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푸른 대문 너머에는 누가 살고 있나
새벽내음 은은한 아침, 복순은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눈을 뜬다. 하늘은 아직 검푸른색, 곧 보라색이 될 것이다. 찰박거리는 발소 리가 들리면 아직 늦지 않은 것이다. 어머니가 깨지 않도록 낡은 미닫이문을 조심조심 열고, 신발을 구겨 신고, 마당을 가로지른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놀이가 아니니 서둘러 움직여야 한다. 다 급하고 신이 난 마음 탓에 빨라진 발소리는 숨기기 어렵다. 집을 나와 담에 붙어서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보라, 이 시간에는 깨어 있잖니.”
“소리 조금만 낮추시죠.”
“볼 거 뭐 있다고 쫓아오니. 날래 들어가 자라.”
뒷목이 조금 아플 정도로 고개를 들어야 보이는 얼굴들. 구름 밑바닥에서 스멀스멀 새어나오는 햇빛을 등지고 서서 표정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도깨비 나와서 이노옴 한다.”
“겁 주지 마세요.”
“누가 듣겠습니다.”
“자, 자. 이제 우리가 술래네. 열 세기 전에 어서 집에 들어가야 우리가 못 쫓아가지.”
“열 센다. 하나, 두울, 세엣.......”
머리털이 쭈뼛, 등줄기가 서늘. 복순은 집으로 뛰어들어간다.
첫사랑이 꼭 사람이어야 할까? 그리 박한 기준으로 따져야 한다면 복순의 첫사랑은 아직 없다. 툭하면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다 나 중에는 미안하다며 공기놀이 할 돌멩이를 주워다 주는 석우도, 웬 꿀벌로부터 자신이 지켜주겠다며 나무막대기를 허공에 휘두르는 광훈이도 아니다. 애초에 첫사랑이 사람에 국한되는 건 조금 이상 하다. 어른들이 들려주는 모든 이야기의 귀결은 사랑이었다. 웬만 한 바보 같은 일은 ‘사랑’ 한 단어로 설명이 끝난다. 당장 삼십 초 뒤에 이 세계가 사라진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가장 소중한 사람을 붙잡고 사랑한다고 말할 것이다. 곁에 소중한 사람이 없다면 낯선 이를 붙잡고서라도 그럴 것이다. 혼자 있다면 옆에 서 있는 나무 라도 껴안을지도. 그러니까 결론은 사랑은 아주 거대한 감정이라 는 것이다. 그래서 복순은 생각했다. 그 정도로 위대한 게 사랑이라면, 좀 더 범위가 넓어야 하는 게 아닐까?
복순의 첫사랑은, 강단의 뒷모습과 청월하숙의 푸른 대문이다. 다시 말하면 강단의 첫인상이 곧 복순의 첫사랑이다. 담벼락 밑에서 흙을 파며 놀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그를 처음 만났다. 잡초의 뿌리가 땅에 얼마나 깊게 박혀 있는지 실험하던 참이었다.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복순이 파던 흙 위로 그림자가 졌다. 겁을 집어먹고 고개를 꺾어들자 태산처럼 큰 사람이 서 있었다. 복순이 태어나기 전부터 아주 오랫동안 살았다던, 푸른 대문이 막아선 집의 주인. 이웃의 친근함이 전혀 없지만 그렇다고 위협적이지는 않은 사람. 조선인 여자와는 어울리지 않는 단호함과 강인함으로 똘똘 뭉쳐 겁 없었던 복순도 차마 말을 걸지 못했던 사람.
“이름은?”
지금 생각하면, 보통 아이가 어두워질 때 혼자 있으면 걱정부터 하지 않나.
“복순이요.”
“강단이다.”
아주 특이한 사람이었다. 아이에게 이름만 물었으면 물었지, 자신의 이름까지 알려주며 통성명하는 어른이 어디 흔한가. 강단 이라는 이름의 사람은 복순의 어린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는 것처 럼 어른을 대하듯 딱딱하게 말했다. 그래도 복순은 강단과 한 마 디라도 더 나누고 싶었다. 그가 복순을 다시 보았을 때 얼굴이라도 기억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이름이 한 글자인가요?”
이제 강단은 눈을 치켜떴다.
