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졸업논문을 냈고, 사회복지학과의 졸업시험와 기말고사 공부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어느날 도서관에 빌린 책을 반납하러 인문대학에 가서 과방 잠시 들렸을 때 한 복학생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어? 나에게 말 걸 사람이 없는데? 누구지?’
순간 나는 경직되는 몸을 느꼈다. 철저히 혼자서 모든 일을 해 내고 있었다.
“수현아, 아 나 러시아학과 97학번인데 학과장교수님이 보자신다. 너 어디에 머무니?”
“저요? 절 볼 이유가 없을 텐데...... 주로 도서관에 열람실이 아닌 서고에 머물러요.”
“사서로 근로장학생이라도 일해? 어쨌든 전했으니까 찾아가 봬.”
“네.”
그래서 실천력이 좋은 나는 바로 학과장 교수실로 향했다.
방문을 두들기고 들어섰다. 처음으로 러시아학과학과장 교수님의 얼굴을 보았다. 이 분이 졸업논문을 심사한다고 하셨다. 뭐, 그러든지 말든지.... 내 졸업논문이 통과 되기만 하면 된다.
“논문이 참 독창적이고 시각도 독특하더라. 이거 베끼거나 표절한 흔적도 없고. 어디서 자료 얻었니?”
나를 처음 본 학과장은 부드럽게 말을 시작하셨다. 사실 들어올 때 그의 눈은 놀라워 했다. 자신이 모르는 학생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뭐, 거기에 여학생이라 더 했으리라.
“도서관에서 영어번역서와 기사에서 따왔고, 나머지는 저의 의견이예요.”
약간의 수줍음과 함께 당당한 태도로 말했다.
‘여기서 기죽은 모습 보이면 무시 당해. 난 깡 밖에 없으니 깡이다.’
라고 생각하고 교수님의 질문에 임했다. 교수님은 다시 한 번 내 논문을 훑었다. 그리고 내 성적을 확인했다.
“아니, 경영학과를 복수전공하지, 왜 사회복지학과를 복수전공했니? 음.... 성적이 썩 좋구나.”
그러면서 놀라운 눈으로 자신이 나를 모를 수 있었냐는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순간 그의 눈에 교활함이 스쳐지나갔다.
“대학원 갈 성적은 조금 모자르지만 토익 900점대 이상 맞으면 되니까, 내가 힘 써 줄테니 대학원 가지 않을래? 논문을 좀 더 심화 시키면 참 좋을 거 같다.”
‘뭐? 대학원??? 자신이 힘을 써 준다고?? 아, 이거 잘 빠져나와야한다.’
나의 머리는 비상등이 켜졌다. 유혹하고 있다. 자칫 난 이 교수님의 마수에 걸린 구슬픈 꾀꼬리가 될 수도 있었다. 겉은 조용하고 차분한 모습이라 내 드러나지 않은 왈가닥 기질을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요. 생각 없습니다. 러시아학과 대학원가서.... 뭐 하겠습니까? 저 러시아어도 전혀 못해요. 졸업하고 일하며 독립할 생각이예요.”
딱 잘라 거절했다. 그러더니 좀 더 매달릴까하는 순간의 갈등이 눈에 들어왔지만 이내 그는 포기했다. 그래서 나가보라고 해서 인사를 하고 방 밖으로 나갔다.
“위험했어! 우아...무슨 러시아어 한마디도 못하는 데 무슨 대학원이야.”
한시름 놓고 나는 가려했던 도서관 가서 졸업논문을 위해 빌린 책을 반납했다.
시간은 흘러서 사회복지학과 졸업시험을 보게 되었고 8과목 평균 60점이상 이여야 통과할 수 있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해서 무사히 졸업시험도 통과를 했다. 평균 72점을 얻었다. 통과!
사회복지학과 기말고사와 러시아학과 기말고사를 나란히 치르며 겨울 방학을 맞이했다.
겨울 방학 가기전 11월에 졸업앨범 사진을 찍는다고 모이라고 했다. 이도 행정실 공지게시판이 아니라 전해 들었다. 어찌저찌 해서 말과 말로 전해지는 정보도 곧잘 난 들었다.
‘흠... 졸업앨범이니 상반신만 나오겠지? 그러면.... 운동화도 괜찮지 않을까.’
나의 게으른 생각. 명세기 졸업앨범인데 정장이 없다면 정장답게 입어야 했다. 정장이 없던 나는 최대한 정장 같이 입고 신발은 구두가 발 아프다고 운동화를 신었다.
딱 앨범 촬영하는 장소에 가서 내 모습에 다들 경악을 했다. 신발이 운동화라고 말이다. 난 좀 이때 괴짜 같았는 지도 모를 일이다.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좀 통념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곧잘 있다. 그럴 때마다 엄마가 자제를 시켰다. 사진사도 난감해 한다.
“아, 예쁘장하고 귀엽기까지한 아가씨가 어찌...운동화를...... ”
날 빼면 되는 데 굳이 사각 프레임에 나를 넣는다. 사진발도 잘 받지 않는데.
그래서 졸업앨범에 4명의 00학번 동기와 다 복학생 뿐인 앨범을 얻었다. 근데 이 00학번 얼굴도 졸업을 제 때 못했다. 나 혼자 졸업했다. 거기에, 생각외로 내가...아웃사이더가 ... 그것도 여학생에 어린 내가.... 과수석을 했다. 인문대학 통틀어 여자과수석은 유일했다. 높은 성적이라고 생각 못했는데 과수석이라니. 얼마나 학점을 짜게 줘서. 나도 학점 따는 데 고생이야 했다만. 그 결실을 보긴 했다. (대학 입학을 120명 중 3등, 졸업도 120명 중 3등으로 졸업하게 된 거다.) 학사모를 쓴 내 모습이 자랑스러웠다. 부모님도 감격하셨다.
“해 냈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