는 것 같아."


청천벽력이었다. 방금까지 동원이와 팜플로나 친구들과 함께 저 안에서 신나게 소리 지르고 놀 상상을 하고 있었는데.. 그러나 아쉬워해봤자 바뀌는 것은 없었기에 우리는 또 다른 구경거리를 찾기로 했다.


- "이제 언제 만날지 모르겠네. 꼭 스페인에 다시 놀러 온다면 너희를 보러 갈게!"

- "그래. 언제든지 놀러 와. 기다리고 있을게!"


함께 대화하고 있던 라우라가 팜플로나 친구들에게 돌아갔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우리의 만남이지만 그들에게 행복과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팜플로나 친구들을 향해 소리쳤다.


- "adiós, Pamplona amigos! (안녕, 나의 팜플로나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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