“그래, 한 글자다. 하지만 성과 이름을 붙여 말하면 더 멋져 보일걸.”
“강단.”
“강단 있지.”
복순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입술을 일자로 지익 늘렸다. 강단은 근심 걱정 없는 얼굴로 미소 지었다. 그리고 복순과 이야기하기 위해 조금 숙였던 허리를 주욱 폈다. 순식간에 길어지는 그림자와 멀어지는 얼굴에 복순이 다급해져 불쑥 말했다.
“귀신인 줄 알았어요. 저기 누가 살고 있다고 분명 들었는데 마주친 적이 없어서.......”
“귀신이라고? 듣기 좋은 칭찬인데.”
거칠고 투박한 손이 복순의 정수리를 꾹꾹 누르고 지나갔다. 감촉만으로도 어떤 손을 가졌을지 알 수 있었다. 손끝은 거칠고 손바닥은 딱딱하다. 손가락은 두툼할 것이고 분명 손바닥 곳곳에 둥그렇게 굳은살이 올라와 있을 것이다. 몇 초 동안 머리통 가 운데 내려앉은 무게가 좋다. 그 잠깐 새에 제멋대로 흐트러져 눈을 찌르는 앞머리를 정리해 주는 손가락이 좋다. 어떻게 이리 짧 은 시간 동안 사람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질 수 있을까? 어린아이 라고 과하게 목소리를 높이며 이야기하지 않는 것도 좋고, 해를 등지고 있어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도 좋다. 저녁 먹자며 복순을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흘깃 시선을 주는 눈동자도 좋다.
“먹는 만큼 큰다.”
충고에 담긴 은밀한 인사도, 어깨를 쓸어 주는 딱딱한 손길도, 그 너른 등 뒤로 굳게 닫히는 푸른 대문도 좋다.
복순의 옆옆집, 그러니까 청월하숙의 옆집에는 그 유명한 중앙사립고등보통학교의 교사가 살고 있었다. 일본인이나 유복한 조선인 유학생들이나 될 수 있다는 교사가 옆옆집에 살고 있다는 사실 은 꽤 특별하다. 세상 그 어떤 질문이라도 답할 수 있는 사람 아닌가. 게다가 어른들이 모여서 수군거린 이야기에 따르면, 옆옆집 교사는 과학을 가르친다. 낮과 밤은 왜 붙어 있는지, 달은 왜 변덕스러운지에 대해 시시콜콜한 전래동화가 아니라 숫자와 공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굳이 덧붙이자면 칠판에 분필 로 글씨를 쓰는 것도 학교를 다니지 않는 복순에게는 꽤나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복순이 교사의 이름이 최유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그뿐 아니라 마을 사람들 모 두 그의 이름이 함유성이라고 확신했다. 그가 강단의 아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해의 전말은 이렇다. 우선 유성은 처음 마을에 왔을 때에는 청월하숙에 머물렀다. 하숙 손님이라고 생각하 기에는 유성은 청월하숙의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했다. 매일 아침 하숙 앞을 깨끗하게 비질했고, 강단이 무거운 짐을 나르고 있으면 한달음에 달려가 양손 가득 남은 짐을 들고 왔다. 처음에 사 람들은 그가 하숙비가 없어 강단의 비위를 맞추어 주며 집안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소문은 유성이 정장을 차려입고 서류가방을 든 채로 푸른 대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싹 사라졌다. 그 정도로 차려입는 모던한 남자라면 돈을 내지 못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상경한 하숙집 아들’ 하나였다.
