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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소하 Aug 15. 2024

청월하숙 (3)

그 푸른 대문 너머에는 누가 살고 있나

— 흙탕물


선휘가 청월하숙에 들어온 것은 유성에게는 한마디로 재앙이었 다. 유성은 강단과 윤태와도 바깥에서는 긴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그러나 선휘가 청월하숙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그는 자꾸만 자기 집 대문 앞에서 발이 묶였다. 선휘와 우연히 자주 마주치는 것 이었다. 유성은 달갑지 않은 우연이 자주씩이나 반복되는 것이 거슬리는 듯했으나 복순은 둘의 만남이 필연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복순이 관찰한 대로라면 선휘의 하루 일과는 다음과 같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강단과 윤태와 밥을 먹는다. 윤태가 학교에 가면 강단과 함께 하숙일을 한다. 늘 그렇듯 강단이 어디론가 외출하면 산책을 하거나 하숙을 구석구석 청소한다. 그것마저 끝나면 밖으로 나와 복순을 발견하고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 안부를 주고받는다. 대화는 늘 선휘가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고 이만 들어가자며 복순의 머리를 쓰다듬고 끝났다. 복순은 결국 호기심을 참 지 못하고 선휘에게 방에 혼자 있을 때는 무엇을 하냐고 물었다. 


“왜? 물어봐도 못 들어오는데.”
“나도 심심하니까 언니가 하는 거 해 보게.”
“별로 재미없을걸.”

선휘는 잠시 고민하다 유성이 가져오는 과학 대중잡지를 읽는다고 말했다. 그런 종류의 잡지는 금지된 지 오래였으나, 복순은 사람들이 알음알음 뒤에서 몰래 잡지를 돌려읽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머니도 비슷한 신문을 몰래 읽으니까. 


유성의 우연과 선휘의 필연으로 돌아오자면, 복순은 선휘가 유성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선휘는 유성이 돌아올 무렵 늘 골목에 서 있었다. 그리고 유성이 멀리서부터 걸어오면 튀어나와 손을 흔들고, 스무 걸음도 안 되는 유성의 집까지 걷는 동안 백 가지 이야기를 했다. 유성은 언제나 말하는 개구리라도 본 것처럼 떨떠름한 표정이었으나 어느 순간부터는 익숙해져 보였다. 대문 앞에 삼십 분 동안 잡혀 있었던 날에는 매우 피곤해 보였지만. 


선휘가 유성을 좋아한다는 복순의 오해는 집 앞에서 흙을 파다 둘의 대화를 들은 날 바로 풀렸다. 선휘가 악착같이 이어가는 대화 속은 과학 이야기만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둘은 지구와 달 부터 시작해 보통은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치는 세상 모든 현상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유성은 늘 얼이 빠져서 선휘의 독백에 끼어들 기력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그런 둘을 보고 있으면 조금 웃겼다. 


그래서 복순은 어쩌면 사람 사이의 애정이 꼭 사랑, 우정, 무관심 세 가지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리라 생각했다. 그런 기준으로 나누려면 청월하숙 사람들은 어느 축에도 들 수 없었다. 복순은 제일 좋아하는 강단을 중심으로 그들에 대해 몇 차례 곱씹어 보았다. 강단은 가족이 없다. 적어도 사람들이 아는 바에 의하면 그렇다. 어머니는 강단이 마을에 들어오자마자 한 일이 홀로 대문 을 칠한 것이라고 말했다. 어느 날 하숙생으로 들어온 윤태는 강단의 가족이 아니다. 산골 고향 마을에 어머니와 누이를 두고 왔다고 했으니까. 청월하숙에 살다 옆집으로 이사 간 유성도 강단의 가족이 아니다. 그야...... 청월하숙 옆집에 사니까. 선휘는 올해 봄 처음 들어왔다. 그리고 강단을 아주머니라 부른다. 강단, 이윤태, 최유성, 남선휘. 강, 이, 최, 남. 흔하고 흔하지 않은, 다르고 다른 성씨가 뭉치는 푸른 대문. 적어도 청월하숙 사람들은 모두가 생각하는 관계의 틀 속에 잡아 둘 수 없었다. 


그래서 복순은 유성과 선휘의 관계를 사랑도 우정도 아닌 흙탕물이라고 정의 내렸다. ‘물과 기름’이라고 하기에는 둘은 너무 잘 섞였다. 흙탕물처럼 뒤집히며 섞인다는 게 문제였지만. 선휘는 잘 모르겠지만 유성은 그를 상당히 불편해하고 있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학교에서 돌아올 때마다 선휘가 어디 있는지 눈을 굴리며 확인할 리가 없으니까. 그러나 선휘는 늘 튀어나왔고 유성을 똑바로 쳐다보았고 유성은 눈알을 굴리다 결국 눈을 마주쳤다. 그런 면에서 선휘는 어느 날 유성의 물웅덩이에 풍덩 빠져든 진흙덩이였다. 잘 섞이지만 곱게 섞이지는 않는 사람. 


