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푸른 대문 너머에는 누가 살고 있나
윤태는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어쩌면 영영 보지 못할 수도 있었다.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고요한 강처럼 흘러갔다. 청월하숙도 고요했다. 복순은 떨어진 적 없는 것처럼 다시 붙은 대문을 보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올랐다. 그러나 그 대문은 곧 강단이었다. 처음 대문을 칠한 것도 강단이고 뜯긴 대문을 다시 붙인 것도 강단이다. 그래서 복순은 화살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로 했다. 도깨비산의 도깨비 장군에게로.
도깨비 장군이 참말로 있다면 그는 무얼 하고 있을까. 도깨비들조차 그들의 편이 아닌 걸까. 장군이라는 놈이 산에 눌러붙어 세상이 반대로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는가. 참고 참으며 지내던 복순은 결국 윤태가 잡혀가고 일주일이 되던 날에 도깨비산으로 내달렸다. 주황색 하늘이 파랗게 변할 때까지 시커먼 숲을 향해 손에 잡히는 대로 돌을 던졌다. 돌을 던지고 던지다 보면 윤태가 돌아올 것 같았다. 화라는 건 내면 낼수록 불이 붙는 요상한 감정이었다. 오른팔이 빠질 것 같았다.
“왜 돌을 던지고 고니?”
어깨 뒤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복순은 꽥 소리를 지르며 들고 있던 돌을 떨궜다. 삐거덕거리며 뒤를 돌아보니 마을에서 유명한 미친 술꾼 할배가 서 있었다. 멀리서만 봤던 그 할배는 이번에는 아주 가까웠고, 무엇보다 취해 있지 않았다. 회색 사이에 드문드문 흰색이 섞인 수염은 우스워 보였지만 송충이처럼 짙은 눈썹 때문에 얕볼 수 없는 인상이었다. 튀어나올 듯 우락부락한 눈알. 주먹 하나가 들어가고도 남을 것처럼 커다란 입. 아무리 봐도 술꾼이 아니라 도깨비가 맞다. 아니, 도깨비 장군이 맞다.
“즉접 보니 미섭니. 날래 들어가라.”
겁에 질린 복순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집까지 뛰었다. 펄떡거리는 게 목젖까지 느껴질 정도로 심장이 세게 뛰었다. 불퉁 튀어나온 눈알과 주욱 찢어진 미소가 눈앞에서 가시지를 않았다.
복순은 바로 집으로 뛰어들어가려다 반쯤 열린 청월하숙의 대문을 보고 멈춰섰다. 열린 틈 사이로 유성의 뒷모습이 보였다.
“빈 자리는 내가 채웁니다.” 선휘의 목소리였다.
“장군도 동의한 일이다.” 이번에는 강단의 목소리였다.
새벽 찬 공기에 잠이 깨면 겨울이 가깝다는 뜻이다. 복순은 눈을 가늘게 뜨며 이불로 몸을 싸매었다. 그러나 이번에 그를 깨운 것은 찬공기만이 아니었다. 그의 귓가를 건드리는 불규칙적인 소리가 있었다. 비몽사몽한 정신이 갑자기 또렷해졌다. 복순은 베개에 코를 박고 귀를 기울였다. 찰박거리는 소리, 발소리였다. 청월하숙 사람들이 틀림없었다. 천둥소리를 내며 코를 고는 어머니 몰래 복순은 마당으로 나왔다. 바람이 들어 어머니가 깨기 전에 조용히 문을 밀어 닫고 고무신을 신었다. 발등에 닿는 공기가 서늘했다.
눈이 덮었다 녹아내린 땅은 회색빛 진흙이 되어버렸다. 아무리 조심해서 걸어도 찰박거리는 소리가 났다. 복순은 서둘러 마당을 가로질러 소리 나지 않도록 대문을 열고 나왔다. 이제 막 뜨는 해를 등진 인영들이 덜 깨서 뿌연 시야에 들어왔다. 얼굴들을 자세히 보기 위해 눈을 비비는데 걸걸한 목소리가 거칠게 속삭였다.
“이 간나이는 뭐가?”
도깨비 장군의 목소리였다. 겁을 집어먹고 튀어오르는 복순의 어깨를 누군가의 손이 따스하게 감쌌다. 선휘였다.
“복순아, 너 왜 일어났어. 어서 들어가, 어서!”
“일어났는데 발소리가 들려서.......”
오물거리는 복순의 입술을 누군가의 손가락이 꾹 눌렀다.
“다시 들어가 자라. 자는 만큼 자란다.”