그가 함 씨라는 특이한 성을 가지게 된 건 남 일에 관심이 많은 김 씨 아저씨 때문이었다. 아저씨는 강단에게 죽은 남편이 있고, 그 남편이 틀림없이 함 서방이었다고 온 마을에 떠벌리고 다녔다. 잠시 먼 곳으로 장사를 갔을 때 강단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는 것 이었다. 그 먼 곳이 어디인지는 정확히 말하지 않았지만. 김 씨 아저씨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세 명이 모여들었고, 세 명이 다섯으로, 다섯은 열로 불어났다. 그 열 명 중에는 복순도 있었다. 김 씨 아저씨는 흥을 타서 강단의 키가 여자치고 큰 것과 유성의 키가 조선인치고 큰 것의 관계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강단이 남편을 잃고 남은 재산으로 청월하숙을 운영하고 있다는 추측인지 사실인 지 모를 말도 늘어놓았다. 성격이든 키든 피는 못 속인다는 말까 지 들었던 것 같은데, 그 이야기가 나올 때쯤 복순은 어른들의 다리 사이를 비집고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더 듣고 있다가는 강단 이 좋아하지 않는 부류의 사람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졸지에 과부가 된 강단은 소문을 모르는 것처럼 일주일을 그저 흘려보냈다. 그리고 그날 종로 거리에 나갔던 사람 하나가 유성이 중앙사립고보 교문에서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고 난리를 피 우며 돌아왔다. 유성이 중앙사립고보의 교사이자 상경한 강단의 아들이라는 소식이 온 마을에 일파만파 퍼져갔다. 함유성에 대한 관심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오해도 일리는 있었다. 어떤 부모가 제 식구 먹여 살리기에도 급급한 시기에 자 식도 아닌 자의 끼니와 이부자리를 몇 달씩이나 챙기겠는가? 급기야 소문은 사실 강단이 청월하숙 어딘가에 모두가 죽었다고 생 각했던 지아비를 숨겨 두었으며 유성은 숨이 넘어가기 직전인 아 버지를 뵙기 위해 돌아온 것이라는 꽤나 논리적인 결론에까지 이르렀다. 물론 복순의 어머니는 근거 없는 소문이라며 질색했지만, 어린 복순의 귀에까지 그 소문이 들어왔다는 건 이미 사람들 사이 에서는 강단과 유성의 관계가 어머니와 아들로 결론이 났다는 뜻 이었다. 어쨌든 청월하숙은 마을에서 섬처럼 동떨어진 존재였기 에 헛소문을 바로잡을 당사자들이 입을 열 일도 없었다. 그들은 소문의 존재조차 몰랐을 것이다.
유성이 청월하숙을 나와 바로 그 옆집으로 이사를 가고 나서 야 활개치던 소문은 생명을 다했다. 짐을 한아름 가지고 대문을 나오는 유성에게 오지랖 넓은 누군가 참지 못하고 물어본 것이다.
“함유성 선생님 아니십니까? 아니, 청월하숙이 문이라도 닫습니까? 이사를 다 가시고.”
“제 짐도 쌓이는 것 같고 신세를 너무 오래 진 것 같아 이사 갑니다.”
이렇게 말하고 유성은 잠시 짐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최유성입니다.”
이 문장 하나가 마을을 뒤집어 놓았다. 신세를 졌다는 건 청월하숙이 팔자 좋게 꽁으로 지낼 곳은 아니라는 뜻. 최유성이라는 건 함 서방의 아들이 아니라는 뜻. 합쳐서 생각하면 강단의 아들이 아니라는 뜻. 그렇다면 강단은 아들도 아닌 외간 남자를 집에 들이고 밥 먹이고 재워 주었다는 뜻인데. 밥벌이도 빠듯한 사람들에게 이 소식은 꽤나 감질맛 나는 공짜 간식거리였다.
“어머니, 하숙집 아들도 아니고 함유성도 아니래요. 최유성이래요.”
“그으래.”
어머니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길게 늘여 말했다. 복순은 가끔 그런 어머니를 보고 있자면 혼자 외계인이 된 기분이었다. 복순은 벽에 등을 기대고 다리를 쭉 펴 앉았다.
“자식도 아닌데 어떻게 밥을 줘요?”
“사랑하고 아끼는 것에 꼭 피가 섞일 필요가 있니. 뭐든 소중 하면 자기 둥지 안에 넣고 꼭 품는 법이야. 복순이도 그런 걸 살면 서 많이 만들어 두어야 한다.”
“그러면 함유성인 줄 알았던 사람들은 피 섞인 사람 말고는 소 중한 게 하나도 없어서 욕하는 거예요? 몰라서?”
“그건 아니다, 복순아.”
“그럼?”
“둥지 지키느라 바빠서 까먹은 거지. 요즘은 아무리 열심히 지켜도 계속 잃으니까. 아니면 그저 남 이야기를 좋아하거나.”
“치, 결국 없는 건 맞잖아.......”
“없는 게 어디 그 사람들 탓이니.”
