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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신꽃신내꽃신 Dec 29. 2022

김장바람과 제사바람과 마른꽃바람 그리고…   

12월 바람



   

   아홉 시 뉴스 시그널 같던 이집저집의 김장 소식도 김치통 뚜껑마냥 꽉꽉 닫힐 즈음. 한 해 동안 밑반찬 몫을 충실히 해낸 지난 김장같이 2022해도 곧 기억으로 들게 된다. 다시 노릇한 배추가 붉은 양념에 물 들듯 우리 모두가 새 기운에 물들 채비 중이다. 이번 배추는 멀쩡한 겉과 달리 속잎의 3할이 상했다. 몇 가지 원인이 들려왔다. 흙 건조, 물 부족 또는 과다, 칼슘 부족, 특정비료 과다 등. 초보농사꾼 남편이 그리 심하지 않은 꿀통배추(속이 상한 배추의 별칭)로나마 키워냈으니 고마운 일이다. 어떤 원인이든 상한 속을 뜯어내는 일이 덤으로 주어졌다. 속이 상하지 않은 배추가 하나도 없었다. 텃밭 배추가 다 같이 속상한 증상. 증상은 같으나 같은 모양으로 상한 건 없다. 한 해를 돌아보며 하나쯤은 상하고야 마는 우리네 맘 같다. 

   올 김장을 마지막으로, 더는 안 하겠다고 선언한 87세의 엄마께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라는 말도장을 찍고 텃밭배추의 7할을 실어다 드렸다. 여섯 자식 집집으로 허리 굽은 엄마의 손맛이 배달되는 일은 흐뭇하고도 속상한 일이다. 남은 배추 스무남은 포기를 뽑아 손질하고, 소금물에 절이고, 씻고, 물 빼고, 양념을 만들어 주물러 넣기까지 사흘이 걸렸다. 주말의 남성가족 손을 한번에 빌렸으면 수월했으련만 원고마감으로 인해 평일로 미뤘다. 혼잣일이 8할이었다. 부지런한 엄마가 양념거리를 다 장만해서 부쳐주셨음에도 팔꿈치에 징한 통증이 남았다. 서울과 수도권이 폭설로 아우성인 때였다. 



막 따낸 배추겉잎을 실컷 먹어서 속이 파래졌겠다.


   김장을 마무리하곤 시아버지 제사를 모셨다. 시어머니의 몸이 불편한 데다가 새 식구

를 맞았으므로 우리 집에서 모시기로 의견을 모은 터였다. 제기, 병풍, 제사상, 돗자리, 두건, 두루마기 등을 모두 옮겨와 씻고 닦고 손보고…. 큰며느리 노릇이 이런 거로구나 싶은 며칠을 보냈다. 팔목을 주무르며 해마다의 제사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찼던 시간.

   한국의 제사는 조상신을 숭배하는 종교의식에 다름 아니다. 제례를 행하는 나라는 많지만 조상의 혼령을 모셔오는 곳은 우리나라뿐. 종교인이 각자의 신을 믿으며 소원을 빌듯이 제사를 모시는 이는 조상신의 존재를 믿는다. 갖은 음식을 차리고 신위(신이 거하는 위치)를 세우고 향을 피우고 조상신을 부르고 절을 하고 술을 따르고 소원을 비는 모습이 그러하다. 그런데 그 기원을 제대로 알고 모시는 집안은 얼마나 될까. 공자를 시조로 하는 중국의 대표적 사상인 유교, 그 유교의 한 분파인 주자학(성리학 또는 예학)을 완성한 송나라 후기(1127~1279년) 학자인 '주희'의 집안제례의식이었다. <주자가례>에 포함된 것으로 고려말에서 조선 초기에 들여왔다. 조상신을 지극히 숭배한 시기는 임진왜란(1592~1598년 조선 선조 때) 이후였다. 양반과 유학자의 전유물로서 혼란한 정세에 걸맞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유교와 함께 매장문화가 들어오고, 고려의 불교사상에 따른 화장이 없어지면서 산소가 생겨나고, 그 안에 귀신 즉 조상신이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는 설이다. 젊은 남성들이 수염 제모를 하고 하얀 피부가 대세인 시대. 그 오래된 긴 수염 양반들 제례를 아직껏 이어오는 까닭을 조상신에 대한 믿음 혹은 조상에 대한 예의로만 볼 수 있을까. 

                                                             

                                        


크리스마스이브날에 둘째가 브런치카페보다 맛난 요리를 했다. 첫째 내외가 찰진 치즈케이크와 기장시장의 싱싱한 큰 가리비를 사 왔다. 시골집의 깜깜세상을 꼬마트리도 밝혀준 밤.

   오백 년 조선왕사의 스물일곱 임금 아래 가장 높은 신분이던 양반. 초기에 7% 인구였으나 후기에 70%에 이른다. 신분제의 변화와 양반들의 갑질(그 행태야 이루 말할 수 없었을 터)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족보를 사거나 위조하는 하층민이 폭발적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제사를 모시는 집안도 그만큼 증가했고 조상신 식탁도 과시를 위해 화려해졌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중국에서는 주희의 제례의식을 따르지 않는다. 폐쇄국가로 낙인된 북한에서도 일부를 제외하곤, 봉건잔재라며 무덤에 꽃을 바치고 묵념하는 정도이다. 