강단의 목소리였다.
“두고 날래들 오라. 선생 기다린다.”
“많이 도와주신 분의 아이라.”
“아주머니, 제가 들여보내고 따라갈게요. 먼저 가 계세요.”
복순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대화들이 잠시 오갔다. 도깨비 장군은 혀를 쯧 차고는 먼저 가 있겠다며 골목을 빠져나갔다. 강 단은 복순이 잡을 새도 없이 장군의 뒤를 따라갔다. 선휘와 복순만 홀로 남았다.
“복순아, 지금부터 술래잡기다. 언니가 열 셀 때까지 저 방에 들어가는 거야. 그리고 눈 꼭 감고 자, 알겠지?”
선휘는 언제나처럼 웃음기를 머금은 얼굴로 열을 세기 시작했다. 복순은 뾰로통해져서 선휘가 다섯을 세도록 움직이지 않았다. 숫자가 아홉에 반까지 가고 나서야 복순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어디 가는 거야?”
“으음, 복순이가 다섯 밤 자면 알려 주지.”
“윤태 오빠는 삼십삼 밤 자고도 안 돌아왔어.”
선휘가 입을 작게 벌리고 복순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복순이 그렇게까지 큰 숫자를 셀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는지, 자신도 세고 있지 않았던 날들을 세고 있어 놀랐는지, 자신들이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놀랐는지. 놀랄 이유는 수천가지였다. 그는 이내 웃으며 복순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우리는 돌아올 거야. 술래니까 복순이 잡으러 돌아오지.”
“정말이지.”
선휘가 고개를 끄덕이며 복순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복순은 손가락을 걸고 복사에 서명까지 하고 나서야 그가 바지를 입었다는 걸 알아챘다. 이번에는 덧입은 치마 없이 제대로 된 바지였다.
“돌아오는 거야.”
“응, 복순이 잡으러 온다.”
그렇게 말하고 선휘는 돌아섰다. 복순은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떴다. 선휘의 뒷모습이 강단을 닮아 있었다.
굉음과 함께 종로 거리가 뒤집혔다. 높은 사람이 폭탄에 맞아 죽었다는 소식이 마을에 퍼져나갔다. 게다가 그 높다는 분이 일본인 이라는 사실이 드러나자마자 사람들은 얼어붙은 마음속 깊이 묻었던 희망의 씨앗을 움틔우기 시작했다. 해방에 대한 희망은 아니었다. 죽은 줄 알았던 불씨가 살아있다는 희망이었다. 아주 작고 희미한 희망. 그러나 순사들은 작고 희미한 빛이 얼마나 쉽게 어둠을 흩트리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폭탄과 암살에 대한 이야기는 신문에 단 한 줄도 실리지 않았다. 기껏해야 가난한 처지를 비관한 조센징 폭도의 횡포라는 뻔한 기사가 실릴 뿐이었다. 누구도 기사를 믿지 않았지만 그건 타오르는 불씨를 식게 만드는 데에는 탁월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폭발 일주일 전부터 청월하숙은 텅 비어 있었다. 복순이 이 사 실을 알고 있는 이유는 술래잡기가 그가 술래가 된 차례에서 끊겼 기 때문이다. 청월하숙의 사람들은 그가 쫓아갈 수 없는 아주 먼 곳으로 떠났다. 예전에 선휘가 말했던 춥다는 곳으로 간 걸까.
마지막으로 청월하숙 사람들을 보았던 새벽, 복순은 그들이 아주 멀리 간다는 걸 알아챘다. 우선 맞잡은 선휘의 손이 그날따라 따뜻했다. 윤태가 사라지고 난 후부터 복순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던 유성의 눈길이 얼굴에 오래도록 닿았다. 도깨비 장군이 더 이상 무섭게 거친 사투리로 날래 들어가 자라고 말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강단이 복순을 안았다. 텁텁한 손길이 처음에는 정수리를 쓸다가 꾹 누르고 어깨를 툭툭 털어주고 그의 등을 토닥이다 천천히 감싸안았다. 마주한 눈동자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담담하고 뜨거웠다. 덩달아 눈이 뜨거워졌으나 울 수는 없었다. 놀이가 끝난다고 우는 어린아이가 될 수는 없었다. 누구도 아닌 강단 앞에서.
“천천히 쫓아오면 된다.” 강단이 말했다.
그때 복순이 강단과의 마지막 대화에서 이해한 것은 그 말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면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것. 그 시간 동안 청월하숙은 비어 있으리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