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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증기 Oct 07. 2024

나는 우울증 여행 중 4

겉이 많이 맞아서 단단하고 속은 녹아내려서 부드러워요.





큰 화살이 관통을 했는지 몸에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2교대로 밤낮이 바뀌는 탓에 매일 배를 부여잡았다.

처음에는 그냥 체한 거라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병원 가는 것이 습관 되지 않아 그저 약으로만 버텼다.







그러다 어느 날 엄마한테 연락이 왔다.

외숙모가 사무직 일자리 하나 났는데 여기로 오지 않겠냐고. 직장이 서울이라 집은 어떻게 하냐는 말에 그 당시엔 서울 여성 임대아파트가 있었는데 거기서 지내보자고 했다. 배는 점점 아팠고 일은 잘했지만 매일 같이 찌르는 세모의 모서리는 너무나 아팠다.







고민 끝에 조부모님과 동생에게 통보하자마자 욕이 날아왔다. 다 키워줬더니 버린 어미에게 간다며.

동생은 나에게 조부모님을 버리는 거냐고 탓했다. 할머니는 허리를 다쳐서 일어나지 못했고 할아버지도 연세가 있으셔 꾸준한 경제활동은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나 집안일, 동생 교복 손빨래, 할머니 아프실 때마다 등교해야 하는 내가 아침상 차리기, 돌아오는 생신 챙기기, 용돈 드리기 등 다 했다.







같은 피해자 이자 나의 가해자

동생아.







어릴 때 동사무소에서 기초수급자 물품 챙겨주는 거 너는 동네 창피하다고 혼자 가라고 떠밀었잖아.

가져온 물품 중에 음식은 독차지였지.

직접 가져온 적도 없으면서.

한 번은 못생겼다고 내 이마에 돌을 던져 상처 입힌 적도 있었네.

근데 할머니는 그럴 수 있다며 일상처럼 넘어갔어.

고등학교까지 방을 혼자 썼지만 그건 내가 장녀라서가 아니라 그저 할머니에게 사랑받지 못한 손녀이기 때문이라는 것도 너는 알고 있었을 거야.

가끔 울고 있으면 그 어린 네가 못된 말로 상처 주며 할머니에게 일러바치는 게 일상이었지.

덕분에 소리 안 나게 우는 방법을 배웠어.





그저 어떻게 하면 내 아르바이트비 100만 원에서 동정심 유발해서 붙어먹을 수 있을까.

너에겐 당연한 대학이 나에겐 당연한 공장이 당연한 것처럼.

같은 고등학생이었는데 내 희생은 당연하고 받아먹는 것도 당연한 네 데칼코마니는 아빠와 많이 닮았어.






조부모님이 제2의 아빠를 만들었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나를 제2의 엄마로 만든 거야





아빠가 가정을 챙기지 않고 도박에 미쳐 집에 들어오지 않을 때 그 쌀 한주머니 사려고 쩔쩔매는 한 엄마 그 엄마 역시 삐쩍 말라있었고 돌아오는 밤엔 두 남매를 안고 베란다에서 나쁜 생각까지 했었지.





죽겠다 싶어 조부모님에게 찾아갔더니 손녀는 필요 없으니 손주만 달라고 하시는 이유 없는 차별

공평했던 엄마는 그래도 자식 손자니까 잘 키워줄 거라고 생각해서 버리고 갔지만 결말은 똑같구나.







내 데칼코마니는 엄마와 닮았어.

그들이 그렇게 만들었어.




그래서 나는 네 말대로 너를 버리기로 선택했어.

하지만 난 애초에 거둬진 적이 없어.

내 10대는 노비처럼 살았거든.
















할머니는 내 흔적을 남기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모두 가방에 담았다.

다시는 오지 않겠다는 굳은 마음으로.





내 뒤로 아무도 마중을 나오지 않았다.

다시는 보지 않겠다는 굳은 마음이었을까?







그들이 말한 배신자는 자꾸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세모의 집이 점이 될 때까지 멀어질 때쯤

다시 뒤돌아봤지만 점 하나 없었다.





배신자는 눈에서 점이 흘렀다.

굴러다니는 점들은 갈 곳을 잃어 방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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