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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증기 Sep 27. 2024

나는 우울증 여행 중 2

그땐 얼마나 깊은지 몰랐어. 하지만 알았어도 기꺼이 빠졌을 거야.


중학생이 되었다.

초등학교와 다르게 교복이 필요했다. 역시 할아버지는 화내셨다.

그 당시에는 브랜드 교복이 유행이었는데 사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를 바라보는 분노 찬 눈빛에 기가 죽었다. 제일 싼 교복을 구입해 주셨다. 억울했지만 받아들였다.

하지만 동생이 중학교 들어갔을 땐 제일 비싼 브랜드 교복을 사주셨다.




이 또한 억울했지만 받아들였다.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첫 생리가 시작됐다. 피 묻은 속옷을 보자마자 할머니는 화내셨다.

또 쓸데없는 돈이 나간다며 도움이 안 되는 년이라며 욕하셨다.

다행이었던 건 내가 다낭성난소증후군이라 1년에 한두 번 생리를 해서 돈이 그렇게 많이 나가지 않았다.

생리대값도 얼마 주지 않아 오버나이트 1개만 사서 일주일 동안 버틴 적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질염을 달고 살았는데 냄새난다고 타박만 줬지 병원을 따로 보내주시진 않았다.




나는 점점 엄마의 얼굴이 되어가고 동생은 아빠의 얼굴이 되어갔다.

그럴수록 할머니의 증오는 깊어갔다.

옆집에서 낮술하고 오시는 날이면 나에게 분노를 표출하셨다.

키우는데 돈이 많이 든다고. 여자가 배워서 뭐 하니? 가서 돈이나 벌어와라.


그때 당시엔 나는 누굴 미워해야 할지 몰랐다.

가족이라곤 이곳뿐이었고 믿어야 하는 곳도 여기뿐이었다.




그래서 나를 미워하기로 했다.



처음부터 태어난 죄

엄마를 닮은 죄

버려진 죄

생리하는 죄

남자가 아닌 죄

돈을 벌어오지 못하는 죄





하지만 나 역시 아무도 물어보지 않은 미래를 꿈꾼 적도 있었다.

상상 속에서 형사가 되어 범죄자를 체포해 보고

웹툰작가가 되어 멋진 작품을 그리고 가수가 되어 깊은 노래를 했다.




하지만 조부모님은 단 한 번도 나에게 진로에 대해 물어보신 적이 없었다.

뭐가 되고 싶니? 어떤 일을 하고 싶니?

말해주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듣지 못했다.

오히려 할아버지께서는 고등학교를 보내지 않으려고 하셔서 고등학교 때부터 내가 직접 알바를 뛰어 학비와 생활비를 벌었다.






반대로 동생에겐 물어봐주셨다.

그래서 좋은 고등학교를 갔다. 따로 알바를 하지 않아도 학비를 다 지원해 주셨다.




밤늦게까지 야자하고 오는 동생을 응원해 주는 조부모님

밤늦게까지 아르바이트하고 오는 나를 당연하게 여기시는 조부모님




이 또한 억울했지만 받아들였다.





이때부터 우울증이 심각해져 의욕이 사라졌다.

어릴 때 산만하고 활발했던 아이가 말이 사라지고 모든 것을 무표정으로 봤다.

불안감이 높아질수록 나에 대한 혐오감이 깊어져  손톱, 머리카락 몸을 뜯기 시작했고

자지 않고 계속 나를 난도질했다.

밝아오는 새벽을 바라보며 말없이 울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무료상담을 해준다고 해서 신청했다.

몇 차례 상담 끝에 나는 심각한 수준에 우울증이었고 선생님은 내 손을 잡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선생으로서 이런 말 하면 안 되지만 그건 가족이 아니야. 넌 거기서 벗어나야 해. 안 그러면 죽어."





지금까지 그 감정이 생각날 정도로 충격이었다.

가족을 버리라니. 버림받은 사람이 누군가를 버리라니.

선생님은 몇 번이나 설득하셨고 나는 고민 끝에 선택했다.







하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선생님은 나와 전혀 연관이 없는 사람인데 이렇게 다정할 수 있나요.

나는 내 가족을 끌어안으려고 노력하는데 왜 안 되나요?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던데 저는 물인가 봐요.

태어나면 안 되는 존재였나 봐요.

왜 이 수많은 고통들을 느껴야 하나요.


괴로워요.

억울해요.

너무너무 억울해요.







근데요 선생님.

이것 또한 억울하지만 받아들여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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