“언니, 최유성 선생님 무섭지 않아?”
“그 사람이 왜 무서워. 늘 화나 있는 것처럼 생겨서 그렇지?”

“언니는 그 선생님 싫어할 줄 알았어.”
“왜?”
“마을에서 언니가 손 흔들어도 안 웃는 사람, 그 선생님 하나
야.”

“그 사람이 안 웃는다고 싫어할 이유가 어디 있어. 음, 그러니 까 톱니바퀴 같은 거야. 톱니바퀴, 알아?” 

“돌아가는 거.” 

“그렇지. 다른 사람들은 그냥 다가가서 인사하면 땡이었는데, 최 선생은 톱니를 잘 맞추어야 하는 거야. 그래야 대화든 뭐든 돌아가기 시작하는 거지.” 


진흙탕부터 톱니바퀴까지. 복순은 참말로 복잡하다고 생각하며 이해한 척 한 마디 더 얹었다. 


“아다리가 맞아야 한다는 거네.”
“응, 그렇지. 그런데 아다리가 아니라 아귀.”

“응?”


선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주머니가 그러셨어. 아다리는 일본 말이래.” 



— 발소리 


마을에 순사가 다닌다. 옆 마을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옆옆 마을에서는 사람들이 잡혀갈 때 복순의 마을에서는 한 사람도 사라지지 않았는데 이제 마을에 순사가 다닌다. 어머니는 노을이 지든 말든 집에만 있으라고 당부했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방에 틀어박혀 복순은 누렇게 얼룩진 천장만 쳐다보았다. 갑자기 집에 순사가 들이닥쳐 총부리를 들이대는 상상해 보았다. 와닿지 않았다. 전혀 와닿지 않았다. 


복순은 살면서 두 번째로 용기를 내기로 했다. 날이 어둑해지자 그는 찰박거리며 뒷간으로 걸어갔다. 뒷간은 집에서 청월하숙과 가장 가까이 붙어 있는 곳이니 어쩌면 청월하숙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저녁 시간이면 간간히 웃음소리가 들리고는 했으니까.


복순은 웅크려 앉아 벽에 기대었다. 귀를 기울이고 십까지 세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번에는 삼십까지 세었다. 그래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슬슬 등이 식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다섯까지 세었다. 


무언가 들렸다. 말소리도 웃음소리도 아니었다. 찰박거리는 발소리들이 들렸다. 



— 수첩 


물건 하나를 꾸준히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다 보면 물건과 사람이 짝이 되어서 비슷한 물건만 보아도 그 사람이 떠오른다. 예시로는 눈깔사탕, 안경, 책가방, 손수건. 그리고 수첩. 


유성은 항상 낡은 가죽 수첩을 품고 다녔다. 그가 집에서 나와 수첩을 넘겨가며 무언가 재차 확인하고 하늘 한 번 보고 다시 그 수첩을 외투 안주머니에 넣는 모습을 목격한 것이 열댓 번도 넘었다. 복순은 언제나 그 수첩이 어떤 문장들을 담고 있을지 궁금했다. 학교에서 가르칠 내용들이 적혀 있을까? 윤태는 외울 게 많다며 밤새도록 공부하는데, 선생이 수첩을 보면서 가르치는 건 부당하지 않나? 복순의 생각은 늘 여기서 뚝 그쳤다. 


그날도 유성은 대문을 열고 나왔다. 평소와 같았다면 복순도 그를 관찰하는 것을 관두었겠으나 그날은 유성이 미묘하게 달랐다. 그래서 복순은 더욱 집중했다. 


유성이 평소처럼 수첩을 한 장씩 넘기고 하늘을 보는 게 아니라 차르륵 소리를 내며 넘겼다. 종이 사이에 낀 것을 찾는 듯했다. 어느 순간 얇고 푸른 게 나풀거리며 땅을 향해 떨어졌다. 납작하게 말라붙은 꽃이었다. 유성이 황급히 무릎을 꿇고 앉아 푸른 꽃을 주웠다. 그리고 입으로 후후 불어 흙을 털었다. 그는 엄지와 검지 사이에 꽃을 끼워 핑그르르 돌리더니 다시 수첩에 끼워넣었다. 복순은 꽃에게도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의 책갈피가 된 거니까. 