어린 시절 마음속에 파묻혔다가 아주 가끔 맥락 없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복순에게는 그날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속으로 그렸던 둥지가 그랬다. 나뭇가지가 삐죽삐죽 튀어나온 동그란 둥지, 그 안에 들어있는 과자, 구름, 푸른 꽃, 어머니, 이불....... 어쩌면 강단과 푸른 대문도. 복순은 꽉꽉 채운 둥지를 두 팔로 끌어안아 뜨끈하게 데우는 상상도 했다. 아침 햇살처럼 절대 사라질 리 없는 것들을 둥지에 채워 넣을수록 아무것도 잃을 리 없다는 안정감이 들었다.
함께 모여 노는 동네 아이들 사이에는 초여름만 되면 무서운 이야기가 유행했다. 사실 무용담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어른들이 들려주는 ‘늦은 밤에 홀로 다니지 마라’는 흔한 교훈을 담은 이야기도 아니고, 자정에 뒷간에서 볼일을 보면 긴 머리를 종아리까지 늘어뜨린 처녀귀신이 발목을 덥썩 잡고 끌고 간다는 이야기도 아니고, 담벼락의 푸른 칠이 된 돌을 함부로 만지면 도깨비가 와서 잡아간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건 본인이 얼마나 강한 귀신을 어떻게 물리쳤는지 재미나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지는 것을 싫어하는 복순 또한 아이들의 심심풀이 대회에 동참했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비용이 드는 법. 그 이치를 깨달을 정도로 나이대가 있는 아이들이 여는 대회였기 때문에 입맛을 맞추어 주는 것이 중요했다. 엿 한 가락이라도 들고 오라는 것이 대회 주최 자의 요구사항이었다. 한 가락은커녕 반 가락도 구할 길이 없었던 복순은 풀이 죽어 있었다. 대회에 나가 당당하게 이야기할 순간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건만 앉아서 듣는 구경꾼이 될 처지였다. 복순은 자신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 끄덕이고 박수나 치는 그런 팔자는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그 순간 가진 게 없으면 삶이 팔자대로 되는 것만도 아니라는 사실을 어린 나이에 깨닫고 있었다.
“맹꽁이, 혼자 흙 파면 재미있냐?”
청월하숙 사람들은 다가오는 방식이 다 똑같았다. 땅을 보고 있다가 갑자기 밤이 된 듯 어두워져서 고개를 들면 꼭 청월하숙 사람이 서 있었다. 이번에는 윤태였다. 청월하숙의 유일한 하숙생인 윤태는 중앙사립고보에 다니고 있었다. 복순보다 대여섯쯤 많은 그는 자신이 사립고보에 다닌다는 사실에 대한 뿌듯함을 품고 살았다. 그의 자부심은 겉모습에서 바로 드러날 정도로 높았다. 앞에서는 반짝거리는 눈과 올라간 입꼬리로, 뒤에서는 올라간 어깨로 알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콧대도 올라가 있었던 것 같다.
“맹꽁이, 왜 죽상이야. 누가 놀렸어?”
“아니. 잘난척쟁이는 가.”
“아이, 이번에는 안 놀릴게.”
“대회에 못 나간단 말이야. 다들 낼 게 하나씩은 있는데 나는 하나도 없어서 자신 있는데도 못 나가. 그런데 오빠는 와서 맹꽁 이라고 하고 잘난 척이나 하고.”
색색거리며 하던 말이 점점 빨라지더니 복순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윤태는 당황해 엄지로 복순의 눈물을 문질러 닦으며 울음을 그치게 하려 애썼다.
“무어, 무슨 대회? 그리고 내가 언제 잘난 척을 했어?”
달래려는 그의 노력이 무색하게 지나가던 동네 어르신이 잠시 멈춰 설 정도로 큰 울음이 골목에 울려퍼졌다. 윤태는 급기야 흙 바닥에 주저앉았다. 머리를 연신 쓰다듬고 어깨를 토닥이는 능숙한 손길에 복순의 눈물이 서서히 멎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윤태는 아주 크게 웃을 뻔했으나 복순이 쏘아보자 곧바로 꼬리를 내렸다.
“그런 거라면 아무 문제 없다.”