매장문화가 화장문화로 바뀌고 재산마저도 모든 자녀가 나눠갖는 한국의 21세기. 그럼에도 제사를 모시는 집안은 부부싸움을 불사하면서까지 왜 여전히 넘쳐나는가. 자신의 권위 추락을 허락하지 않으려는 뿌리 깊은 '장남' 심리가 아닐는지. 

  사후세계 회의론자였다는 공자에게 제자인 계로가 귀신 섬기는 일에 대해 물었다.

   "사람을 섬기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귀신을 섬기겠느냐."

   "죽음이 무엇인지요?"

   "삶을 알지도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

   천하의 공자도 모르고 살아있는 누구도 모르는 죽음의 세상을 불러오는 일, 제사. 매장 풍습은 사라졌고 화장을 끝으로 한 생은 가루가 될 뿐이건만. 한국의 장남들이여, 장남도 이제 옛말일 뿐임을 스스로가 가장 잘 알지 않는가.



남성들이 2할의 힘을 보탰으나 사흘이 걸린 김장. 소금에 열 시간을 절인 배추들이 텃밭으로 돌아갈 것처럼 빳빳했다. 양념에 심혈을 기울였음에도 결국은 싱거운 손맛.


   온 sns와 미디어 화면이 반짝임으로 주야장천 도배 중이다. 반작반작 귀를 울려댄 징글벨은 사슴마차 타고 내년으로 떠났다. 세상에나, 올 크리스마스엔 시내 곳곳에 세워진 웅장한 크리스마스트리 구경을 못했다. 마른꽃 앞만 어슬렁거렸더니 이런 때도 생겨난다. 남쪽임에도 영하 10도를 웃돈 가지산자락에서 제법 웅크렸던 모양이다. 마른 잔디마당을 연말 거리로 오독해 본다. 12월 끝자락을 애인의 옆구리인 양 꽉 껴안아 본다. 어차피 떠날 시간, 떠날 사람인 줄 모르겠는가만.  


   시골로 이사한 지 어느새 4년이 넘었다. 한 달가량의 이삿짐 정리가 끝나고부터 시공간장애를 1년여 앓았다. 지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어릴 적에 살았던 시골 이미지는 오롯이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사랑의 다른 말. 어릴 적의 그곳과 이곳은 왜 이리 다른 걸까. 한길로 나가지 않으면 사람 구경이 어려운 곳. 어둠이 밀려들면 적막강산인 곳. 커튼을 치지 않으면 백 미터 앞에서도 훤히 들여다보이는 집안. 여름이면 쏟아지는 땡볕. 겨울이면 몰아치는 바람. 빌딩 같은 장애물이 없으니 모든 것이 직진인 곳. 부지런히 거두지 않으면 잡초가 되거나 말라죽는 텃밭의 생명들. 청계들 일용양식인 물통의 물이 꽁꽁 어는 12월. 열두 마리의 청계가 횃대를 떠나 알 낳는 곳에 들어 싸우다가 붙어 자는 겨울밤. 이 모든 자연의 것만으로도 벅찼던 나날. "꽃바람 여인"을 즐겨 부르는 남편의 시골살이는 몇 할 쯤의 꽃바람인지.



가지에 끼어 견딤이 길었던 단 하나의 모과도, 여러 마른꽃도, 꽃망울 그득 매단 매화나무도 제각각의 바람을 꼿꼿이 견디고 있다. 저어기 먼 어디쯤에서 달려오는 봄을 이미 들었으니.


   올해가 가기 전에 2세대 청계 두 마리와 3세대 청계 네 마리의 이름을 지어주려 한다. 어른닭이 되었건만 이름도 얻지 못한 채 두 계절을 건너고 있다. 그런데 이를 또 어쩌면 좋은가. 3세대 수탉이 어른이 되었다. 1세대와 3세대 중 한 마리는 닭장의 평화를 위해 누군가의 식탁에 올라야 한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삶의 노릇이다. 마른꽃에 바람이 맵차다. 저들의 뿌리가 새순을 일으킬 때까지 저 자세로 견딜 것을 안다. 오롯한 그리움과 사랑으로. 세상에나, 언제부터였을까. 닭장 앞 홍매화나무와 마당동산의 백매화나무가 꽃망울을 똘망똘망 키우는 중이다. 삶 이후의 죽음, 죽음 이후의 삶이 나무를, 꽃을, 대기를, 바람을, 땅을… 온 자연을 껴안고 또 한 해를 삼키려 한다.       



깜깜한 마당동산에 내려앉은 올빼미 두 마리. 첫째가 네 살이었을 적에 올빼미다, 올빼미! 소리치며 꿈 깨던 때가 생각나 두어 달 전에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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