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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개강

by 김솔현

벌써 개강이라니. 다시 자취집으로 돌아와서 한달을 방치 해 놓은 방을 정리하고 청소를 했다. 당연히 나 혼자서 왔다. 이제 더 이상 청소년이 아닌 어엿한 어른이기에 이런 일은 혼자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집에서 데려다 주겠다는 걸 거절하고 시외버스를 타고, 택시를 타고 자취집에 도착을 했다.

책장에 먼지 쌓인 교재들과 책들의 먼지를 털고 환기도 시켰다.

드디어 2학기다. 또 어떤 학기가 시작 되려나? 8월 중순에도 수강신청 전쟁을 한바탕 치렀다. 내 맘대로 수강시간표를 작성한다는 게 여전히 좋았다. 혹시 내가 수강신청 하려는 과목이 조기 마감 할 때를 대비해서 시간표를 A, B, C로 만들어 놔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난 좋기만 했다. 난 2개 시간표만 작성을 했다. 1학기 때 운이 좋아서 하나의 시간표로 등록을 할 수 있었다. 이번에 혹시 모를 일이 생길 수 있으니까. 나 뿐만 아니라 한 바탕 전쟁을 1학기 시작할 때 치른 경험에 다른 학우들도 똑같았다. 어떤이는 A~D수강표를 작성을 했다고 했다. 난 그렇게 많은 수강시간표를 해야 할까 싶었지만 그는 그래야 원하는 수강과목을 못 들어갔을 때 대비를 철저히 한거다. 한 마디로 계획대로 안되면 버벅대는 그런 유형.

그리고 하나 둘씩 연락이 취해졌다. 그 동안 각자의 고향으로 가서 방학을 즐기고 돌아온 거다.

“이야~ 잘 지냈어? 수정아?”

“응~ 너도 잘 지냈어? 아직도 9월이 코앞인데 덥지 않아?”

도란도란 친한 수정이랑 전화로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나는 한 번에 한 가지 일밖에 못한다. 마침 다 정리를 해서 침대에 걸터 앉아서 통화를 했다. 저편의 수정이는 전화를 받으며 정리하는 모양이다. 잡음이 들린다.

통화를 마치자 마자 다른 사람들의 문자와 연락이 연신 왔다.

‘내가 이렇게 인기가 많았던가.’

일일이 화답을 해 주기 바빴다. 그렇게 개강 전 일주일이 지나가고 있었다.


전에도 밝혔듯 나의 생활에서 가장 걸림돌은 식사였다. 전혀 요리할 줄 몰랐기에 고작 라면이나 인스턴트 3분요리를 사서 먹는 게 전부였다. 이 때쯤 하도 인스턴트 음식을 먹어서 질려 있었다.

‘요리 책을 한 번 사서 봐 볼까? 와…. 물려.’

그래서 춘천 명동에 있는 서점까지 다이어트 겸해서 걸어서 갔다. 대학교를 지나 한적한 둔덕을 걸어서 넘고, 한 쪽 길가에 있는 춘천고를 지나 큰 길 따라 가면 바로 명동이였다. 서울 명동과 비슷해서 이 거리를 명동거리라고 지었나?

짧은 거리지만 서울 명동 거리와 닮았다. 양옆으로 옷 상점이 나란히 얼굴을 마주하고 있고 재미있는 얼굴을 하고 있는 인형들을 도로 중앙 쯤에 배치해서 환기 시키기도 했다. 그 옆에는 닭갈비 골목이라고 닭갈비 상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골목이 있다. 그 중에서 유명한 두 상점이 서로 경쟁을 하듯 이웃하고 있어 어느 상점이 손님 줄이 길게 늘어서 있나 경쟁이나 하는 듯했다.

여기저기 둘러보다 서점을 발견하고 서점에 들어갔다. 아~ 책 향기가 물씬 풍겼다.

“어서오세요.”