없는 건 오빠의 양심이라고 대답하려던 복순의 입에 작고 동그란 게 쏙 들어왔다. 에퉤퉤거리며 뱉으려는 복순의 입술을 윤태 가 다급히 손가락으로 막았다.
“사탕이야, 사탕!”
혀로 몇 번 굴려보자 혀 안쪽에서부터 달콤한 맛이 퍼져왔다. 복순은 순식간에 고이는 침을 꿀떡 삼켰다. 적당히 달고 아주 딱딱해 금방 녹을 것 같지는 않았다. 기분이 풀리기도 잠시, 복순은 다시 도끼눈을 뜨고 윤태를 쏘아보았다.
“이걸 뱉어서 걔들한테 줄 수는 없잖아. 종이로 감싸서 내 손 에 줬어야지.”
“야, 이 배은망덕한 맹꽁아. 여기 하나 더 있다.”
윤태가 복순의 손바닥에 사탕을 올려놓았다. 구깃한 포장지를 조심스럽게 펼치자 희고 동그란 알맹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윤태 는 복순이 더 크게 반응하기를 기대하는 듯 올라간 어깨를 들썩였 다. 그는 작은 사탕을 집게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원래 오늘 공부하면서 살살 녹여 먹으려고 한 건데, 특별히 너 주는 거다.”
대답을 기다리며 눈을 깜박이는 그의 얼굴은 평소보다 배로 뿌듯해 보였다. 입꼬리가 귀에 걸리도록 미소 짓는 얼굴이 고마워서 괜히 얄미웠다. 복순은 다시 사탕을 포장지로 감싸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윤태의 어깨를 토닥였다.
“대회 이기면 사탕 준댔어. 그거 오빠 나누어 줄게.”
“와아, 진짜?”
윤태가 호방하게 웃으며 복순의 머리를 헝클였다. 강단에게 쓰다듬는 방법을 배운 것처럼 무게감이 비슷했다. 물론 윤태는 운 좋게도 일보다는 공부를 많이 하는 학생이었기에 촉감은 훨씬 부드러웠지만. 복순은 입 안에서 사탕을 굴리며 윤태의 손을 잡고 함께 일어났다.
“바지에 흙 다 묻었어.”
“으악, 아주머니한테 혼나겠다.......”
골목을 나오자 막 집으로 들어가려는 유성이 보였다. 그는 언제나처럼 허리를 꼿꼿하게 편 채로 현관 자물쇠를 풀고 있었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사람이었다. 청월하숙 사람들 외에는 그 누구와도 세 마디 이상 말을 섞지 않았다. 심지어 그가 청월하숙을 나와 들어간 집에 짐이 들어가고 나오는 것을 본 사람도 없었다. 그는 오지 않은 것처럼 와서 가지 않은 것처럼 갈 사람 같았다.
“윤태, 어서 들어가라.”
아무리 우쭐한 학생 이윤태라도 자신의 선생님 앞에서는 움찔 하는 모양이었다. 복순의 어깨를 토닥이던 손바닥이 뻣뻣하게 굳더니 아까보다 낮은 목소리로 “예, 선생님”이라 대답했다. 유성은 복순을 잠시 쳐다보고 뚜벅뚜벅 구두 소리를 내며 문을 열고 들어 갔다. 윤태는 철컹하며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자마자 안도의 한숨 을 쉬더니 복순의 등을 토닥이고 돌아섰다.
“복순아, 그 대회라는 거 어떻게 되었는지 꼭 알려줘야 한다. 이기면 사탕은 너 하고.”
“사탕 싫어해?”
“아니, 아주 좋아하지. 그래도 네가 더 좋아하잖아.”
윤태와 헤어지고 복순은 집에 들어가 방바닥에 드러누웠다.
흰 사탕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이리저리 굴려보았다. 자신은 이런 사탕을 받았을 때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반 질반질한 사탕은 쥐여 주던 사람의 허여멀건한 얼굴을 닮았고 동 그란 모양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선은 그 뿌듯한 미소와 비슷하다. 아무튼 중요한 건 대회에 발도 들이지 못하고 질 일은 없다는 것이다. 복순의 오른쪽 입꼬리가 씰룩거리다 귀에 걸렸다. 그 뒤로 윤태가 맹꽁이라 불러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