— 불청객 


아직도 순사들이 다닌다. 낮에도 밤에도 나타나는 불청객은 아직은 아무도 잡아가지 않았다. 마치 잡혀가지 않으려면 자신들 앞에 서 얌전히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걸 가르쳐 주기 위해 온 것처럼.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다물었다. 마을이 조용해졌다. 


복순은 그 불청객들이 싫었다. 그들이 나타나고 청월하숙에서 말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푸른 꽃에 대해 이야기한 날 이후로 그나마 눈인사라도 하던 강단은 복순을 아예 없는 사람 취급했고 윤태는 더 이상 복순을 맹꽁이라 부르며 다가오지 않았다. 유성은 학교에서 일하는 시간이 바뀌었는지 복순이 집에 들어가고 늦은 밤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청월하숙 사람들 중에서 가장 오래 함께 시간을 보냈던 선휘도 바빠 보였다. 대문 앞에서 마주쳐도 볼을 꼬집고 바삐 지나가는 것이 다였다. 새카맣기만 하던 눈동자도 어딘가 바뀌었다. 


한번은 순사와 눈이 마주친 적이 있었다. 곧바로 알 수 있었다. 그들의 눈동자에 비친 복순은 살덩어리였다. 아직 덜 컸으니 무관심으로 반응해도 되는 살덩어리. 그러나 그 무관심이 천만다행이라는 점이 불청객과 청월하숙 사람들의 차이였다. 



— 이윤테 


간밤에 소동이 일어났다. 슬슬 찬바람이 들 무렵이라 복순은 이불을 턱까지 덮고 있었다. 조금 까슬했지만 견딜 만했다. 그때 문짝이 흔들릴 정도로 고래고래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을 기점으로 모든 소리가 시작되었다. 문을 걷어차는 소리, 강단이 낸 듯한 호통소리, 선휘의 다급한 외침, 다시 낯선 남자의 호통소리. 


“코코니 이유은테가 이즈루노카!” 


복순은 어려운 일본어를 할 줄 몰랐다. 이때 윤태의 이름이 일본어로도 이윤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윤’이 조금 늘어난 이유은테. 일순간 조용해졌다. 그리고 차분한 걸음소리가 들렸다. 맹꽁이라며 뒤에서 와락 놀래키던 발걸음에 비해 지나치게 조용한 소리였다. 어머니의 딱딱한 손이 복순의 작은 귀를 덮었다. 복순은 어머니의 품에 기어들어갔다. 이불을 끌어당겨 뒤집어썼다. 어머니의 손으로 둔탁한 소리나 질질 끌리는 소리는 뭉갤 수 있었다. 그 따뜻했던 손은 대문이 떨어져 나가는 소리까지 뭉갤 수 있었다. 그러나 윤태의 다급한 목소리는 묻을 수 없었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의 목소리는 묻기 어려웠다.



— 빈방 


이제 하숙도 아니네. 하숙도 아니야.
어휴, 썩을 놈들....... 어린 학생까지 잡아가다니, 죽일 놈들.

학생을 제일 많이 잡아가지. 요새 좀 배운 학생들끼리 몰래 모이고 지라시를 뿌리니까. 그놈들한테는 그게 제일 골치지.
그래서 그, 하숙은 지금 어떻대.
말도 마. 오늘 아침에 대문 고치고 다시 칠하고 있더라. 눈 하나 깜짝 안 해.
아니, 강단은 안 잡혀갔대?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네.
윤태가 죽어도 입 안 열었대잖아. 끌려간 것도 학교 안에서 몰래 학생들 선동했다고 마구잡이로 잡아간 거였고. 하숙 주인이 윤태
한테 그동안 받은 하숙 비용 적힌 장부도 냈다더라. 자기는 돈 받고 들인 죄밖에 없다는 거지.

아휴, 우리는 그것도 몰랐네. 그동안 아들처럼 키우는 줄 알았잖아. 꼬박꼬박 받고 있긴 했네. 

요즘 세상에 정이고 인심이고 어디 있어.

선휘는 어떡한담. 남매처럼 가까웠는데.
그러고 보니 요즘 안 보여.
그러면 안에 있어야지. 언제 잡혀갈 줄 알고. 순사가 내 얼굴을 모르는 게 낫지. 밖에 나올 리가 없지. 

그래서 윤태는 어떻게 된 거래.

모르겠어. 소식을 아무도 몰라.

아무것도 몰라?
종로경찰서래. 

.......
썩을 놈들.
쳐 죽일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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