주인의 인사말을 받으며 들어와서 인문/사회쪽으로 먼저 발길이 갔다. 어떤 책이 있을까 두리번 되다 아, 내가 사려는 책이 인문책이 아니라 요리책인 걸 퍼득 생각해 냈다. 실용서 쪽으로 가서 요리책 몇 가지를 꺼내 보았다. 쫘르륵 아무 페이지나 펼치고 보는 데 아, 뭔 소린지 모르겠다. 종이컵 계량 2컵, 작은 숫가락 3번. 뭐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지금은 이게 뭔 소린지 알겠지만 20대때 나는 요리를 전혀 몰랐기에 까막눈처럼 이리보고 저리 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몇 권 더 쳐다 봤는 데 다 똑 같은 말이라 관뒀다. 이 때 주방에 발도 못 들이게 한 엄마가 약간은 야속했다. 요리에 대해 조금 알려주었음 이 요리책에 나온 글을 이해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나를 아끼는 엄마가 내 손에 물 묻히는 걸 꺼려 했기 때문이다. 속설을 좀 믿는 편이시다. 손에 물을 많이 묻히면 그 일이 자신의 일이 된다고 말이다. 운전면허도 1종을 따면 트럭 몰고 과일장사를 한다며 절대 운전면허 2종을 따라하셨다. 운전면허1종이 2종보다 따기가 수월하다고 했는 데 결국 운전면허2종으로 땄다.

어찌 되었든 실용서에서 좀 더 거닐다가 나도 모르게 다시 인문책이 있는 쪽으로 와 있었다. 뭔가 읽고는 싶은데 책을 들었나 놨다를 반복 하다가 어떤 여자가 찾는 책의 이름이 귀에 들어왔다. 파울로 쿄엘료의 ‘연금술사’ 있냐는 거다. 서점 주인이 있다고 하고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 여자는 냉큼 책을 사서 나갔다. 옆에서 지켜보다가 나도 한 번 ‘연금술사’의 책을 들었다. 훑어보니 꽤 괜찮아 보였다. 나도 따라 샀다.

정작 사야 할 책을 사지 않고 엉뚱한 책을 샀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명동 거리를 좀 더 둘러 보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자취집에 도착하기 전에 책 대여점이 눈에 들어왔다.

‘뭘 대여 해 주는 거지? 한 번 들어가 볼까?’

딸랑.

들어가니 별의별 책들이 많았다. 주로 만화책과 장르소설들이 각자 한 쪽 벽면을 차지 하고 있었다.

“어서오세요. 혼자세요?”

“예…. 잠시 구경 좀 할 게요.”

나는 구경을 시작했다. 장르소설보다는 만화책에 관심이 더 갔다. 만화 칸에 가서 하나 씩 쳐다보니 이미 본 책들도 있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만화책들도 있었다. 주로 만화책이 일본 만화책이였다. 일본만화책과 한국만화책의 다른 점은 보는 방향이 다르다. 일본만화는 왼쪽부터 읽으면, 한국만화는 오른쪽에서 읽기 시작한다. 한국 만화도 있었지만 이미 본 만화책이거나 흥미를 끌지는 못했다.

“일본 만화책이 많네… 신서유기? 에반겔리온? 신의 물방울?와…. 디테일 봐.”

이 세 일본 만화책을 보면서 내용도 내용이지만 정교하게 그려진 그림에 매료 되었다. 특히 신의 물방울은 와인에 대한 만화였다. 근데 그 내용이 완전 전문가가 읽어도 될 정도로 상세하다. 이래서 일본 만화가 무시를 당하지 않는거다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는 책이 있음 대여 해서 읽어보세요. 2주 대여할 수 있으니깐요.”

여 주인이 말을 걸었다. 내가 여기저기 서성이며 만화책을 주섬주섬 넣었다 뺐다를 반복해서 그런가보다.

“그래요? 그러면….. 이 만화책 2권으로 할게요.”

나는 신서유기라는 만화책을 건넸다. 바로 대여료 내고 책을 받아 다시 자취집으로 향했다.

가면서 신서유기 만화책을 힐금힐금 쳐다 봤다. 와…. 정말 섬세하게도 그렸다~

‘오늘은 이 만화책으로 하루를 마무리 해야지!’

오늘은 책 1권을 사고, 만화책 2권 대여를 했더니 희한하게 마음이 푸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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